검찰 역사상 최초의 ‘항명(抗命) 파동’으로 면직됐다가 복직했던 심재륜 전 부산고검장(58)이 이번엔 김대중 대통령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퇴임사를 남기고 검찰을 떠났다.
그의 퇴임사는 총장이 바뀐 검찰에 미묘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심 전 고검장은 1월18일 “검란(檢亂)의 원인과 배경은 거듭된 검찰 인사의 잘못과 검찰권에 대한 간섭에서 비롯된 만큼 정부 최고 책임자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퇴임사로 “검찰의 잘못으로 정부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한 김대중 대통령을 직접 겨냥했다.
이명재 신임 검찰총장 취임 직후 심 전 고검장의 퇴임사를 접한 대검 검사장 등 검찰 수뇌부 대부분은 아직까지도 곤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월20일 대검의 한 검사장은 “(심 전 고검장의) 말의 진위 여부를 떠나 새 총장 체제의 검찰에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라며 파문 확산을 우려했다.
심 전 고검장의 퇴임사가 안정을 되찾아가는 검찰 조직을 다시 뒤흔들 수 있는 악재(惡材)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대검 수뇌부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이 점을 의식해서인지 법무부와 대검은 심 전 고검장의 퇴임사에 대해 공식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평검사들 사이에서는 검찰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나온 심 전 고검장의 퇴임사를 열린 마음으로 경청해야 위기를 제대로 극복할 수 있다는 반응이 많았다. 서울지검 한 검사는 “심 전 고검장의 퇴임사가 검찰의 현 위치를 정확하게 진단했다. 모처럼 속시원한 말을 들었다”며 “국정 최고 책임자는 말로만 검찰 중립을 외칠 것이 아니라 이를 새겨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 고검에서 근무하는 한 검사도 “검찰을 만신창이로 만든 근본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사태를 호도하는 주장에 동감할 수 없다”며 퇴임사에 공감의 뜻을 나타냈다. 이는 “문제가 된 일부 검사의 책임 문제는 차치하고 이와 무관한 전체 검사가 잘못한 것처럼 호도하면서 정부는 무관한 것처럼 책임을 전가하는 발상과 주장에는 전혀 공감할 수 없다”고 밝힌 퇴임사의 한 구절을 되풀이한 말이다.
이와는 달리 일부 검찰간부들만이 “검찰 스스로의 독립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심 전 고검장의 퇴임사는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부정적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심 전 고검장의 퇴임사는 ‘과거형’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검찰 위기와 개혁론이 화두로 등장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검찰 위기의 근본 원인은 검찰 스스로 정치적 독립을 풀어나가지 못한 것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정치적 압력이라는 외생(外生) 변수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검찰 내부에서도 검찰 인사를 통한 권력의 검찰권 행사 개입, 권력의 입맛에 맞는 사건 처리 등의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요원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심 전 고검장은 퇴임사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잃은 검찰은 이미 본연의 검찰이 아닐 뿐만 아니라, 두목의 눈치나 보며 서민의 가슴에 못을 박는 폭력조직과 다를 바 없다고 한 어느 현직 검사장의 말을 상기시키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말을 귀담아듣든 그렇지 않든, 심 전 고검장은 지난해 복직한 뒤 이용호씨 사건 당시에도 검찰 상황의 핵심을 찌르는 듯한 말을 남겨 법조계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심 전 고검장은 지난해 10월 대검이 이씨의 진정 비리사건을 조사하는 특별감찰본부를 설치한 뒤 본부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도무지 끝이 안 보인다”는 짤막한 말로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말은 당시 김대중 정부 들어 끊임없이 이어진 검란(檢亂)의 진행 경과를 의미하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져 법조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실제로 이 말이 나온 뒤 검찰은 ‘진승현 게이트’ 재수사로 1차 수사의 축소ㆍ부실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또 특검이 신승남 전 검찰총장의 동생 승환씨를 구속해 현직 총장의 사퇴까지 불러옴으로써 검란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심 전 고검장은 항명파동 이전인 1997년 3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를 구속한 검사로 국민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항명파동 후 면직처분을 받았지만 그의 ‘항명’이 ‘이유 있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거악(巨惡)을 용서하지 않는 보기 드문 ‘강골 검사’로 꼽힌다. 1990년 서울지검 강력부장 시절 폭력조직 서방파 두목 김태촌씨를 구속한 것도 그의 작품이다. 당시 권력 핵심의 비호를 받으며 사건에 개입하려던 세력을 ‘협박’하며 김씨를 구속한 일화는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 ‘전설’이 됐다.
1988∼89년 서울지검 특수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비행선 부정 도입사건과 주식 부정사건, 연예인 폭력사건, 방송계 PD 부정사건 등 여러 대형사건들도 그의 손을 거쳐갔다.
‘깃털만 뽑고 몸통은 없다’는 비난이 검찰에 쏟아진 한보사건 당시 정태수씨를 굴복시키기 위해 전 재산을 압류하는 아이디어를 동원했고, 김현철씨가 받은 정치자금에 대해 조세포탈죄를 처음으로 적용, 유죄판결을 받아냈다.
심 전 고검장은 김현철씨를 구속함으로써 검찰을 위기에서 구해내기도 했다. 당시 그에게 시민의 격려 전화가 쇄도했고, 검찰 사상 최초로 시민들의 성금까지 전달됐다.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이보다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도 찾기 힘들다.
심 전 고검장은 퇴임사에서 항명파동 당시 성명서에서 주장했던 ‘정치검찰론’을 다시 제기했다.
“검찰이 신뢰를 잃은 것은 인사 특혜와 권력의 공유 내지 신분적 상승을 위해 권력 주변에 무리를 지어 줄을 섰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들의 입맛에 맞게 앞장서 충실한 ‘시녀’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정치검찰론의 원천은 1999년 1월27일 항명파동 당시의 성명서다. 그는 당시 “권력만 바라보고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정치검사가 사라져야 검찰이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받는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그는 면직→복직 판결→무보직 고검장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 같은 관점에서 검찰의 문제를 계속 끄집어냈다.
그는 1999년 2월5일 대구고검장 이임식에서 “검찰이 국민의 편에 서서 일하지 않고 개인의 영달만 추구하기 위해 권력만 바라보고 일해온 일부 정치검사들이 남겨놓은 업보 때문에 신뢰를 잃었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8월 24일 대법원의 복직 확정 판결이 나왔을 때 “항명파동 당시 지적했던 ‘정치검사’를 보는 시각은 여전한가”라는 질문을 받고 그는 “변함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올해 퇴임사에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심 전 고검장이 겨냥한 대상과 발언의 수위다. 올해는 김대중 대통령의 지적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칼에는 눈이 없다. 칼은 상대방을 죽일 수도 있지만 어떤 때는 칼을 쥔 사람이 찔릴 수도 있다”는 독설로 날을 세웠다.
여기에 함축된 의미는 복합적으로 풀이된다. ‘칼을 쥔 사람’은 대비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를 잘 아는 법조계 한 인사는 “심 전 고검장이 예언가일 수는 없다”면서도 “그러나 특별수사의 대부가 쓴 퇴임사를 보면 항명파동 때와는 다른,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 뇌리를 스쳐간다”고 말했다.
이명재 검찰총장이 취임한 뒤 심 전 고검장이 퇴임사에서 “모든 것이 끝을 향해 나아가고 또 끝에 도달하면 새로 시작하는 법”이라고 했지만, 앞으로 검찰이 거쳐야 할 난관은 아직도 험난하다.
국민은 심 전 고검장의 퇴임사가 권력자를 향한 예언이 아니라 단순한 경고에 그치기를 바랄 것이다.
그의 퇴임사는 총장이 바뀐 검찰에 미묘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심 전 고검장은 1월18일 “검란(檢亂)의 원인과 배경은 거듭된 검찰 인사의 잘못과 검찰권에 대한 간섭에서 비롯된 만큼 정부 최고 책임자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퇴임사로 “검찰의 잘못으로 정부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한 김대중 대통령을 직접 겨냥했다.
이명재 신임 검찰총장 취임 직후 심 전 고검장의 퇴임사를 접한 대검 검사장 등 검찰 수뇌부 대부분은 아직까지도 곤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월20일 대검의 한 검사장은 “(심 전 고검장의) 말의 진위 여부를 떠나 새 총장 체제의 검찰에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라며 파문 확산을 우려했다.
심 전 고검장의 퇴임사가 안정을 되찾아가는 검찰 조직을 다시 뒤흔들 수 있는 악재(惡材)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대검 수뇌부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이 점을 의식해서인지 법무부와 대검은 심 전 고검장의 퇴임사에 대해 공식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평검사들 사이에서는 검찰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나온 심 전 고검장의 퇴임사를 열린 마음으로 경청해야 위기를 제대로 극복할 수 있다는 반응이 많았다. 서울지검 한 검사는 “심 전 고검장의 퇴임사가 검찰의 현 위치를 정확하게 진단했다. 모처럼 속시원한 말을 들었다”며 “국정 최고 책임자는 말로만 검찰 중립을 외칠 것이 아니라 이를 새겨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 고검에서 근무하는 한 검사도 “검찰을 만신창이로 만든 근본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사태를 호도하는 주장에 동감할 수 없다”며 퇴임사에 공감의 뜻을 나타냈다. 이는 “문제가 된 일부 검사의 책임 문제는 차치하고 이와 무관한 전체 검사가 잘못한 것처럼 호도하면서 정부는 무관한 것처럼 책임을 전가하는 발상과 주장에는 전혀 공감할 수 없다”고 밝힌 퇴임사의 한 구절을 되풀이한 말이다.
이와는 달리 일부 검찰간부들만이 “검찰 스스로의 독립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심 전 고검장의 퇴임사는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부정적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심 전 고검장의 퇴임사는 ‘과거형’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검찰 위기와 개혁론이 화두로 등장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검찰 위기의 근본 원인은 검찰 스스로 정치적 독립을 풀어나가지 못한 것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정치적 압력이라는 외생(外生) 변수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검찰 내부에서도 검찰 인사를 통한 권력의 검찰권 행사 개입, 권력의 입맛에 맞는 사건 처리 등의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요원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심 전 고검장은 퇴임사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잃은 검찰은 이미 본연의 검찰이 아닐 뿐만 아니라, 두목의 눈치나 보며 서민의 가슴에 못을 박는 폭력조직과 다를 바 없다고 한 어느 현직 검사장의 말을 상기시키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말을 귀담아듣든 그렇지 않든, 심 전 고검장은 지난해 복직한 뒤 이용호씨 사건 당시에도 검찰 상황의 핵심을 찌르는 듯한 말을 남겨 법조계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심 전 고검장은 지난해 10월 대검이 이씨의 진정 비리사건을 조사하는 특별감찰본부를 설치한 뒤 본부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도무지 끝이 안 보인다”는 짤막한 말로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말은 당시 김대중 정부 들어 끊임없이 이어진 검란(檢亂)의 진행 경과를 의미하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져 법조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실제로 이 말이 나온 뒤 검찰은 ‘진승현 게이트’ 재수사로 1차 수사의 축소ㆍ부실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또 특검이 신승남 전 검찰총장의 동생 승환씨를 구속해 현직 총장의 사퇴까지 불러옴으로써 검란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심 전 고검장은 항명파동 이전인 1997년 3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를 구속한 검사로 국민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항명파동 후 면직처분을 받았지만 그의 ‘항명’이 ‘이유 있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거악(巨惡)을 용서하지 않는 보기 드문 ‘강골 검사’로 꼽힌다. 1990년 서울지검 강력부장 시절 폭력조직 서방파 두목 김태촌씨를 구속한 것도 그의 작품이다. 당시 권력 핵심의 비호를 받으며 사건에 개입하려던 세력을 ‘협박’하며 김씨를 구속한 일화는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 ‘전설’이 됐다.
1988∼89년 서울지검 특수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비행선 부정 도입사건과 주식 부정사건, 연예인 폭력사건, 방송계 PD 부정사건 등 여러 대형사건들도 그의 손을 거쳐갔다.
‘깃털만 뽑고 몸통은 없다’는 비난이 검찰에 쏟아진 한보사건 당시 정태수씨를 굴복시키기 위해 전 재산을 압류하는 아이디어를 동원했고, 김현철씨가 받은 정치자금에 대해 조세포탈죄를 처음으로 적용, 유죄판결을 받아냈다.
심 전 고검장은 김현철씨를 구속함으로써 검찰을 위기에서 구해내기도 했다. 당시 그에게 시민의 격려 전화가 쇄도했고, 검찰 사상 최초로 시민들의 성금까지 전달됐다.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이보다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도 찾기 힘들다.
심 전 고검장은 퇴임사에서 항명파동 당시 성명서에서 주장했던 ‘정치검찰론’을 다시 제기했다.
“검찰이 신뢰를 잃은 것은 인사 특혜와 권력의 공유 내지 신분적 상승을 위해 권력 주변에 무리를 지어 줄을 섰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들의 입맛에 맞게 앞장서 충실한 ‘시녀’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정치검찰론의 원천은 1999년 1월27일 항명파동 당시의 성명서다. 그는 당시 “권력만 바라보고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정치검사가 사라져야 검찰이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받는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그는 면직→복직 판결→무보직 고검장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 같은 관점에서 검찰의 문제를 계속 끄집어냈다.
그는 1999년 2월5일 대구고검장 이임식에서 “검찰이 국민의 편에 서서 일하지 않고 개인의 영달만 추구하기 위해 권력만 바라보고 일해온 일부 정치검사들이 남겨놓은 업보 때문에 신뢰를 잃었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8월 24일 대법원의 복직 확정 판결이 나왔을 때 “항명파동 당시 지적했던 ‘정치검사’를 보는 시각은 여전한가”라는 질문을 받고 그는 “변함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올해 퇴임사에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심 전 고검장이 겨냥한 대상과 발언의 수위다. 올해는 김대중 대통령의 지적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칼에는 눈이 없다. 칼은 상대방을 죽일 수도 있지만 어떤 때는 칼을 쥔 사람이 찔릴 수도 있다”는 독설로 날을 세웠다.
여기에 함축된 의미는 복합적으로 풀이된다. ‘칼을 쥔 사람’은 대비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를 잘 아는 법조계 한 인사는 “심 전 고검장이 예언가일 수는 없다”면서도 “그러나 특별수사의 대부가 쓴 퇴임사를 보면 항명파동 때와는 다른,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 뇌리를 스쳐간다”고 말했다.
이명재 검찰총장이 취임한 뒤 심 전 고검장이 퇴임사에서 “모든 것이 끝을 향해 나아가고 또 끝에 도달하면 새로 시작하는 법”이라고 했지만, 앞으로 검찰이 거쳐야 할 난관은 아직도 험난하다.
국민은 심 전 고검장의 퇴임사가 권력자를 향한 예언이 아니라 단순한 경고에 그치기를 바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