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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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과 ‘마이너리티 리포트’

  •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입력2009-08-26 17: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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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고급 패션브랜드 ‘샤넬’에도 남성복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패션쇼장에서 선보이는 수십 벌의 여성복 사이사이 ‘약방의 감초’격으로 등장하는 남성복을 발견했을 때나 디자인에, 품질에, 그리고 가격에 놀라 ‘경외’의 마음으로 둘러보게 되는 샤넬 매장에서 남성용 재킷을 만날 때면 ‘샤넬=여성’으로 규정된 공식이 흔들리면서 이질적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3년 전 프랑스 유학 시절, 파리의 한 샤넬 매장에서 짧은 기간 인턴십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그곳 매니저는 매장에 걸린 남성복을 보고 깜짝 놀라는 저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주더군요.
    “샤넬은 다른 럭셔리 브랜드에 비해 ‘여성’ 이미지가 강해요. 샤넬 본사에서도 남성복을 본격적으로 생산할지를 두고 한때 고민했지만, 일단은 이렇게 ‘구색’만 갖추기로 했답니다. 샤넬에선 남성이 ‘마이너리티’예요.”

    샤넬의 ‘여성성’이 다른 브랜드보다 빛을 발하는 이유는 디자인이나 색상 때문이 아닙니다. 이 브랜드가 당대 여성들에게 미친 영향력 때문입니다. 국내 개봉을 앞두고 8월19일 열린 영화 ‘코코 샤넬(Coco Avant Chanel)’의 언론 시사회장에서도 이 브랜드에 내재된 ‘우먼파워’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일단 이 브랜드의 창시자 가브리엘 샤넬의 인생 자체가 한 여성의 ‘인간 승리’입니다. 고아원에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전 세계 모든 여성이 동경하는 명품 브랜드를 일궈냈다는 사실이 말이죠. 또 샤넬이 선보인 심플한 블랙 원피스와 모자, 활동하기 편한 바지는 당대 여성의 움직임과 태도를 ‘현대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치렁치렁한 레이스로 가득한 긴 드레스 자락, 가슴 절반을 드러낸 섹시한 드레스 상의, 마음껏 먹지도 숨 쉬지도 못하게 만드는 코르셋으로부터 해방된 그들은 활동적인 현대 여성상의 전신이 됐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샤넬의 여성복이 여성의 참정권 획득이나 콘돔의 발명과 견줄 만한 ‘여성 해방’의 아이콘이라고 일컫는 전문가들도 있더군요.



    샤넬과 ‘마이너리티 리포트’
    샤넬이 1910년 파리의 캉봉(Cambon)가에 최초의 모자 가게를 오픈한 지 올해로 꼭 100년째입니다. 그동안 여성의 지위 향상과 관련된 ‘거시적’ 변화들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드리워져 있는 ‘미시적’ 제약들은 사회 속에서의 여성을 여전히 ‘마이너리티’이게 합니다.

    육아 때문에 10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는 두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100년 전에 살았던 샤넬이 환생한다면 2009년의 현대 여성들에게 어떤 말을 해줄까? 혹시 아나요, 그라면 걸치기만 해도 ‘슈퍼우먼’이 될 획기적인 옷을 만들어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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