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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정경유착 고리 끊어라”

이만섭 전 국회의장 “정치권, 도청 문제에 계산적 접근 말아야 … 특별법·특검 국회 통과 못할 것”

“이참에 정경유착 고리 끊어라”

“이참에 정경유착 고리 끊어라”
옛 안기부 도청 파일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여당에 맞서 야 4당은 특검법을 공동 발의하는 등 대결 국면을 보이고 있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정치권과 언론·검찰은 난국을 돌파할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8선 의원에 두 차례 국회의장을 역임한 원로 이만섭(73) 전 국회의장을 만나 도청 정국을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았다.

-옛 안기부 도청 파일 사건이 끼친 충격이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온 나라가 뒤죽박죽, 쑥대밭이 되었다. 지금 우리가 이 사건을 갖고 시간을 끌 때인가. 북핵 문제, 고유가와 경제문제 등 복잡한 문제가 산적해 있으므로 털 것은 털고 정리할 것은 정리한 뒤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언론에 대해 하시는 말씀 같다.



“언론은 지나친 보도 경쟁으로 사건을 확대하는 쪽으로 가지 않았으면 한다. 국민들이야 당장 모든 것을 알고 싶다며 확대를 요구하겠지만, 언론은 사건을 수습할 수 있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차제에 언론은 언론끼리 싸우는 모습을 지양했으면 한다. 왜 신문과 방송, 방송과 방송, 신문과 신문이 그렇게 싸우는가. 보도 경쟁이 서로 싸우자는 것인가.”

-여당은 도청 파일을 공개하는 특별법을 제정해 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한다.

“여당은 그 주장을 진심으로 재고해주었으면 한다. 불법 감청한 것을 공개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이고 인권유린이며 헌법 위반이다. 어떻게 하면 자기에게 유리한지만 생각하고 지금 사태를 상대하면 결국은 큰 부메랑을 맞게 된다. 여당은 친일 과거사를 규명하겠다고 무리하게 덤비다 자기 당 소속 대표와 의원이 역풍을 맞은 적이 있지 않은가.”

-반면 야당은 특검 수사로 이 사건을 돌파하려 한다.

“검찰이 수사하면 야당에게 불리한 것만 나오고, 특검이 수사하면 여당과 DJ에게 불리한 것만 나오지 않을까 하여 그런 주장을 하는 모양이다. 여야 모두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만 공개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 사건에 관한 한 정치권은 계산을 하지 말아야 한다. 반성하고 책임지는 자세부터 보여야 한다. 당리당략적 계산으로 이 사건을 다루면 정치권은 결국 국민들로부터 저주를 받는 대상이 될 것이다.”

-입법은 국회가 하는 것이지만 국회, 특히 여당은 대통령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지 않는가.

“대통령은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포퓰리즘 적으로 대처하면 결국은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진다. 대통령은 여당에 대해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하며 사태를 수습하는 쪽으로 유도해야 한다. 그리고 북핵 문제, 경제문제 같은 것에 전념함으로써 나라 살릴 생각부터 해야 한다.”

-그러나 여야가 특별법이나 특검법을 만들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가.

“단언컨대 특별법이나 특검 모두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다. 지금 국회 법사위나 본회의의 여야 의원 분포도를 보면 특별법이나 특검법 모두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지 않은가. 특별법은 야당이 반대하고 특검은 여당이 반대하면, 법사위에서는 농성이 벌어지고 본회의장에서는 몸싸움만 일어난다. 결국 국회는 국민 앞에 추태만 보이고 마는 것이다. X파일을 다 공개하라고 하던 국민들도 그러한 사태가 일어나면 국회와 정당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게 된다.”

-정당들은 국민지지도에 대해 많이 신경 쓰는 것 같은데, 설마….

“언론에 난 여론조사를 보면 이 당도 저 당도 못 믿겠다는 비율이 60%가 넘는다.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다음 대통령은 무소속에서 나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도청 테이프 수사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공정하게 법대로, 그리고 신속히 조사해야 한다.”

-엣 안기부 도청 테이프 중에는 보도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어떤 기준으로 수사해야 공정하다는 말인가. 국민들은 진실을 알고 싶어한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보도된 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라도 검찰은 진실을 공개해야 한다. 언론에 보도된 것은 97년에 일어난 것이라고 하는데, 이미 시효가 지났더라도 그 진실이 무엇인지 검찰은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이 파일에 대해서는 이미 시민단체가 고발장을 접수한 만큼 검찰은 분명히 수사해서 법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는 법적인 책임을 지우고, 도덕적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는 도덕적인 책임을 지워야 한다.

그러나 나머지 공개되지 않은 도청 파일은 왜 도청을 하게 되었고, 도청을 지시하고 수행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밝히되, 그 내용은 덮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국민들도 검찰 수사에 대해 납득할 것이다.”

-공개된 파일만 국민에게 밝힌다는 것은 형평성을 잃은 조치 아닌가.

“그렇다고 274개 테이프 모두를 밝힐 것인가. 빈대 잡는 것도 좋지만 초가삼간 타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이미 벌어진 것에 대해서는 법적이든 도의적이든 분명히 책임져야 한다. 언론도 이 기회에 정신을 차렸으면 한다.”

-언론이 어떻다는 말인가.

“언론사 사주가 누구를 지지한다는 것은 다 아는 이야기다. 그들도 개인인 이상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싫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언론사 사주가 정치인을 위해 돈 심부름을 했다면 이는 다른 이야기가 된다. 언론사 사주가 그런 일을 한 것은 언론에 대한 모독이고, 그가 대표를 맡고 있는 언론사 기자들에 대한 모독이다. 언론도 이러한 점에 대해서는 반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은 대통령 선거를 위한 정치자금이 이 사태를 부른 것인데….

“대통령 선거에 수천억원이 들어갈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문제다. 그렇게 거둬들인 돈은 몇몇 사람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만다. 차떼기를 해도 지구당까지 전해지는 것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 실제 대통령 선거에 들어가는 돈은 생각처럼 그렇게 많지 않다. 대통령은 돈으로 당선되는 자리가 아니다. 하늘이 내리는 것이고 타이밍이 맞아야 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재벌들은 불안해서 돈을 댄다고 하는데….

“그 돈을 받은 정치인이 참다운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재벌로부터 돈을 받은 대통령은 절대로 재벌에게 큰소리칠 수 없다. 그러한 대통령이 2중 구조라고 하는 빈부격차를 없애겠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재벌들에게 돈을 받는 것은 절대로 비밀 유지가 안 된다. 그들은 ‘나는 얼마 줬는데 당신은 얼마 주었냐’면서 순식간에 돈 받은 정치인을 희화화해 버린다.

삼성은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잘나가는 기업이다. 그러한 삼성부터 정치자금 대는 것을 중단하라. 정경유착의 고리를 싹 잘라버리는 것이 바로 이 사건을 미래지향적으로 풀어나가는 방법이다.”

-국정원은 어떻게 개편해나가야 하는가.

“국내정보, 정치정보는 당장 그만두고 해외정보, 국가안위에 관한 정보, 간첩 잡는 정보는 더욱 강화해야 한다. 국회는 국정원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분명히 구분하도록 통신비밀보호법과 국정원법, 국정원직원법 등을 개정해야 한다. 여야는 특별법과 특검 문제로 싸울 게 아니라 더 나은 국가정보 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이것도 미래지향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한 방안이다.”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 사건을 계기로 적잖은 타격을 받은 것 같다.

“DJ 혼자만 마음의 상처를 받았나, 국민 모두 다 받았지. 이 사건으로 국민들은 ‘믿을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내 전화가 도청당하고 있다’는 불안 때문에 휴대전화를 두세 개씩 들고 다니게 됐다.

이러한 상처를 치유해줘야 하는 사람이 바로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포퓰리즘에 영합하지 말고 국민들을 다독여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정치권은 이전투구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라. 뭐든지 지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지혜를 잊지 말라.”



주간동아 2005.08.23 499호 (p50~52)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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