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미니, 기아차 모닝, BMW 뉴비틀 컨버터블 (왼쪽부터).
그러나 자동차가 남성의 ‘전유물’이란 고정관념은 깨진 지 오래다. 서로의 은밀한 부분에 대한 질문도 아무렇지 않게 할 즈음, 여성들은 벼르던 질문을 던진다. “얼마나 큰 거야. 그랜저야, 티코야?”
자동차는 여성들에게도 성적인 코드다. BMW의 소형차 미니(Mini)는 고추를 바나나 모양으로 곧추세운 지면 광고로 뭇 여성들을 설레게 했다. 폴크스바겐코리아는 “세계의 여성들이 열광하는 자동차”라고 뉴비틀을 소개한다.
자동차 업체들은 앞다투어 여심(女心)을 유혹하고 있다. 여성들의 경제력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자동차를 선택할 때 여성의 발언권이 커졌기 때문이다. 새 프라이드의 출시로 요동치는 소형차(소형차는 1000~1600cc 승용차를 말한다) 전쟁의 전선도 여심을 가로지른다.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이하 GM대우)의 새 마티즈와 기아자동차(이하 기아차)의 새 프라이드가 잇따라 선보이면서 중·대형차에 밀려 고전해온 소형차 시장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소형차 전쟁에서도 ‘누가 여심을 사로잡느냐’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소형차 시장에서 남성 스타일의 자동차는 점차 밀려나고 있으며 감각적인 디자인과 세련된 색상의 승용차들이 거리를 오간다. ‘자동차의 여성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푸조206cc, 대우차 마티즈 (왼쪽부터).
프라이드를 비롯한 새 차의 등장과 더불어 소형차 판매는 조금씩 늘고 있다. 올 1~3월 소형차 판매(4만6140대)는 지난해 동기보다 9.2% 늘어났다. 전체 승용차 시장에서 소형차 판매 비율도 지난해 1·4분기 17.1%에서 올해는 23.9%로 높아졌다.
소형차의 지존은 준중형급으로 불리는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 아반테다. 1~3월 1만9500대를 팔아, 르노삼성자동차(이하 르노삼성)의 SM3(5302대)와 기아차의 세라토(5204대)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 5144대를 판 기아차 모닝의 선전도 눈에 띈다.
아반테로 소형차 부문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현대차는 8월 베르나 후속 모델(프로젝트명 MC)를 내놓으며 소형차 경쟁에 기름을 부을 태세다. MC는 프라이드와 마찬가지로 1400cc, 1600cc 모델과 1500cc 디젤모델로 라인업이 짜여질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먼저 소형차 전쟁에 뛰어든 새 차는 국내 유일의 경차인 마티즈. 마티즈는 지난해 10월부터 4개월 연속 월 판매량 4000대를 돌파한 인기 차종이다. GM대우 닉 라일리(Nick Reilly) 사장은 “GM의 기술이 수혈돼 풀체인지업(차량의 기본틀 등을 완전히 교체)된 차세대 신차”라고 소개했다. 마티즈는 새 엔진(M-TECⅡ)을 얹어 차체를 가볍게 하고 공기저항을 최소화했다.
마티즈는 노골적으로 여성들에게 구애하고 있다. 여성들이 선호하는 선홍색, 살구색, 지중해색을 전략 모델로 정했으며, 하이힐을 집어넣을 수 있는 공간과 운전석에도 덮개식 화장 거울을 다는 등 세심하게 배려했다. 감각적인 디자인과 원색의 컬러는 마티즈의 마케팅 포인트다.
여성에 대한 배려에선 기아차 모닝을 빼놓을 수 없다. 모닝은 개발 단계에서부터 여성을 고려했다고 한다. 화장품 액세서리 등을 담는 수납공간을 마련했고 치마를 입은 오너의 승하차 편의까지 고려했다. 메인 컬러를 화사한 오렌지색으로 결정한 것도 여성 고객을 겨냥했기 때문이다.
2004년 4월 유럽에 진출한 모닝(수출명 피칸토)은 유럽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12월엔 유럽에서 1만993대가 팔려 유럽에서 판매되는 기아차 중 역대 최고 월 판매 대수를 기록했다. 12월까지의 누계 판매에서도 5만8628대로 리오(3만9768대), 쏘렌토(3만6959대)를 제치고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종으로 떠올랐다.
2004년 파리 모터쇼에 출품된 소형차. 유럽은 소형차의 천국이다.
모닝에 비견되는 감각적인 디자인과 원색의 컬러로 무장한 프라이드가 소형차 전쟁에서 옛 명성을 이어갈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기아차 관계자는 “신형 프라이드의 초기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매우 좋다. 디젤차가 본격 출시될 경우 판매가 빠르게 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프라이드는 베르나급의 소형차 시장과 준중형급 소형차 시장을 아울러 공략하고 있다. 1.4DOHC 모델로는 소형차 수요를, 1.6CVVT로는 준중형급 시장의 틈새를 파고든다는 것이다. GM대우의 한 관계자는 “프라이드의 가격이 준중형급 수준에 육박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면서 “세라토 수요층을 갉아먹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GM대우가 칼로스 후속인 프로젝트명 T250을 내놓고 베르나의 후속 모델인 MC가 올 하반기 출시되면, 소형차 시장의 판도는 크게 요동칠 전망이다. 디젤 소형차도 속속 출시된다. 현대차의 클릭과 르노삼성의 SM3가 하반기에 디젤 모델을 내놓는다.
수입차 업계도 소형차 판매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수입 소형차는 특히 여성에게 마케팅 포인트를 맞추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수입차는 BMW의 미니. 미니는 1959년 출시 이후 전 세계적으로 530만대가 팔린 세계적인 명차를 BMW의 기술로 모던하게 한 단계 발전시킨 차량이다. 패션 디자이너 메리 콴트는 미니에서 영감을 얻어 처음으로 미니스커트를 디자인했다고 한다. 배기량 1598㏄의 앙증맞은 미니는 영화 ‘이탈리안 잡(Italian Job)’에 출연해 한국 소비자들을 설레게 했다.
고색창연한 미니카의 전통에 BMW의 기술이 덧붙여진 미니는 전 세계에 구입 대기자가 몰려 있다. 700대가량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미니를 구입한 이들은 의사, 패션 디자이너, 모델 등 전문직 종사자가 많다는 게 BMW그룹코리아의 설명이다.
값은 미니쿠퍼가 3300만원, 미니쿠퍼S가 3800만원이다. 미국(1만7000달러), 일본(250만엔)과 비교해 판매가가 다소 비싸지만 영화에서나 볼 법한 감각적인 소형차를 원한다면 고민할 만한 가격이다. 미니는 푸조의 206, 폴크스바겐의 뉴비틀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3000만원대 수입차 시장의 파이를 키워나가고 있다.
3200만원에 판매되는 1600cc 푸조 206cc는 쿠페와 컨버터블을 동시에 실현하는 보기 드문 전동식 하드톱 소형 오픈카다. 톱을 닫으면 콤팩트하고 모던한 쿠페로, 톱을 열면 하드톱 컨버터블로 변신한다. 문스톤(하늘색 펄), 디아블로 레드, 체리 레드, 플래티늄 그레이(회색 펄), 블루, 블랙, 카이만 그린(연녹색 펄) 등 7가지 색상이 오픈카에 대한 동경을 자극한다.
엄밀하게 소형차는 아니지만(2000cc) 폴크스바겐의 뉴비틀도 꾸준하게 팔리는 3000만원대 수입차다(판매가 3340만원). 매달 40~50대가 꾸준히 팔려나가며 국내 판매 대수 1000대를 돌파한 뉴비틀은 오리지널 비틀을 여성을 겨냥해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한 모델이다. 뉴비틀의 실내엔 꽃병이 자리잡고 있다. 여성 고객을 겨냥한 뉴비틀의 배려다.
뉴비틀은 북미 지역에서는 이미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컬트(cult)적인 자동차 모델로 자리매김했으며, 유럽에서는 트렌드 세터 노릇을 하고 있다. 폴크스바겐코리아는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라는 점, 곡선과 원형으로 이뤄진 독특한 디자인과 컬러, 그리고 동급에서 보기 힘든 성능과 안전성이 장점이라고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