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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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 그 대답 질렸어”

TV토론회 내용·형식 비슷 유권자 시큰둥 … 특정사안 집중 검증 토론 형식 다변화해야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2-11-08 09: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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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질문 그 대답 질렸어”

    방송사 TV토론을 앞두고 사진 촬영에 응한 이회창, 노무현, 정몽준 후보 (왼쪽부터).

    대통령후보 초청 TV토론에 대한 유권자들 반응이 시큰둥하다. 10월28일부터 이뤄진 모 방송국 TV토론의 평균시청률은 7.9%(닐슨 미디어리서치). 1997년 같은 방송사 대선후보 TV토론 평균시청률 18.9%에 비해 10% 이상 낮아진 수치다.

    TV토론은 지금 두 가지 딜레마에 빠졌다. 최근 TV토론 모델 연구 논문을 내놓은 이종수 한양대 신문방송과 교수는 “비슷비슷한 TV토론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현재 3개 공중파방송을 비롯, 케이블방송, 전국 각 지역방송이 TV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후보 한 사람을 불러 3, 4명의 패널이 정치, 경제 등 분야별로 몇 가지 질문을 돌아가면서 던지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들 TV토론은 거의 비슷하다. SBS 한 토론의 경우 40분 동안 21개의 질문이 쏟아졌다. 2분마다 1개 질문과 1개 답변이 소화되는 비율이다. 시간 대비 질문 수는 각 방송사가 거의 비슷하다. 질문 내용도 마찬가지다. A방송사든, B방송사든 모두 경제성장률을 물었고 답변은 대동소이했다. 긴장감은 떨어지고, 사전에 짜고 하는 것 같았다.

    한 후보측은 예상질문을 ‘문제은행’ 형식으로 600여개 뽑았다. 신상문제에서 남북관계까지, 총론적 질문방식에서 각론적 질문방식까지 다 들어 있다. 심지어 퀴즈형 문제도 대비한다. 한 관계자는 “각각에 대해 2분 내 마무리되는 모범답변을 미리 만들어뒀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TV토론이 수차례 진행됐지만 자신들의 문제은행에서 벗어난 질문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황근 선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맥빠진 답변으로 인해 TV토론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권자들은 92년부터 TV토론을 보아왔다. 눈높이가 꽤 높아졌다. 올 들어서도 민주당-한나라당 경선, 지방선거 과정에서 TV토론이 여러 차례 열렸다. 그런데 뻔한 질문에 뻔한 답변이 이어지니 유권자들도 대통령후보 TV토론에 흥미를 잃을 만도 하다는 것이다.

    후보측, ‘문제은행’ 형식 600문항 만들어 사전대비



    일부 방송사는 차별화된 질문을 던짐으로써 다른 TV토론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러자 ‘편파적이다’, ‘지엽적이다’라는 시비가 나왔다. 서울 YMCA는 10월 들어 대통령후보 TV토론을 분석한 결과 말꼬리 잡기식 추가질의, 사회자의 주관이 개입된 경마식 패널 질의를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이 때문에 후보의 모든 부분을 검증하려 들지 말고, 특정 사안에 집중하는 TV토론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TV토론 형식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정범구 의원은 “우선순위를 매겨 중요한 의제 위주로 심층적인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미없고, 내용도 없는 TV토론은 일차적으로 후보 본인들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한나라당 한 의원은 “정책 토론이 안 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토론할 만한 ‘재료’ 자체가 없기 때문 아니냐”고 말했다. 이념도 노선도 제시하지 못한 채 급조되는 신당에서 오랜 시간 동안 심층 토론할 만한 정책 이슈가 나오겠느냐는 것. 그는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정책개발, 정책선거로의 분위기 조성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2002 대선 미디어 공정선거 국민연대는 TV토론을 모두 모니터하고 있다. 이 단체 엄민현 간사는 “후보들이 국정수행 능력을 검증받는 부분에 있어서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는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박스기사 참조). 그는 또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평소 ‘대통령 공부’를 얼마나 충실히 해왔는지 계속 지켜보겠다”고 한다. 국정에 대한 고민과 연구 없이 연출된 답변, 임기응변식 답변은 가려내겠다는 것이다.

    대통령후보 TV토론은 미디어 정치의 백미다. 유권자는 TV토론에서 후보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얻는다. 그러나 그 정보는 사실과 진실성에 근거해 있을 때만이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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