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번호의 맨 끝 네 자리를 음성사서함의 비밀번호로 그대로 사용할 경우 쉽게 도청 당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기관 관계자 A씨는 기자에게 “전화를 합법적으로 감청하려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급받거나 공문을 발송해 통신회사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지속적 관찰이 필요한 특정인물의 경우 감청과 함께 소리샘 서비스로 휴대폰 음성메시지를 확인하는 간단한 형태의 도청도 병행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A씨는 그 사례로 민주당 K 국회의원의 경우를 들었다. K의원은 권력형 비리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지금도 사정대상에 올라 있다고 한다. A씨는 011-×××-××××번 등 K의원 개인 휴대폰의 소리샘 서비스에 들어가 외부인사가 K의원 휴대폰에 남긴 음성메시지 내용을 정기적으로 듣고 있다고 한다. A씨는 “10월30일 현재 K의원 휴대폰엔 6개의 음성메시지가 남아 있더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이동통신회사들은 본인이 휴대폰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휴대폰에 들어 있는 음성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011의 경우 011-200-8585번, 018의 경우 018-본인 국번호 세 자리-0088번을 누른 뒤 비밀번호 네 자리를 입력해 메시지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비밀번호는 가입시 휴대폰 맨 끝 네 자리 번호가 그대로 지정되는데, 상당수 이용자들은 비밀번호를 변경하지 않은 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A씨는 “K의원 등 많은 의원들과 고위 관료들도 휴대폰 끝자리 네 자리를 그대로 비밀번호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비밀번호를 변경하지 않은 고객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동통신회사들은 가입시 휴대전화 맨 끝 네 자리를 아예 비밀번호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적극적 대책은 취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이동통신회사들이 수사기관에 고객의 음성사서함 비밀번호를 알려준 경우가 2288회나 되는 것으로 2001년 8월 밝혀졌다. 휴대폰 음성사서함의 경우 음성메시지 내용만 감청 대상이며 비밀번호 공개는 금지되어 있는데 이를 어긴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수사기관은 개인휴대폰의 비밀번호 정도는 언제든 알 수 있다는 얘기다.
K의원처럼 휴대폰 맨 끝 네 자리를 비밀번호로 쓰고 있는 이용자는 당장 비밀번호를 바꾸는 것이 좋다. 그렇더라도 이동통신회사들이 휴대폰 음성서비스를 완벽히 보호해줄 것으로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