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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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국민들도 살게 하라!

미국 전역서 대규모 반전 시위 잇따라 … 여론조사 ‘전쟁 찬성 56%, 반대 40%’ 부시 지지 여전

  • 한기흥/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eligius@donga.com

    입력2002-11-08 12: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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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 국민들도 살게 하라!

    10월26일 워싱턴에서 열린 이라크전 반대 시위.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공격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샌프란시스코 뉴욕 시카고 등 미국 대도시에서 대규모 반전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 대한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면서 미국 내 반전 움직임도 눈에 띄게 확산되고 있다. 최근 미국의 수도 워싱턴과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대규모의 반전 시위가 열렸다. ‘워싱턴 포스트’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보도에 따르면, 이 시위들은 베트남 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반전 시위였다.

    그동안 수면 아래 있다가 10월 초부터 꿈틀거리기 시작한 이라크전 반대 움직임이, ‘반전’이 한 시대의 사회문화적 코드였던 1960년대 후반 수준에 이를 것인지는 아직 속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군사력을 앞세운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외교 행태와 그 연장선상에서 추진되는 이라크전에 대한 비판 여론이 미국 내에서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토요일이었던 10월26일, 며칠 동안 가을비가 내리던 워싱턴의 하늘은 모처럼 청명했다. 게다가 워싱턴 일대를 공포에 떨게 했던 연쇄 저격범이 이틀 전에 잡혀 시민들이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나들이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주말이었다. 하지만 이날 기자는 워싱턴의 사무실에 나가던 중 예상치 못한 교통정체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경찰이 워싱턴 중심부의 간선도로인 컨스티튜션 애버뉴(Constitution Avenue)를 막고 차량 통행을 차단해, 도심으로 향하던 운전자들이 우회도로로 몰리는 바람에 심한 체증이 빚어졌던 것이다.

    때 아닌 ‘난리’의 원인은 워싱턴 모뉴먼트에서 베트남 전쟁 참전비에 이르는 컨스티튜션 가든에서 열린 이라크전 반대 시위였다. 이날 행사에는 미 전역에서 수만명 이상, 주최측의 추산에 따르면 10만명이 넘는 시위대가 몰려들었다.‘부시(대통령)+체니(부통령)+럼스펠드(국방부 장관)=악의 축’ ‘이라크 국민들도 살 수 있게 하라’ ‘폭탄 대신 부시를 떨어뜨리자’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등등 다양한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든 시위대들은 주변의 교통체증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소리 높여 반전 구호를 외쳤다.

    특이한 것은 이날 시위에 참석한 사람들의 모습이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전투적 시위를 벌이는 여느 시위대들과는 달랐다는 사실이다. 어린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온 부부와 애완견을 끌고 온 노인 등 시위와는 어울리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실제로 시위대 가운데는 ‘난생 처음 시위에 참석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은 북을 두드리고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는 등 흥겨운 분위기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한켠에서는 전쟁이나 사고현장에서 시신을 담는 보디백(body bag)에 누운 채 전쟁의 참화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시위대도 있었다.



    워싱턴 등 베트남 전쟁 이후 최대 인파 몰려

    이라크 국민들도 살게 하라!

    워싱턴에서 열린 반전 시위에 참가해 “우리 아이들과 이라크 아이들을 위해 전쟁에 반대한다”고 연설하고 있는 영화배우 수잔 서랜든.

    이날 연사로 나선 영화배우 수잔 서랜든은 “나는 이 자리에 엄마 입장으로 나왔다”며 “우리 아이들과 이라크 아이들이 걱정이 돼 전쟁에 반대한다”고 말해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흑인 인권운동가인 재시 잭슨 목사는 “노예제를 폐지하기 위한 남북전쟁과 파시즘에 맞서 싸운 제2차 세계대전 등은 꼭 필요했지만, 이라크 전쟁은 불필요하다”며 “정권교체가 필요한 것은 이라크가 아니라 미국”이라고 성토했다.

    같은 날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반전 시위에는 주최측 추산 8만, 경찰 추산 4만2000여명의 시위대가 도심을 메웠다. 60년대 반전운동의 진원지였던 UC 버클리대학이 자리잡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일대의 ‘베이 에어리어’는 미국이 이라크 공격을 개시할 경우, 미 서부지역 반전운동의 중심지가 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이날 시위에서 약삭빠른 상인들이 부시 대통령 등을 비난하는 구호가 적힌 티셔츠를 팔며 “장차 소장가치가 높은 기념품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 것도 반전운동의 진앙지로서 이 지역이 갖는 역사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 1주년인 10월7일에는 뉴욕의 센트럴파크와 시카고 시애틀 등지에서 대규모 반전 시위가 열렸다. 또 인터넷을 통해 전개되고 있는 이라크 전쟁 반대 청원 서한에는 미 전역에서 2만7000명이 넘는 학자들이 서명했다. 무브온(MoveOn.org)이라는 단체는 11월5일 중간선거에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 의원들을 지원하기 위해 180만 달러의 성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워싱턴에서 시위가 벌어진 10월26일,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에 없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참석차 멕시코의 휴양지인 로스 카보스에 있던 부시 대통령은 이날 유엔의 대 이라크 결의안 채택이 늦어지는 것에 짜증이 난 듯 “유엔이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가 그를 무장해제시킬 것”이라고 다시 으름장을 놓았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 반대 움직임에 눈썹도 까딱하지 않는 것은 미국 내에서 전쟁을 지지하는 여론이 반전 여론보다 높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갤럽이 10월21일과 22일 미국 전역의 성인 1018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 이라크 전쟁 찬성이 56%, 반대가 40%(신뢰도 95%, 오차한계 ±3%)로 나왔다. 이는 전쟁 지지 여론이 최고치에 달했던 지난해 11월의 74%에 비해선 다소 떨어진 것이지만, 최근 몇 개월 사이에 이뤄진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라크 전쟁에 찬성하는 비율은 반대 비율보다 대략 10% 이상 높게 나오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에 대한 무력 사용을 허용하는 결의안을 10월10일 하원이 찬성 296 반대 133, 상원이 찬성 77 반대 23이라는 큰 표차로 통과시킨 것도 이 같은 여론과 무관치 않다. 일각에선 지난해 9·11 테러의 충격이 워낙 컸기 때문에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여론이 베트남 전쟁 당시만큼 격렬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뒤 미국인 희생자가 속출하거나,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엔 반전 움직임에 불이 붙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베트남전 때도 반전 시위가 본격화한 것은 의회가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전쟁 권한을 부여하고 3년이 지난 1967년부터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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