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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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총장들 상아탑 접수

2, 3개 대학서 10년 이상 장수… 이상주 한완상 신극범 조규향씨 ‘3관왕’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2-11-08 12: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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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업 총장들 상아탑 접수
    10월15일 한성대 제4대 총장으로 취임한 한완상 전 부총리(66)는 8명의 교내외 후보와 경합을 벌였다. 이번 선거에서 초미의 관심은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나란히 장·차관으로 일했던 한 전 부총리와 최희선 전 차관의 맞대결. 또 교내인사와 교외인사가 총장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였다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한성대 총장 선출 방식은 교수 직선으로 4명의 후보를 뽑고 이사회가 이 가운데서 임명하는 절차를 밟는다. 한 전 부총리와 최 전 차관은 1, 2위로 나란히 결선까지 올랐으나 이사회는 두 번의 부총리와 두 번의 대학총장 경험이 있는 한완상씨를 낙점했다. 특히 학내 분규에 시달리고 있는 한성대측은 비슷한 관선이사 체제의 상지대를 이끌었던 한씨의 경력을 높게 산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한씨는 1994년 한국방송대, 99년 상지대에 이어 한성대에 부임, ‘총장 3관왕’이 됐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총장 3관왕 클럽에 가장 먼저 가입한 사람은 이상주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65)이다. 이부총리는 교수 7년, 총장 17년의 국내 최장기 총장 경력을 자랑하며 자칭 ‘직업이 총장’이다. 사실 이부총리는 서울대 사범대 교수(교육사회학) 시절 이렇다 할 보직을 가졌던 경험이 없다. 그러나 80년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 수석비서관을 거쳐 82년 45세의 젊은 나이에 강원대 총장으로 발탁된 이후 울산대, 한림대 총장까지 내리 17년간 총장만 지냈다.

    강원대 시절 이부총리를 기억하는 한 교수는 “80년대 초반 5공 인사인 데다 낙하산이라는 약점 때문에 교내 운동권 세력과 마찰이 컸다. 그러나 실세 총장으로 예산 확보 면에서 유리했고 강원대의 위상을 높이는 데도 기여했다. 화통한 성격과 리더십, 포용력 면에서 점수를 받은 편”이라고 했다.

    ‘관료의 총장화’ 곱지 않은 시선도



    그 후 이부총리는 학창 시절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 집안의 가정교사였던 인연 덕분에 울산대 총장으로 발탁됐다. 울산대에서 8년 동안 재단(이사장 정몽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고, 92년 ‘정주영 신당’ 창당 작업에 참여하면서 교육정책에 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두 번의 임기가 끝나자 한림대가 그를 찾았다.

    이부총리는 4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대학총장이 됐고, 모교도 아닌 3개 대학을 옮겨다니며 총장직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전문 총장시대’의 선두주자다. 그 뒤를 바짝 쫓으며 여전히 현역에서 일하고 있는 이가 신 극범 대전대 총장(70)이다.

    신총장은 연세대 출신으로 한양대에서 교수 생활을 했고, 80년대 초 문교부 교직국제국장을 거쳐 85년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 88년 한국교원대 총장, 98년 광주대 총장이 됐다. 한때 한완상 부총리 후임자로 이 부총리와 경합을 벌이기도 했으나 낙점을 받지 못하고 지난해 대전대 총장에 부임했다.

    이부총리나 신총장 모두 80년대 최고 권력을 등에 업고 어느 날 갑자기 국립대 총장에 임명되면서 총장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9월 한국방송통신대 총장으로 부임해 세 번째 총장직에 오른 조규향 총장(60)도 공교롭게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 출신. 행정고시 4회로 공직에 입문한 조총장은 교육부차관을 지낸 후 96년 부산외국어대 총장을 거쳐 98년 대통령비서실에 들어갔다. 몇 차례 교육부장관 후보에 오르기도 했으나 2000년 옷을 벗고 사이버대학인 서울디지털대학 총장으로 부임했다가 올해 방송통신대 총장에 임명되면서 소리 소문 없이 3관왕이 된 케이스다.

    한 교육계 원로는 “모교가 아닌 여러 대학의 총장을 역임하는 것은 분명 새로운 현상이다. 하지만 이들이 총장의 전문화 이전에 ‘관료의 총장화’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90년대 들어 총장의 개념을 바꿔놓은 사람으로 송자 대교 회장(66)을 빼놓을 수 없다. 무한경쟁체제에 접어든 당시 한국 대학은 도태냐, 도약이냐를 놓고 치열한 승부를 벌여야 했고 그만큼 총장의 역할도 변화를 요구받고 있었다. 92년 연세대 총장으로 선출되자 그는 “총장이 대학의 얼굴 노릇만 하던 시대는 지났다. 대접받는 총장이 아니라 심부름꾼 총장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4년 동안 ‘저금통 총장’ ‘돈만 아는 총장’이라는 빈정거림 속에서도 발전기금 모금에 앞장서 재정적으로 취약한 사립대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고, ‘경영자 총장’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전파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대학마다 경제·경영학과 출신 총장이 늘어난 것도 송총장과 무관하지 않다.

    직업 총장들 상아탑 접수


    그가 4년 임기를 마치자 고건 총장의 후임자를 물색하던 명지대가 손을 내밀었다. 명지대는 92년 이영덕 총장을 시작으로 고건, 송자, 최근의 선우중호 총장까지 외부 명망가들을 적극 영입해 학교 이미지 개선과 발전에 큰 성과를 거뒀다. 이후 지방대학과 군소 사립대학에서 한두 차례 총장을 거친 경력자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두 대학 이상을 거친 2관왕, 한 대학에서 내리 3선을 하는 장기집권형 등 직업 총장 시대, 장기집권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90년대 총장들은 아무리 외부 영입인사라 해도 공개 채용과 선출 절차를 통해 대학 구성원들의 지지와 신임을 얻으며 총장 자리에 올랐다는 점에서 과거 낙하산식 임명직 총장들과 구별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영식 광운대 총장(68).

    88년 연세대 직선 총장 1호라는 기록을 갖고 있는 박총장은 95년 교육부장관을 거쳐 97년 9월 광운대 총장으로 부임했다. 교육부장관 경력을 내세워 그가 가만히 앉아 ‘러브콜’을 받았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박총장은 신문에 난 총장 초빙 광고를 보고 직접 후보로 지원했다. “광운대는 사립대학이지만 재단이 좌지우지하지 않는 대학, 비교적 공익성이 강한 대학이어서 축적된 총장 노하우를 살릴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총장선출위원회에 의한 간접선거 방식이지만 첫 선출 때 19명과 경합을 벌였고, 2001년 재선 때는 17명의 경쟁자를 물리쳤다.

    2관왕 총장들의 이력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연세대 출신이 강세라는 사실이다. 박영식, 송자 총장과 함께 김병수 포천중문의대 총장(66)이 연대 총장 출신이고, 윤형섭 호남대 총장(69)은 연대 총장 경험은 없으나 각종 보직을 두루 맡았고 90년 교육부장관, 94년 건국대 총장을 거쳐 2001년 호남대 총장이 됐다. 교육부장관 교체설이 나올 때마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늘 하마평에 오르내렸던 안병영 전 교육부장관(61)도 여러 대학들로부터 총장직 제의를 받았으나 “연대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싶다”며 고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서울대 교수 출신으로 교육부장관을 거친 이돈희, 문용린 교수는 모두 평교수로 돌아갔고, 선우중호 총장만이 명지대로 둥지를 옮겨 총장 2관왕이 됐다.

    사실 경력직 총장들은 대학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원투수’로 등판한다. 안병만 한국외국어대 총장(61)과 유근종 목원대 총장(66)이 좋은 예. 안병만 총장은 75년부터 한국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기획처장, 행정대학원장, 부총장, 제5대 총장 등을 역임했고 올해 7대 총장으로 재선임됐다. 유근종 총장은 95년 3대 총장을 역임했고 올해 5대 총장으로 다시 선출돼 한 대학에서만 두 번째 총장 임기를 시작했다.

    경력 총장들 위기 때 구원 등판 잦아

    한국외대는 재단과의 마찰로 관선이사 체제가 계속되고 있고, 목원대는 올 2월 이군호 총장의 임기 만료 후 이사회의 파행적 운영으로 6개월 넘게 총장 자리를 비워놓다가 10월18일에서야 유근종 총장을 선임했다. 유총장은 “평교수로 돌아가 연구에만 전념하려 했는데 어려운 시기에 다시 부름을 받았다”면서 “구성원들의 화합과 대학 특성화를 통한 학교 브랜드 확립에 힘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미국 대학총장 평균 재임기간은 13년6개월.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 등 명문대학일수록 총장 임기가 길어져 15~20년 가까이 된다. 국내에서도 80년대까지는 일단 총장이 되면 연임하는 것이 관례였고 10년 이상 장기집권한 총장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화의 영향으로 직선제가 확산되면서 총장 수명이 훨씬 짧아졌다.

    박영식 광운대 총장은 “임기 첫 1년은 대학 살림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고, 다음 2년은 장기 발전 계획 세우느라 바쁘다. 그러고 나면 이미 차기 총장선거가 시작된다. 총장 훈련만 하다 총장직에서 물러나는 셈”이라며 “직선제든 간선제든 일단 총장을 뽑으면 재임 여부는 이사회가 결정해서 유능한 총장이라면 임기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직까지도 한국 대학 사회에서는 장기집권이 곧 독재라는 인식이 팽배해 능력 있는 총장들조차 단임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장기집권에 성공한 사례도 적지 않다. 숙명여대 이경숙 총장(59)은 올해 선거에 단독후보로 출마해 15대 총장에 선임됐다(임기 2006년까지). 13, 14, 15대까지 내리 12년을 총장직에 있는 셈. 80년대 초 11대 국회에 참여한 것 외에는 줄곧 학교 일에만 전념하며 대학 구성원들의 신뢰를 쌓는 데 성공했다.

    그 밖에도 오너 총장 가운데 김종량 한양대 총장(51)이 43세의 젊은 나이에 총장이 돼 지금까지 무난히 학교경영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고, 조정원 경희대 총장(55)도 97년부터 학교를 이끌어오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오너 2세이면서도 재단의 일방적 임명이 아닌 교수 선출 방식으로 총장에 올랐다는 것. 94년부터 총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동양대 최성해 총장(49)도 학교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로 오너 총장의 장점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대학 김운회 교수(경영학)는 “실무형 총장을 뽑아야 한다. 학자나 교육관료 출신이 아닌 대기업 사장 등 새로운 인물들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현청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은 “21세기 무한경쟁시대에 대학이 살아남으려면 직선제냐 간선제냐, 교내인사냐 외부 영입이냐를 따지는 이분법적 사고부터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 프린스턴, 예일, 브라운 등 미국 일류대학 총장들이 자진사퇴한 이유가 역량의 한계였다. 잘하면 오래 하고 부족하면 언제든지 물러나는 게 총장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까지도 전직 관료나 명망가를 영입해 대정부 로비나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필요하다면 히딩크 감독처럼 외국인 총장을 영입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변화와 개혁의 시대를 맞아 대학총장은 교수 출신이라는 불문율이 깨지고 있다. 30대에 총장이 돼서 총장으로 은퇴하고, 대기업 CEO가 대학을 경영하며, 파란 눈의 외국인 총장이 등장할 날도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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