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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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 달리는 황새·독수리·적토마…

선수들 외모·경기 스타일·출신지 따라 자연스럽게 새 이름 생겨

  • 축구 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

    입력2007-06-07 14: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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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룬 히딩크 감독은 한때 ‘오대영’으로 불렸다. 세계 강호들과의 경기에서 큰 점수차로 자주 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4강 신화 달성 이후에는 ‘희동구’로 불렸다. 다소 희극적인 별명이지만 그를 ‘한국화’하려는 사랑의 표현임이 틀림없다.

    별명은 한순간에 해당 선수나 감독의 이미지를 떠올려준다. 예컨대 ‘황새’ 황선홍과 ‘독수리’ 최용수는 별명 자체로 두 선수의 전성기 때 경기 스타일을 선명하게 말해준다.

    황선홍은 스타일리스트다. 우격다짐으로 골을 넣기보다는 언제나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움직인다. 한일월드컵 16강전. 후반전에서 회심의 프리킥 찬스를 맞이한 황선홍은 감각적인 판단으로 그라운드 바닥을 흐르는 빠른 슛을 날렸다. 공은 이탈리아 골키퍼 부폰에게 막혔지만, 후반전 막판 그 숨막히는 상황에서 벽을 쌓은 대여섯 명의 수비수가 프리킥을 막기 위해 공중으로 뛰어오를 것을 예상하고 그 밑으로 깔아넣는 슛을 날린다는 것은 그가 타고난 스타일리스트임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그는 ‘황새’라는 별명이 어울린다.

    구단 홍보 위해 재탕식 별명 급조하기도

    그런가 하면 최용수는 날카로운 직선을 구사한다. 그는 늘 골 냄새 짙은 골문 앞에서 어슬렁거린다. 공은 그를 중심으로 돌고, 그 역시 공의 원심력을 따라 골문 앞을 돌며 어느 순간 놀라운 집중력으로 파고들어 공의 중심을 가격한다. 상대 문전 20m 안팎에서 순식간에 먹잇감을 짧게 끊어치는 야수적인 직선의 매력은 최용수의 전매특허였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독수리’다.



    그동안 수많은 선수들이 별명에 어울리는 뛰어난 경기를 보여줬다. 1990년대 스타로 ‘적토마’ 고정운, ‘후반전의 사나이’ 이원식, ‘꾀돌이’ 윤정환이 있었고 새로운 세기의 스타들로 ‘반지의 제왕’ 안정환, ‘시리우스’ 이관우 등이 있다. ‘진공청소기’ 김남일도 있다.

    이런 별명들은 대부분 그 선수의 외모, 스타일, 이름, 경력, 출신지 등을 인용하는데 이를테면 프랑스의 철벽 수비수 마르셀 드사이는 거친 외모 때문에 ‘짐승’이라 불렸고, 종횡무진 운동장을 누비는 네덜란드의 에드가 다비즈는 ‘맹견 핏불’로 불렸으며, 터키의 하칸 수쿠르는 유럽과 아시아 문명을 가르는 지중해의 해협 이름을 따서 ‘보스포루스의 황소’라 불렸다.

    요즘은 구단 홍보를 위해 별명이 급조되는 인상이 짙다. 팬들이 불러줘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별명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이 써먹었을 법한 별명을 붙여주는 것이다. ‘왼발의 달인’ ‘프리킥의 마술사’ ‘꽃미남’ 같은 무색무취한 별명을 붙여주는 식인데 이는 해당 선수의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빛낸 선수로 아일랜드의 전설 로이 킨이 있다. 그는 퍼거슨 감독에게서 브라이언 롭슨이나 에릭 칸토나를 능가하는 가장 위대한 선수라는 칭송을 받았다.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을 누르며 한일월드컵 본선 진출에 공을 세웠으나 부상으로 정작 뛰지는 못한 이 불운한 영웅의 별명은 놀랍게도 ‘잔인한 기계’다. 미드필드를 혼자 힘으로 완전히 장악한 채 한 걸음의 후퇴도 용납하지 않는 공격적 스타일을 선보인 로이 킨에게 ‘잔인한 기계’보다 더 어울리는 별명은 없다.

    우리 선수들에게도 이처럼 강렬하면서도 독보적인 별명이 필요하다. 홍보를 위해 급조하거나 미디어가 관습대로 붙인 별명이 아니라 팬과 감독, 무엇보다 선수 본인이 이룩한 뛰어난 경기력과 매혹적인 스타일로 자연스럽게 얻는 아름다운 별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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