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국제경제와 외교통상을 두루 경험한 기획통으로 불린다. 지난 20여 년간 재무부와 국무부를 거치면서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과 우호관계를 유지해온 것도 장점 중 하나로 꼽힌다. 또한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비리 의혹 등 추문에 연루되지 않아 청렴성 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버드대 로스쿨과 케네디스쿨을 졸업한 그는 1983년 주택금융회사 페니메이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공직에 입문한 것은 85년 재무부로 자리를 옮기면서부터. 이후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 재임 시절(1989~92년) 국무차관으로 일하면서 옛 소련 붕괴와 독일 통일 문제에 관여했다. 1992~93년엔 백악관 비서실 차장으로 근무했다. 그가 ‘부시가의 남자’로 통하는 이유는 이렇듯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부터 깊은 인연을 맺었기 때문이다.
클린턴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직을 떠난 졸릭 전 부장관은 2001년 조지 부시 정부 출범과 함께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로 컴백했다. 2005년부터 18개월 동안 국무부 부장관으로서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재설정하는 일에 주력했다. 그는 중국을 국제사회의 ‘이해당사자(Stakeholder)’라 부르며 중국의 위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대신, 그에 걸맞은 역할과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그는 지난해 7월 재무장관에 발탁되지 못하자 행정부를 떠난 뒤 골드만삭스의 경영자로 일해왔다. 이후 약 10개월 만에 공직에 복귀한 것.
졸릭 전 부장관은 이사회 승인 절차를 거쳐 7월 세계은행 총재에 오르게 된다. 그가 울포위츠 총재의 여자친구 특혜 스캔들로 흐트러진 세계은행 내 미국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까. 아프리카 빈곤 퇴치 개혁안을 마련해 세계은행 본연의 사명을 수행하고, 30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야 하는 졸릭 전 부장관의 어깨가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