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남편이 북한에 강제송환됐을 당시 자신에게 도움을 청했던 편지를 다시 읽으며 눈물짓는 중국 한족 여성 A씨.
A씨는 중국 한족(漢族) 여성. 올해 8월, 당시 10개월 된 아들을 보듬고 기쁜 마음으로 한국을 찾은 그는 탈북자 출신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남편 J(44)씨의 청천벽력 같은 냉대와 맞닥뜨리곤 죽음까지 생각했다. 한국에 온 이튿날 J씨가 갑작스레 이혼을 요구한 것.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게 J씨가 내세운 이혼 사유였다. 하지만 그는 A씨와 중국에서 함께 살면서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하던 터였다. A씨가 한국에 오기 몇 달 전만 해도 매일같이 인터넷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으며 “보고 싶으니 빨리 (한국으로) 오라”고 졸라대던 J씨는 A씨가 한국 입국수속 준비를 하는 사이 한국에서 다른 탈북 여성을 사귀었고, 변심해 한국말을 한 마디도 할줄 모르는 A씨에게 헤어지자고 했던 것.
청천벽력 같은 냉대, 죽음까지 생각
탈북한 J씨는 8년 전 중국어를 몰라 한 조선족의 집에서 일을 해주며 겨우 밥술이나 뜨던 처지였다. 이를 불쌍히 여긴 A씨의 남동생이 자신의 작업장에서 일하게 해줬고, 그 과정에서 A씨는 J씨를 알게 됐다. J씨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다 정이 든 A씨는 그가 중국에서 안전하게 살게끔 돈을 써서 신분증을 만들어줬고, 그의 구혼을 받은 뒤 정식으로 혼인등록까지 했다. 그러던 중 2003년 한국행을 시도한 J씨는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한으로 강제송환됐다. 그는 한 달간 갇혀 있다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지만, 폐결핵에 걸려 A씨에게 간절히 도움을 청했다. A씨는 J씨와 그의 가족을 위해 약은 물론, 생활필수품과 돈까지 마련해 보내는 등 갖은 뒷바라지를 했다. 북송 당시 J씨가 인편을 통해 A씨에게 보낸 편지글을 보면 A씨에 대한 사랑의 감정과 절절한 그리움, 감사의 뜻, 보내주길 원하는 물품명세 등이 편지지 네 장 앞뒷면에 빼곡하게 적혀 있다. 중국에서 인신매매된 J씨 누나를 구해낸 것도 A씨였다.
건강을 회복한 뒤 한국행 기회를 엿보던 J씨는 마침내 2005년 한국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했고, 이후 중국에 홀로 남은 A씨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지난해 10월 J씨의 아들을 출산한 A씨는 8월 남편을 만나러 한국에 왔지만, J씨는 A씨를 중국으로 돌려보내고 아이를 고아원에 보내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J씨는 현재 모든 것을 바쳐 자신의 생명을 구하고 헌신적으로 돌본 중국인 아내에게 합의이혼을 종용하고 있는 상태.
북한의 인권탄압을 피해 중국으로 탈출한 재중(在中) 탈북자들이 불량한 중국인들에 의해 인신매매, 노동착취, 불법감금 등 인권을 침해받고 있는 현실은 그동안 적잖이 알려졌다. 그러나 거꾸로 탈북자들의 생존과 이해관계를 위해 잠시 활용된 뒤 버림받는 중국 본토 한족들의 사연이 언론에 보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탈북자와 중국에서 결혼한 뒤 한국으로 들어와 버림받은 한족은 A씨만이 아니다. 한족 남성 B(36)씨는 탈북 여성에 의해 버려진 경우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출신인 그는 9년 전 탈북 여성 김모(당시 19세) 씨를 우연히 만나 그가 처한 딱한 현실을 알게 된 뒤 그를 돕고 보호하면서 애정이 싹터 함께 살게 됐다. 당시 27세로 미혼이던 B씨는 김씨와 결혼했고, 첫아이(현재 8세)를 중국 현지에서 낳았다. 그런데 김씨는 2005년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이듬해 4월 B씨를 한국으로 오게 해 다시 둘째아이(현재 2세)를 낳았다.
그러나 그해 8월 김씨의 태도가 돌변했다. “다른 남자가 생겼다”며 중국인 남편 B씨에게 집에서 나가라고 한 것. 격분한 B씨는 김씨를 간통죄로 고소하려 했지만, 김씨는 고소하면 B씨가 보는 앞에서 자살하겠다고 위협함으로써 마음 약한 B씨를 어쩔 줄 모르게 했다. 한국 실정은 물론 한국말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김씨에게 휘둘린 B씨는 호구지책으로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고 있다.
잇따른 피해 사례 또 다른 사회문제 우려
한족 남성 C(33)씨 역시 탈북 여성에 의해 유기된 사례. 그는 4년 전 자신의 고향인 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로 흘러 들어온 탈북 여성 D씨를 돌봐주라는 인근 주민들의 부탁을 받고, 자신의 집에서 그를 보호하며 일자리도 알선해줬다. 그 과정에서 서로 좋은 감정이 생긴 두 사람은 C씨 부모의 허락을 받아 가정을 꾸렸다.이후 2005년 한국으로 밀입국한 뒤 한국 국적을 얻은 D씨는 ‘그동안 보살펴준 것에 감사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중국에 있는 C씨와 그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한편, 국제결혼 수속을 마친 뒤 C씨가 한국에 올 수 있도록 했다. 이에 C씨는 지난해 한국으로 왔고, 아내와 재회했다.
그러나 단란함은 한때였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귀가한 C씨는 D씨가 사라져버렸음을 알고 망연자실했다. 알고 보니 D씨는 이미 다른 한국 남성과 살고 있었고, C씨가 한국어를 모른다는 약점을 잡아 이혼소송까지 한 상태. C씨는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반소(反訴)를 제기해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다.
임시 거처를 마련해 남편에게 버림받은 A씨와 그의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서울중국인교회 최황규 목사는 “한족 피해 사례를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사실 크게 주목하지 않았는데, 잇따라 비슷한 사례를 상담하게 되면서 이것이 또 다른 사회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며 “교회 차원에서 A씨의 이혼 및 위자료청구소송 제기를 적극적으로 도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 법원이 중국 국적을 가진 한족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기란 쉽지 않다. 안타깝긴 하지만, 이들 사례는 당사자 간 사생활 영역에 속하는 문제여서 관계기관이 개입하기도 힘든 형편이다.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관리과 중국계의 한 상담관은 “탈북자와 관련한 상담도 받고 있지만, 그들에게 이용당한 뒤 한국에 들어와 버림받은 중국 한족 배우자에 대한 상담은 해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물론 위의 사례들은 일부 탈북자들의 비인륜적 작태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작별인사를 마치고 나오는 기자의 귀에 A씨의 힘겨운 외침이 오래도록 메아리로 남는 것은 무슨 까닭에서일까.
“나는 그(남편)가 지붕에 오르기 위한 사다리의 발판 하나에 불과했다. 사랑은 물거품처럼 스러졌고, 남은 것은 증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