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들이 개를 대하는 태도는 남다르다. 친구나 가족처럼 개와 함께 생활한다. 드라이브를 나설 때 아예 앞좌석에 개를 ‘모시고’ 외출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문제는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이런 개들의 상당수가 서너 살짜리 아이보다도 덩치가 큰 종자라는 데 있다. 이러다 보니 개가 사람에게 덤벼들어 무지막지한 상처를 입히는 사건도 자주 일어난다.
특히 막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한 어린이들이 성난 사냥개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고가 일어나면 영국의 신문과 방송은 수십 바늘을 꿰맨 아이의 얼굴 사진을 내보내며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올 새해 벽두부터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다섯 살 소녀 엘리 로렌슨 사건은 영국 사회의 ‘맹견’ 논쟁에 다시 한 번 불을 붙였다. 엘리는 새해 첫날을 맞아 리버풀에 있는 할머니 집을 찾았다가 집 안에 뛰어든 맹견종 핏불테리어에 70여 군데를 물어뜯긴 뒤 숨졌다.
문제는 엘리보다 덩치가 2배나 큰 개를 다섯 살짜리가 혼자 놀고 있던 집 안으로 들여놓은 사람이 바로 친할머니였다는 데 있었다. 마약거래 등으로 전과 경력이 있는 할머니는 이날도 마리화나를 흡입한 뒤 만취 상태에서 자신이 키우던 핏불테리어를 집 안에 들여놓는 바람에 참사를 자초했다.
막 걸음마 배우는 아이들에게 사냥개 덮쳐
핏불테리어는 투견 목적으로 사육되는 종자로 주인에게는 절대복종하지만 낯선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적대성을 드러낸다. 무는 힘도 보통 개의 2배나 될 정도로 사나운 종자로 알려져 있다.
손녀가 혼자 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맹견을 집 안에 들여놓는 바람에 손녀를 숨지게 한 할머니를 어디까지 처벌할 것인지를 놓고 영국 사회에는 열띤 논란이 벌어졌다. 엘리의 부모는 비록 고의는 아니었지만 애지중지하던 딸을 숨지게 한 할머니에 대해 살인죄 적용을 주장했다.
그러나 9월 법원은 6개월이 넘는 심리 끝에 법정최고형인 사형까지 언도받을 수 있는 살인죄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자 엘리의 부모는 반발했고 맹견을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졌다.
물론 영국에는 1991년 제정된 이른바 맹견법이 있다. 당시 어린아이들이 맹견에 물려죽는 사고가 잇따르고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개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데 따른 결과였다.
이 법에 따르면, 엘리를 살해한 핏불테리어를 포함해 4종에 대해 영국 내 사육과 판매가 금지된다. 뿐만 아니라 사육 금지된 개를 기르다 적발되면 6개월 이하의 징역, 그리고 이들 맹견이 사람을 해쳤을 경우 최고 2년 이하의 징역형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여론에 떠밀려 급작스럽게 제정된 법인 만큼 맹견법의 적용과정에 대해 논란도 잇따랐다. 우선 이종간 교배를 통해 다양한 잡종이 태어나는 만큼 어디까지를 사육금지 종자로 볼 것인지가 불분명했다. 공공장소에서 가죽끈에 매서 개를 끌고 다녀야 한다는 조항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적인 장소에서 사육하는 것까지 금지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애견론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애견단체를 비롯해 개 사육 규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사육금지 종자로 분류한 개들도 훈련만 잘 받으면 결코 사람을 무는 일은 없다는 점을 내세웠다. 잊을 만하면 사고를 일으키는 핏불테리어도 마찬가지다.
개 주인에 대한 처벌 강화 목소리
핏불테리어는 본래 ‘불베이팅(bullbaiting)’이라 불리는 영국식 도박 게임을 위해 길러진 종자다. 구덩이에 소떼를 몰아넣고 돈을 건 뒤 불도그로 하여금 공격하게 하는 이 게임에서 개의 공격성을 극대화하는 데 핏불테리어만큼 훌륭한 종자도 없었던 것.
그러나 1835년 정부가 이러한 게임을 불법화하자 도박꾼들은 투견 쪽으로 눈길을 돌려 핏불테리어를 투견용 종자로 사육했다. 정부 규제에 비판하는 사람들은 핏불테리어가 이렇게 공격성을 갖도록 훈련됐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동물에 대한 것일 뿐 훈련만 잘 시키면 주인에게는 복종심이 강한 동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 규제에 대해 또 다른 비판도 있다. 현행법이 ‘공공장소’에서의 사고만 규제하기 때문에 이웃집 같은 타인의 생활공간에서 벌어진 사고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5년 두 살배기 안나는 이웃집에서 기르던 일본산 아키타에 머리를 물어뜯겨 두개골이 드러날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었다. 아키타는 본래 곰 사냥을 위해 키우던 맹견의 일종이다.
안나의 부모는 주인에 대한 처벌은 물론 사고를 일으킨 개도 사살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이 사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며 꽁무니를 뺐다. 사고를 낸 아키타가 맹견법에서 규정한 사육금지 종자가 아닌 데다, 사고 장소도 ‘공공장소’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걸핏하면 영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맹견 사고에 대한 법원 판결 역시 관대한 편이다. 얼마 전 두 살짜리 어린이를 물어 얼굴에 40바늘을 꿰매고 실명 위기를 가져올 정도의 중상을 입힌 사고에 대해 법원은 개 주인에게는 2000파운드(약 400만원)의 벌금을 물렸지만 개에 대해서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어린이를 둔 부모들은 현행법이 개에 물린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한 법인지, 가해자 격인 개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법 개정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일부 종자의 사육을 금지하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가 이러한 종자를 풀어놓거나 방치하는 개 주인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스코틀랜드 등 일부 지방에서는 한때 모든 종류의 개들에 마이크로칩 부착을 의무화하는 입법안이 마련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번번이 동물보호 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됐다. 사자만한 개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영국인들의 생활습관에 비춰볼 때 맹견 관련 규제강화 법안은 ‘토끼 잡기 위해 대포를 들고 나서는 격’이라는 반론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이런 개들의 상당수가 서너 살짜리 아이보다도 덩치가 큰 종자라는 데 있다. 이러다 보니 개가 사람에게 덤벼들어 무지막지한 상처를 입히는 사건도 자주 일어난다.
특히 막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한 어린이들이 성난 사냥개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고가 일어나면 영국의 신문과 방송은 수십 바늘을 꿰맨 아이의 얼굴 사진을 내보내며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올 새해 벽두부터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다섯 살 소녀 엘리 로렌슨 사건은 영국 사회의 ‘맹견’ 논쟁에 다시 한 번 불을 붙였다. 엘리는 새해 첫날을 맞아 리버풀에 있는 할머니 집을 찾았다가 집 안에 뛰어든 맹견종 핏불테리어에 70여 군데를 물어뜯긴 뒤 숨졌다.
문제는 엘리보다 덩치가 2배나 큰 개를 다섯 살짜리가 혼자 놀고 있던 집 안으로 들여놓은 사람이 바로 친할머니였다는 데 있었다. 마약거래 등으로 전과 경력이 있는 할머니는 이날도 마리화나를 흡입한 뒤 만취 상태에서 자신이 키우던 핏불테리어를 집 안에 들여놓는 바람에 참사를 자초했다.
막 걸음마 배우는 아이들에게 사냥개 덮쳐
핏불테리어는 투견 목적으로 사육되는 종자로 주인에게는 절대복종하지만 낯선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적대성을 드러낸다. 무는 힘도 보통 개의 2배나 될 정도로 사나운 종자로 알려져 있다.
손녀가 혼자 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맹견을 집 안에 들여놓는 바람에 손녀를 숨지게 한 할머니를 어디까지 처벌할 것인지를 놓고 영국 사회에는 열띤 논란이 벌어졌다. 엘리의 부모는 비록 고의는 아니었지만 애지중지하던 딸을 숨지게 한 할머니에 대해 살인죄 적용을 주장했다.
그러나 9월 법원은 6개월이 넘는 심리 끝에 법정최고형인 사형까지 언도받을 수 있는 살인죄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자 엘리의 부모는 반발했고 맹견을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졌다.
물론 영국에는 1991년 제정된 이른바 맹견법이 있다. 당시 어린아이들이 맹견에 물려죽는 사고가 잇따르고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개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데 따른 결과였다.
이 법에 따르면, 엘리를 살해한 핏불테리어를 포함해 4종에 대해 영국 내 사육과 판매가 금지된다. 뿐만 아니라 사육 금지된 개를 기르다 적발되면 6개월 이하의 징역, 그리고 이들 맹견이 사람을 해쳤을 경우 최고 2년 이하의 징역형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여론에 떠밀려 급작스럽게 제정된 법인 만큼 맹견법의 적용과정에 대해 논란도 잇따랐다. 우선 이종간 교배를 통해 다양한 잡종이 태어나는 만큼 어디까지를 사육금지 종자로 볼 것인지가 불분명했다. 공공장소에서 가죽끈에 매서 개를 끌고 다녀야 한다는 조항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적인 장소에서 사육하는 것까지 금지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애견론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애견단체를 비롯해 개 사육 규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사육금지 종자로 분류한 개들도 훈련만 잘 받으면 결코 사람을 무는 일은 없다는 점을 내세웠다. 잊을 만하면 사고를 일으키는 핏불테리어도 마찬가지다.
개 주인에 대한 처벌 강화 목소리
친할머니가 풀어놓은 애완견에 물어뜯겨 숨진 5세 소녀 엘리 로렌슨의 생전 모습.
그러나 1835년 정부가 이러한 게임을 불법화하자 도박꾼들은 투견 쪽으로 눈길을 돌려 핏불테리어를 투견용 종자로 사육했다. 정부 규제에 비판하는 사람들은 핏불테리어가 이렇게 공격성을 갖도록 훈련됐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동물에 대한 것일 뿐 훈련만 잘 시키면 주인에게는 복종심이 강한 동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 규제에 대해 또 다른 비판도 있다. 현행법이 ‘공공장소’에서의 사고만 규제하기 때문에 이웃집 같은 타인의 생활공간에서 벌어진 사고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5년 두 살배기 안나는 이웃집에서 기르던 일본산 아키타에 머리를 물어뜯겨 두개골이 드러날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었다. 아키타는 본래 곰 사냥을 위해 키우던 맹견의 일종이다.
안나의 부모는 주인에 대한 처벌은 물론 사고를 일으킨 개도 사살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이 사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며 꽁무니를 뺐다. 사고를 낸 아키타가 맹견법에서 규정한 사육금지 종자가 아닌 데다, 사고 장소도 ‘공공장소’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걸핏하면 영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맹견 사고에 대한 법원 판결 역시 관대한 편이다. 얼마 전 두 살짜리 어린이를 물어 얼굴에 40바늘을 꿰매고 실명 위기를 가져올 정도의 중상을 입힌 사고에 대해 법원은 개 주인에게는 2000파운드(약 400만원)의 벌금을 물렸지만 개에 대해서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어린이를 둔 부모들은 현행법이 개에 물린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한 법인지, 가해자 격인 개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법 개정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일부 종자의 사육을 금지하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가 이러한 종자를 풀어놓거나 방치하는 개 주인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스코틀랜드 등 일부 지방에서는 한때 모든 종류의 개들에 마이크로칩 부착을 의무화하는 입법안이 마련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번번이 동물보호 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됐다. 사자만한 개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영국인들의 생활습관에 비춰볼 때 맹견 관련 규제강화 법안은 ‘토끼 잡기 위해 대포를 들고 나서는 격’이라는 반론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