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수는 이미 과잉상태다. 따라서 정부의 의대 정원 동결 방침은 때늦은 감이 있지만 당연한 조치다.”
“의사를 더 늘려 경쟁을 촉진시켜야 의료 서비스가 향상된다. 의사 정원을 동결하면 기존 의사들의 ‘밥그릇’을 보장해주는 꼴이 된다.”
적정한 의사 인력규모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정부가 8월9일 이한동 국무총리 주재로 개최한 의약분업 관계부처 장관회의에서 의료계의 휴-폐업과 종합병원 전공의 파업 등에 대한 대책 가운데 하나로 의과대학 정원 감축 및 동결 방안을 결정한 직후부터의 일이다. 2002년까지 금년 대비 10%를 감축하고 그 수준에서 동결하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의사들은 의대 정원 동결 방침에 대해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 송파구에서 개업하고 있는 의사 이모씨(39)는 “IMF 이후 몸담고 있던 병원이 도산하자 사회적으로 존경도 받지 못하고 환자에게 시달리기만 하느니 택시 운전이나 하겠다면서 운전대를 잡은 일반외과 의사 2명이 의료계에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면서 “정부가 당연한 일을 해놓고 생색을 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기도 광주에서 개업하고 있는 최모씨(40)는 “자리잡지 못한 의사들이 늘어나는 게 IMF 사태 이후 중소병원이 줄줄이 도산한 특수한 상황 때문만은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씨는 “90년대 초반부터 수도권 일부 종합병원은 전문의가 남아돌자 1, 2년 무급근무를 전제로 채용하기도 했다”면서 “이 무렵부터 의사들은 ‘의사 과잉’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정부의 의대 정원 동결 방침에 대해서는 시민들의 반발이 만만찮은 상황이다. 의과대학 정원문제를 담당하는 교육부 대학행정지원과 임창빈 사무관은 “정부의 의대 정원 동결 방침 발표 직후 의사들의 기득권을 보장해주는 조치라고 비난하는 학부모들의 항의전화가 줄을 이었다”고 전했다. 자녀들을 의대에 진학시키려는 학부모들이 의외로 많아 의대 정원 동결 방침이 사회적 저항을 받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적정 의사 수를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이던 94년 8월 교육부와 보건사회부가 당시까지 8년째 동결돼 있던 의대 입학정원의 증원 문제를 둘러싸고 의견차이를 보였을 때도 격론이 일었다. 당시 언론들은 교육부의 800명 증원 방침에 맞서 보사부가 200명이면 충분하다고 발표하자 “보사부가 ‘의과대학 신`-`증설 저지’를 외치는 의학협회 입장을 대변한 것 아니냐”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의대 정원 ‘대폭’ 증원에 찬성하는 논리는 소박하다. 국내 최고의 의료진을 갖춘 것으로 알려진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3시간 대기 3분 진료’가 보통인데, 환자들의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의사와 병원의 숫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의사가 증가할수록 경쟁이 되어 의료 서비스의 질이 향상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작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97년 말 현재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가 1.2명. 미국 2.7명, 프랑스 3.0명, 일본 1.8명(96년 말 기준), 영국 1.7명(96년 말 기준)에 비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선진국과 단순 비교하면 의사 숫자를 더 늘려야 하고, 의사 수가 과잉이라는 의료계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셈이다.
그러나 OECD 통계에도 허점이 있다는 의료계 주장은 설득력이 없지 않다. 대한의학협회 백용기 기획실장은 “OECD 통계는 어디까지나 ‘서양의학’을 공부한 의사들만 포함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 엄연히 의료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한의사를 의사 숫자에 포함하면 사정은 달라진다는 얘기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창엽 교수는 “우리나라 경제 수준에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의사 숫자가 많다고 보기도 어렵지만 적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 의대 졸업생 배출은 과잉상태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현재 의대 입학생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는 14, 15년 후에는 과잉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현재 의대 신입생 정원은 3270명이다.
김교수는 또 우리나라 의사 숫자가 최근 들어 굉장히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점도 문제라고 주장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의사 가운데 70% 정도가 30, 40대라는 점이 그 증거라는 것. 이는 최근 10년 사이에 의사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음을 의미한다(‘표’ 참조).
대한의학협회 백용기 기획실장은 “의대 정원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과거 정권이 의료인력 수급계획을 무시하고 정치적인 이유로 무더기로 의대를 신`-`증설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백실장은 이어 “이 때문에 일부 의대에서는 충분한 교수인력을 확보하지 못했고, 의대 교육 수준 저하 등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의사인력 증원 주장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의료서비스의 특성에 대한 이해 부족이 바로 그것이다. 일반 상품의 경우 공급이 늘어나면 그만큼 경쟁이 심화되고 공급자는 가격을 인하하거나 상품 질의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비자의 눈길을 끌 수 없고, 그것은 경쟁에서의 낙오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료서비스는 다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우석균 국장은 “의사는 숫자가 늘어도 도태되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과잉진료 등의 형태로 의사 스스로 수요를 창출하는 것도 그런 생존방법 가운데 하나다. 사실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의사는 소비자인 환자보다 훨씬 더 우월한 지위에 있기 때문에 과잉진료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적정 의료인력을 둘러싼 현재의 논란이 94년 때보다는 훨씬 더 성숙해 있다는 점일 것이다. 현 시점에서는 의사 숫자가 적다고 할 수 있지만 가까운 장래에 의사가 과잉상태가 될 것이라는 보건복지부 관측에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복지부 의약분업추진반 최희주 과장은 “현재 의사가 적다고 해도 매년 배출되는 의사 숫자가 많고, 의약분업 정착 이후 국민들이 병의원을 찾는 횟수가 줄어들 것(의사측에서 보면 수요 감소)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의사 과잉문제가 곧 대두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과장은 오히려 의료인력의 과잉 논란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전체 의사 중 전문의의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점이라고 덧붙였다.
시민단체도 의대 정원 동결 방침 자체보다는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을 문제삼고 있는 분위기다. 의약분업 정착을 위한 시민운동본부 이강원 사무국장은 “시민단체가 의대 정원 동결 문제에 공식적인 입장을 정하지는 않았다”면서 “사회적으로 충분한 논의를 통해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의료계 주장대로 의대 정원 증가가 많은 부작용을 낳은 것도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 “그동안 논란을 빚은 가운데 증원해왔던 법조인력과의 형평성, 또 소비자 입장에서 양질의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의협의 우석균 국장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우국장은 “정부의 의대 정원 동결 방침은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그것도 의사들의 반발에 밀려 정부가 결정한 듯한 인상을 심어줌으로써 일반인의 반발을 사고 있다”면서 “의대 정원 동결 문제에 관한 논의와 실행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보건의료발전위원회에 다양한 사회계층의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사를 더 늘려 경쟁을 촉진시켜야 의료 서비스가 향상된다. 의사 정원을 동결하면 기존 의사들의 ‘밥그릇’을 보장해주는 꼴이 된다.”
적정한 의사 인력규모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정부가 8월9일 이한동 국무총리 주재로 개최한 의약분업 관계부처 장관회의에서 의료계의 휴-폐업과 종합병원 전공의 파업 등에 대한 대책 가운데 하나로 의과대학 정원 감축 및 동결 방안을 결정한 직후부터의 일이다. 2002년까지 금년 대비 10%를 감축하고 그 수준에서 동결하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의사들은 의대 정원 동결 방침에 대해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 송파구에서 개업하고 있는 의사 이모씨(39)는 “IMF 이후 몸담고 있던 병원이 도산하자 사회적으로 존경도 받지 못하고 환자에게 시달리기만 하느니 택시 운전이나 하겠다면서 운전대를 잡은 일반외과 의사 2명이 의료계에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면서 “정부가 당연한 일을 해놓고 생색을 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기도 광주에서 개업하고 있는 최모씨(40)는 “자리잡지 못한 의사들이 늘어나는 게 IMF 사태 이후 중소병원이 줄줄이 도산한 특수한 상황 때문만은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씨는 “90년대 초반부터 수도권 일부 종합병원은 전문의가 남아돌자 1, 2년 무급근무를 전제로 채용하기도 했다”면서 “이 무렵부터 의사들은 ‘의사 과잉’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정부의 의대 정원 동결 방침에 대해서는 시민들의 반발이 만만찮은 상황이다. 의과대학 정원문제를 담당하는 교육부 대학행정지원과 임창빈 사무관은 “정부의 의대 정원 동결 방침 발표 직후 의사들의 기득권을 보장해주는 조치라고 비난하는 학부모들의 항의전화가 줄을 이었다”고 전했다. 자녀들을 의대에 진학시키려는 학부모들이 의외로 많아 의대 정원 동결 방침이 사회적 저항을 받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적정 의사 수를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이던 94년 8월 교육부와 보건사회부가 당시까지 8년째 동결돼 있던 의대 입학정원의 증원 문제를 둘러싸고 의견차이를 보였을 때도 격론이 일었다. 당시 언론들은 교육부의 800명 증원 방침에 맞서 보사부가 200명이면 충분하다고 발표하자 “보사부가 ‘의과대학 신`-`증설 저지’를 외치는 의학협회 입장을 대변한 것 아니냐”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의대 정원 ‘대폭’ 증원에 찬성하는 논리는 소박하다. 국내 최고의 의료진을 갖춘 것으로 알려진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3시간 대기 3분 진료’가 보통인데, 환자들의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의사와 병원의 숫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의사가 증가할수록 경쟁이 되어 의료 서비스의 질이 향상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작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97년 말 현재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가 1.2명. 미국 2.7명, 프랑스 3.0명, 일본 1.8명(96년 말 기준), 영국 1.7명(96년 말 기준)에 비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선진국과 단순 비교하면 의사 숫자를 더 늘려야 하고, 의사 수가 과잉이라는 의료계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셈이다.
그러나 OECD 통계에도 허점이 있다는 의료계 주장은 설득력이 없지 않다. 대한의학협회 백용기 기획실장은 “OECD 통계는 어디까지나 ‘서양의학’을 공부한 의사들만 포함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 엄연히 의료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한의사를 의사 숫자에 포함하면 사정은 달라진다는 얘기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창엽 교수는 “우리나라 경제 수준에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의사 숫자가 많다고 보기도 어렵지만 적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 의대 졸업생 배출은 과잉상태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현재 의대 입학생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는 14, 15년 후에는 과잉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현재 의대 신입생 정원은 3270명이다.
김교수는 또 우리나라 의사 숫자가 최근 들어 굉장히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점도 문제라고 주장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의사 가운데 70% 정도가 30, 40대라는 점이 그 증거라는 것. 이는 최근 10년 사이에 의사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음을 의미한다(‘표’ 참조).
대한의학협회 백용기 기획실장은 “의대 정원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과거 정권이 의료인력 수급계획을 무시하고 정치적인 이유로 무더기로 의대를 신`-`증설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백실장은 이어 “이 때문에 일부 의대에서는 충분한 교수인력을 확보하지 못했고, 의대 교육 수준 저하 등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의사인력 증원 주장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의료서비스의 특성에 대한 이해 부족이 바로 그것이다. 일반 상품의 경우 공급이 늘어나면 그만큼 경쟁이 심화되고 공급자는 가격을 인하하거나 상품 질의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비자의 눈길을 끌 수 없고, 그것은 경쟁에서의 낙오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료서비스는 다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우석균 국장은 “의사는 숫자가 늘어도 도태되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과잉진료 등의 형태로 의사 스스로 수요를 창출하는 것도 그런 생존방법 가운데 하나다. 사실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의사는 소비자인 환자보다 훨씬 더 우월한 지위에 있기 때문에 과잉진료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적정 의료인력을 둘러싼 현재의 논란이 94년 때보다는 훨씬 더 성숙해 있다는 점일 것이다. 현 시점에서는 의사 숫자가 적다고 할 수 있지만 가까운 장래에 의사가 과잉상태가 될 것이라는 보건복지부 관측에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복지부 의약분업추진반 최희주 과장은 “현재 의사가 적다고 해도 매년 배출되는 의사 숫자가 많고, 의약분업 정착 이후 국민들이 병의원을 찾는 횟수가 줄어들 것(의사측에서 보면 수요 감소)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의사 과잉문제가 곧 대두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과장은 오히려 의료인력의 과잉 논란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전체 의사 중 전문의의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점이라고 덧붙였다.
시민단체도 의대 정원 동결 방침 자체보다는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을 문제삼고 있는 분위기다. 의약분업 정착을 위한 시민운동본부 이강원 사무국장은 “시민단체가 의대 정원 동결 문제에 공식적인 입장을 정하지는 않았다”면서 “사회적으로 충분한 논의를 통해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의료계 주장대로 의대 정원 증가가 많은 부작용을 낳은 것도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 “그동안 논란을 빚은 가운데 증원해왔던 법조인력과의 형평성, 또 소비자 입장에서 양질의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의협의 우석균 국장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우국장은 “정부의 의대 정원 동결 방침은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그것도 의사들의 반발에 밀려 정부가 결정한 듯한 인상을 심어줌으로써 일반인의 반발을 사고 있다”면서 “의대 정원 동결 문제에 관한 논의와 실행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보건의료발전위원회에 다양한 사회계층의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