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5일 밤 9시(이하 미국 현지시각) 미국 버지니아주 495번 고속도로. 한 한국인 여성이 달리던 택시에서 떨어져 숨졌다. 이 여인은 대구시 이천동에 소재한 미 육군 제20지원단(캠프 워커) 복지지원센터의 예산 분석가 박춘희씨(36). 군무원 신분인 박씨는 미 국방부 초청으로 2주간의 현지 출장교육을 받기 위해 이날 오후 7시30분경 미국 덜레스공항에 도착, 택시를 타고 워싱턴의 숙소로 가던 길이었다.
사체를 발견한 다른 차량 운전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버지니아주 경찰은 “박씨가 달리는 택시에서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는 파키스탄인 택시 운전기사의 일방적 진술만 믿고 서둘러 사건을 단순자살로 몰아갔다.
그러나 8월14일 미 육군 수사대(CID)는 경찰로부터 수사 진전사항에 대해 보고받은 뒤 기록을 인계받아 돌연 이 사건에 대한 전면 재수사에 나섰다. 갑작스럽게 ‘단순자살’에서 ‘의문사’로 급반전이 이뤄진 까닭은 뭘까.
“미국인이 죽었다면 처음부터 쉽게 사건을 매듭지으려 했겠는가. 한 인간의 어이없는 죽음을 무턱대고 자살로 단정짓는 미국 경찰의 무성의함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박씨의 남편은 대구에서 활동 중인 화가 남학호씨(41). 뒤늦게 비보를 접하고 8월9일 현지에 도착한 그는 현재 미국 메릴랜드주 최상진 목사(워싱턴DC 평화나눔공동체 대표)의 집에 머물고 있다. 남씨는 8월17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아내는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다. 12년째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아무 문제가 없었고 성격도 쾌활하다. 이번 교육에 대해서도 아내는 기대가 무척 컸다”며 울먹였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현지 교민들은 “자국민이 피해자가 아닌 경우 심심찮게 사건 축소`-`은폐를 자행해온 미국 경찰의 배타성과 ‘불평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며 크게 분개하는 분위기다.
8월7일 버지니아시립병원에서 이뤄진 부검 결과 밝혀진 박씨의 사인은 뇌진탕과 목뼈 골절. “타살 가능성이 짙다”는 병원측의 소견이 있었지만 경찰과 미국언론들은 ‘자살’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8월10일 남씨가 현지에서 직접 미 국방부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한인 언론들이 강력히 이의를 제기하는 등 ‘반미’ 여론이 대대적으로 일자 뒤늦게 CID가 개입했다. “박씨 사건으로 교민사회가 후끈 달아올랐다.” 현지에서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남씨를 돕고 있는 최목사는 “매향리 사태, 한강 독극물 방류사건 등 일련의 사건으로 불거진 ‘반미’감정이 이번 사건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미국측이 조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고 귀띔했다.
초동수사에 대한 미국 경찰의 허술함은 남씨와 현지 교민들의 몇 가지 지적에서도 엿볼 수 있다. 우선 경찰은 사고 당시의 택시 주행속도가 성인 남성조차 문을 열기 힘든 시속 115km대였다는 점은 간과한 채 “뛰어내렸다”는 운전기사 아슬란 타놀리(44)의 말만 중시했다는 것. 또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남자용 안경을 박씨의 안경으로 오인할 정도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박씨의 안경은 그녀의 가방 안에서 뒤늦게 발견됐다.
사고 당시 박씨가 차에서 뛰어내리며 “wrong wrong out”(뭔가 잘못되고 있다)이라 외쳤다는 택시기사의 말도 수긍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보편적인 한국인의 정서로 미뤄볼 때 자살하면서까지 영어를 쓸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 남씨는 “이같은 정황을 감안할 때 이번 사건의 배후엔 아내와 택시기사 이외에 제3의 인물이 개입돼 있는 것이 분명하다”며 수사과정에서 박씨가 사고 직전 미시시피에 가 있던 직장 상사(미국인)와의 핸드폰 통화를 시도한 사실이 드러났음을 근거로 들고 있다.
경찰과 합동수사팀을 꾸린 CID는 8월18일(이하 한국시각) 현재 택시 운전기사에 대한 수사를 보강하고 사건현장 재검증에 나서는 한편, 이번 수사의 초점을 주한미군과의 관련성에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견상 사건수사에서의 ‘평등’은 어느 정도 이뤄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초동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수사 결과가 만족스러울지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박씨의 직책인 ‘예산 분석가’는 미군부대에서 한국 군무원이 가질 수 있는 지위로는 ‘노른자위’라고 할 만한 자리. 대구 미군기지 내 한국인 근무자 노조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부대 내 골프장 회원권 발급, 관리가 박씨의 주업무였다”며 박씨에 대한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다. 그러나 진상규명을 위한 국내 시민`-`사회단체들의 움직임이 점차 확산되고 있어 수사 결과에 따라선 이번 사건의 파장이 의외로 커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군 사회복지기금을 관리하는 직책인 만큼 금전문제를 둘러싼 갈등이나 이성간의 치정문제 등 박씨의 부대 내부생활에 대한 수사도 이뤄져야 한다.” 8월17일 숨진 박씨의 친지와 동료를 만난 ‘미군기지 되찾기 대구시민모임’ 배종진 사무국장(34)은 “단순한 사건이 아닐 수도 있다. 이미 미군기지에선 박씨와 박씨가 통화하려 했던 직장 상사와 관련된 일에 대해 함구령이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며 “시민단체 차원에서 미국측이 공정하고 정확한 수사에 임하는지 여부를 지속적으로 감시해 나갈 것”이라 밝혔다.
주한미군 범죄근절운동본부 이소희 간사도 “아직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엇이라 단정짓긴 어렵다”면서도 “만일 미국인, 특히 미군이 이 사건에 개입됐을 경우 적극적으로 이 사건의 의혹을 파헤칠 것”이라 말했다.
‘박춘희씨 의문사 진상규명 범대구 미술인 대책위원회’를 결성, 8월14일 대구 캠프 워커 앞에서 항의 성명을 발표한 바 있는 한국미술협회 대구지회도 “박씨가 군무원의 신분으로 공무 중 사망한 만큼 주한미군 책임자의 해명과 이번 사건에 따른 경비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라며 미군측이 실효성 있는 대처방안을 마련할 때까지 남씨와 뜻을 같이한다는 방침이다.
CID의 정식 수사 결과가 나오기까진 1, 2개월 가량 더 기다려야 한다. 운전기사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테스트 결과도 5주 정도 지나야 나올 전망이다. 교민사회에서 ‘토요일 밤의 미스터리’로 불리는 이번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가. ‘작은 승리’에 만족하지 않는 많은 한국인은 미 당국의 공정하고 정확한 수사를 바라고 있다.
사체를 발견한 다른 차량 운전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버지니아주 경찰은 “박씨가 달리는 택시에서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는 파키스탄인 택시 운전기사의 일방적 진술만 믿고 서둘러 사건을 단순자살로 몰아갔다.
그러나 8월14일 미 육군 수사대(CID)는 경찰로부터 수사 진전사항에 대해 보고받은 뒤 기록을 인계받아 돌연 이 사건에 대한 전면 재수사에 나섰다. 갑작스럽게 ‘단순자살’에서 ‘의문사’로 급반전이 이뤄진 까닭은 뭘까.
“미국인이 죽었다면 처음부터 쉽게 사건을 매듭지으려 했겠는가. 한 인간의 어이없는 죽음을 무턱대고 자살로 단정짓는 미국 경찰의 무성의함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박씨의 남편은 대구에서 활동 중인 화가 남학호씨(41). 뒤늦게 비보를 접하고 8월9일 현지에 도착한 그는 현재 미국 메릴랜드주 최상진 목사(워싱턴DC 평화나눔공동체 대표)의 집에 머물고 있다. 남씨는 8월17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아내는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다. 12년째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아무 문제가 없었고 성격도 쾌활하다. 이번 교육에 대해서도 아내는 기대가 무척 컸다”며 울먹였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현지 교민들은 “자국민이 피해자가 아닌 경우 심심찮게 사건 축소`-`은폐를 자행해온 미국 경찰의 배타성과 ‘불평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며 크게 분개하는 분위기다.
8월7일 버지니아시립병원에서 이뤄진 부검 결과 밝혀진 박씨의 사인은 뇌진탕과 목뼈 골절. “타살 가능성이 짙다”는 병원측의 소견이 있었지만 경찰과 미국언론들은 ‘자살’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8월10일 남씨가 현지에서 직접 미 국방부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한인 언론들이 강력히 이의를 제기하는 등 ‘반미’ 여론이 대대적으로 일자 뒤늦게 CID가 개입했다. “박씨 사건으로 교민사회가 후끈 달아올랐다.” 현지에서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남씨를 돕고 있는 최목사는 “매향리 사태, 한강 독극물 방류사건 등 일련의 사건으로 불거진 ‘반미’감정이 이번 사건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미국측이 조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고 귀띔했다.
초동수사에 대한 미국 경찰의 허술함은 남씨와 현지 교민들의 몇 가지 지적에서도 엿볼 수 있다. 우선 경찰은 사고 당시의 택시 주행속도가 성인 남성조차 문을 열기 힘든 시속 115km대였다는 점은 간과한 채 “뛰어내렸다”는 운전기사 아슬란 타놀리(44)의 말만 중시했다는 것. 또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남자용 안경을 박씨의 안경으로 오인할 정도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박씨의 안경은 그녀의 가방 안에서 뒤늦게 발견됐다.
사고 당시 박씨가 차에서 뛰어내리며 “wrong wrong out”(뭔가 잘못되고 있다)이라 외쳤다는 택시기사의 말도 수긍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보편적인 한국인의 정서로 미뤄볼 때 자살하면서까지 영어를 쓸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 남씨는 “이같은 정황을 감안할 때 이번 사건의 배후엔 아내와 택시기사 이외에 제3의 인물이 개입돼 있는 것이 분명하다”며 수사과정에서 박씨가 사고 직전 미시시피에 가 있던 직장 상사(미국인)와의 핸드폰 통화를 시도한 사실이 드러났음을 근거로 들고 있다.
경찰과 합동수사팀을 꾸린 CID는 8월18일(이하 한국시각) 현재 택시 운전기사에 대한 수사를 보강하고 사건현장 재검증에 나서는 한편, 이번 수사의 초점을 주한미군과의 관련성에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견상 사건수사에서의 ‘평등’은 어느 정도 이뤄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초동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수사 결과가 만족스러울지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박씨의 직책인 ‘예산 분석가’는 미군부대에서 한국 군무원이 가질 수 있는 지위로는 ‘노른자위’라고 할 만한 자리. 대구 미군기지 내 한국인 근무자 노조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부대 내 골프장 회원권 발급, 관리가 박씨의 주업무였다”며 박씨에 대한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다. 그러나 진상규명을 위한 국내 시민`-`사회단체들의 움직임이 점차 확산되고 있어 수사 결과에 따라선 이번 사건의 파장이 의외로 커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군 사회복지기금을 관리하는 직책인 만큼 금전문제를 둘러싼 갈등이나 이성간의 치정문제 등 박씨의 부대 내부생활에 대한 수사도 이뤄져야 한다.” 8월17일 숨진 박씨의 친지와 동료를 만난 ‘미군기지 되찾기 대구시민모임’ 배종진 사무국장(34)은 “단순한 사건이 아닐 수도 있다. 이미 미군기지에선 박씨와 박씨가 통화하려 했던 직장 상사와 관련된 일에 대해 함구령이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며 “시민단체 차원에서 미국측이 공정하고 정확한 수사에 임하는지 여부를 지속적으로 감시해 나갈 것”이라 밝혔다.
주한미군 범죄근절운동본부 이소희 간사도 “아직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엇이라 단정짓긴 어렵다”면서도 “만일 미국인, 특히 미군이 이 사건에 개입됐을 경우 적극적으로 이 사건의 의혹을 파헤칠 것”이라 말했다.
‘박춘희씨 의문사 진상규명 범대구 미술인 대책위원회’를 결성, 8월14일 대구 캠프 워커 앞에서 항의 성명을 발표한 바 있는 한국미술협회 대구지회도 “박씨가 군무원의 신분으로 공무 중 사망한 만큼 주한미군 책임자의 해명과 이번 사건에 따른 경비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라며 미군측이 실효성 있는 대처방안을 마련할 때까지 남씨와 뜻을 같이한다는 방침이다.
CID의 정식 수사 결과가 나오기까진 1, 2개월 가량 더 기다려야 한다. 운전기사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테스트 결과도 5주 정도 지나야 나올 전망이다. 교민사회에서 ‘토요일 밤의 미스터리’로 불리는 이번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가. ‘작은 승리’에 만족하지 않는 많은 한국인은 미 당국의 공정하고 정확한 수사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