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질서확립법을 저지하라.”
정부가 오는 9월 정기국회 상정을 목표로 추진 중인 ‘통신질서확립법’에 대한 반대 열기가 뜨겁다. 민주노동당,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진보네트워크 등 27개 시민-사회단체는 최근 이 법안이 갖고 있는 심각성에 대해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는 한편 아예 이 법안을 철회하기 위한 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특히 민주노동당은 최근 진보네트워크 사이트를 통해 “8월20일 밤 10시를 기해 일제히 정부통신부 홈페이지 사이버민원실 코너의 자유게시판에 항의글을 올리자”며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이들이 이 법안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 ‘통신질서확립법’의 공식 명칭은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 개정법률안.’ 기존 법규정을 정보통신부가 대폭 손질해 마련한 이 법안은 정보통신 서비스 이용자들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통신망의 이용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졌다.
그간 온라인상에서의 개인정보 유출과 프라이버시 침해, 음란물 유통, 언어 폭력, 온라인 매체를 이용한 불법행위, 스팸 메일 등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은 수없이 지적돼 왔다. 따라서 이번 법안은 일면 때늦은 감도 있다. 실제 이 법안은 관련 전문가들로부터 “일부 조항이 개악되었다는 지적도 받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개인정보보호 부분의 규정들이 이전에 비해 진일보한 것은 틀림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통신망의 이용질서 확립에 관한 부분. 소위 ‘불법정보’에 대한 개념조차 모호한 상태에서 이 법이 시행돼 자칫 법조항이 자의적으로 해석될 경우 거의 모든 온라인상에서의 사회비판적인 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엔 검열과 통제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정보통신의 본질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탄압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깔려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이 특히 문제삼는 이 법안의 ‘악법적 요소’는 인터넷 내용 등급표시제 관련 조항과 불법정보 통제조항. 정보통신부 산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이하 정통윤)가 전담하는 행정규제인 인터넷 내용 등급표시제는 청소년을 유해정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인터넷의 내용을 등급화하고 가정 학교 도서관에서 특정등급 이상의 내용은 청소년이 보지 못하도록 선별차단(filtering)하는 제도다.
현행법상 청소년 유해정보의 판단기준은 청소년보호법 제10조에 규정돼 있는데 그 내용은 지극히 추상적이다. 청소년보호법에 의하면 음란성 외에 선정성을 가진 표현물도 유해정보의 대상에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음란’과 ‘선정’의 구분 및 그 기준에 관해서는 학계에서조차 제대로 논의된 적이 거의 없다.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 제도는 등급의 기준을 만들고 평가하고 행정벌을 부과하는 모든 권한을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부여함으로써 등급제라기보다는 국가에 의한 검열제에 더 가깝다.” 진보네트워크 관계자의 지적이다. 통신질서확립법은 결국 인터넷판 ‘국가보안법’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통윤의 견해는 다르다. 정통윤의 황순흠 조사팀장은 “자율에 의해 등급을 표시하는 것이 원칙이며, 등급표시가 강제되는 것은 청소년 유해정보에만 해당하므로 이 기능을 수행한다 해서 위헌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자율등급은 정통윤에 의해 적정성 여부가 판단되고 등급이 정통윤이 생각하는 기준에 맞지 않을 경우 그 기준에 부합할 때까지 온라인 서비스업체의 서비스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런 규정에 무슨 자율이 있는가. 청소년 유해정보의 판단기준이 현행법상 매우 모호하게 규정돼 있으므로 결국 모든 인터넷 내용물에 등급을 부과하겠다는 의미나 다름없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서비스업체들이 정통윤의 등급조정 결정에 불복할 경우 이에 대한 이의를 신청하는 곳마저 정통윤이라는 사실은 이의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통윤이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음란성 기준은 정통윤 심의규정 심의세칙 제7조에 규정돼 있는데 여기엔 음란성 판단 대상만 정해져 있다. 음란성에 대한 명확한 잣대는 없이 음란성 여부의 판단 자체가 정통윤의 입맛에 달려 있는 셈이다.
정통윤 사이트의 게시판에서 정통윤이 밝힌 바 있는 음란성 인정 수준은 전후 사정과 상관없이 “여성의 유두가 보이면 무조건 음란한 것으로 인정한다”고 하는 정도다.
정통윤 심의팀의 한 실무자는 “인터넷은 즉시성을 가지고 있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음란성, 기타 반사회성의 인정범위를 일반적인 오프라인 매체보다 더 넓혀야 한다”고 모 인터넷정보 서비스업체와의 비공식적 자리에서 밝힌 바 있다. 인터넷 등 온라인매체에 대한 정통윤의 기본 입장을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불법정보 통제조항과 관련해서도 이번 법안은 정통윤에 평가를 전담케 하여 불법정보 심사, 정보서비스업체에 대한 고지(告知)에 법률적인 효력을 부여하고 있다. 이로 인해 온라인 매체에 대한 상시적인 검열통제가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법정 민간자율기구인 정통윤에 이토록 권력을 집중시킨 것은 권력남용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불법정보의 범위에 포함돼 있는 명예훼손, 허위정보, 사행행위, 음란 등의 포괄적 개념들은 사법부에서도 그 판단이 쉽지 않다.” 통신질서확립법에 대해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는 김기중 변호사는 “사법부의 판단이 내려진 이후에도 옳고 그름에 대한 논란이 계속될 수 있는 어려운 문제들을 정통윤의 단속권한에만 위임한다는 것은 권력남용을 법률이 보장하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현재 통신질서확립법안은 수정 작업 중이다. 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시민-사회단체의 주장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 지난 7월20일 공청회에서 발표한 원안에서 규정한 수사기관에 대한 정보제공의무 조항은 수정안에서 일부 삭제되었으며, 수정은 지금도 진행 중”이라며 “7월20일 발표된 원안을 바탕으로 한 시민`-`사회단체의 반대 주장은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인터넷 내용 등급표시제와 불법정보 관련조항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언급도 없는 상태.
인터넷은 인류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표현수단이자 가장 방대한 정보창고로 발전했다. 물론 익명성과 언로의 개방성을 악용한 무분별한 표현 등으로 역기능 또한 만만치 않다. 결국 개인정보 보호는 물론 청소년을 유해정보로부터 보호한다는 본래 취지를 어떻게 제대로 살릴지 여부는 법안 운용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넘쳐나는 정보를 제대로 주체하기조차 힘든 상황에서 그 많은 정보를 모두 통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통제만을 앞세운 섣부른 법 개정보다는 네티즌들에게 스스로 정보의 가치를 판단하고 수용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오히려 더 절실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여과장치인가, 검열의 수단인가. 통신질서확립법을 둘러싼 ‘온라인 민주주의’의 정체성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오는 9월 정기국회 상정을 목표로 추진 중인 ‘통신질서확립법’에 대한 반대 열기가 뜨겁다. 민주노동당,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진보네트워크 등 27개 시민-사회단체는 최근 이 법안이 갖고 있는 심각성에 대해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는 한편 아예 이 법안을 철회하기 위한 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특히 민주노동당은 최근 진보네트워크 사이트를 통해 “8월20일 밤 10시를 기해 일제히 정부통신부 홈페이지 사이버민원실 코너의 자유게시판에 항의글을 올리자”며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이들이 이 법안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 ‘통신질서확립법’의 공식 명칭은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 개정법률안.’ 기존 법규정을 정보통신부가 대폭 손질해 마련한 이 법안은 정보통신 서비스 이용자들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통신망의 이용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졌다.
그간 온라인상에서의 개인정보 유출과 프라이버시 침해, 음란물 유통, 언어 폭력, 온라인 매체를 이용한 불법행위, 스팸 메일 등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은 수없이 지적돼 왔다. 따라서 이번 법안은 일면 때늦은 감도 있다. 실제 이 법안은 관련 전문가들로부터 “일부 조항이 개악되었다는 지적도 받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개인정보보호 부분의 규정들이 이전에 비해 진일보한 것은 틀림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통신망의 이용질서 확립에 관한 부분. 소위 ‘불법정보’에 대한 개념조차 모호한 상태에서 이 법이 시행돼 자칫 법조항이 자의적으로 해석될 경우 거의 모든 온라인상에서의 사회비판적인 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엔 검열과 통제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정보통신의 본질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탄압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깔려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이 특히 문제삼는 이 법안의 ‘악법적 요소’는 인터넷 내용 등급표시제 관련 조항과 불법정보 통제조항. 정보통신부 산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이하 정통윤)가 전담하는 행정규제인 인터넷 내용 등급표시제는 청소년을 유해정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인터넷의 내용을 등급화하고 가정 학교 도서관에서 특정등급 이상의 내용은 청소년이 보지 못하도록 선별차단(filtering)하는 제도다.
현행법상 청소년 유해정보의 판단기준은 청소년보호법 제10조에 규정돼 있는데 그 내용은 지극히 추상적이다. 청소년보호법에 의하면 음란성 외에 선정성을 가진 표현물도 유해정보의 대상에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음란’과 ‘선정’의 구분 및 그 기준에 관해서는 학계에서조차 제대로 논의된 적이 거의 없다.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 제도는 등급의 기준을 만들고 평가하고 행정벌을 부과하는 모든 권한을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부여함으로써 등급제라기보다는 국가에 의한 검열제에 더 가깝다.” 진보네트워크 관계자의 지적이다. 통신질서확립법은 결국 인터넷판 ‘국가보안법’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통윤의 견해는 다르다. 정통윤의 황순흠 조사팀장은 “자율에 의해 등급을 표시하는 것이 원칙이며, 등급표시가 강제되는 것은 청소년 유해정보에만 해당하므로 이 기능을 수행한다 해서 위헌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자율등급은 정통윤에 의해 적정성 여부가 판단되고 등급이 정통윤이 생각하는 기준에 맞지 않을 경우 그 기준에 부합할 때까지 온라인 서비스업체의 서비스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런 규정에 무슨 자율이 있는가. 청소년 유해정보의 판단기준이 현행법상 매우 모호하게 규정돼 있으므로 결국 모든 인터넷 내용물에 등급을 부과하겠다는 의미나 다름없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서비스업체들이 정통윤의 등급조정 결정에 불복할 경우 이에 대한 이의를 신청하는 곳마저 정통윤이라는 사실은 이의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통윤이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음란성 기준은 정통윤 심의규정 심의세칙 제7조에 규정돼 있는데 여기엔 음란성 판단 대상만 정해져 있다. 음란성에 대한 명확한 잣대는 없이 음란성 여부의 판단 자체가 정통윤의 입맛에 달려 있는 셈이다.
정통윤 사이트의 게시판에서 정통윤이 밝힌 바 있는 음란성 인정 수준은 전후 사정과 상관없이 “여성의 유두가 보이면 무조건 음란한 것으로 인정한다”고 하는 정도다.
정통윤 심의팀의 한 실무자는 “인터넷은 즉시성을 가지고 있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음란성, 기타 반사회성의 인정범위를 일반적인 오프라인 매체보다 더 넓혀야 한다”고 모 인터넷정보 서비스업체와의 비공식적 자리에서 밝힌 바 있다. 인터넷 등 온라인매체에 대한 정통윤의 기본 입장을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불법정보 통제조항과 관련해서도 이번 법안은 정통윤에 평가를 전담케 하여 불법정보 심사, 정보서비스업체에 대한 고지(告知)에 법률적인 효력을 부여하고 있다. 이로 인해 온라인 매체에 대한 상시적인 검열통제가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법정 민간자율기구인 정통윤에 이토록 권력을 집중시킨 것은 권력남용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불법정보의 범위에 포함돼 있는 명예훼손, 허위정보, 사행행위, 음란 등의 포괄적 개념들은 사법부에서도 그 판단이 쉽지 않다.” 통신질서확립법에 대해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는 김기중 변호사는 “사법부의 판단이 내려진 이후에도 옳고 그름에 대한 논란이 계속될 수 있는 어려운 문제들을 정통윤의 단속권한에만 위임한다는 것은 권력남용을 법률이 보장하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현재 통신질서확립법안은 수정 작업 중이다. 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시민-사회단체의 주장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 지난 7월20일 공청회에서 발표한 원안에서 규정한 수사기관에 대한 정보제공의무 조항은 수정안에서 일부 삭제되었으며, 수정은 지금도 진행 중”이라며 “7월20일 발표된 원안을 바탕으로 한 시민`-`사회단체의 반대 주장은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인터넷 내용 등급표시제와 불법정보 관련조항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언급도 없는 상태.
인터넷은 인류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표현수단이자 가장 방대한 정보창고로 발전했다. 물론 익명성과 언로의 개방성을 악용한 무분별한 표현 등으로 역기능 또한 만만치 않다. 결국 개인정보 보호는 물론 청소년을 유해정보로부터 보호한다는 본래 취지를 어떻게 제대로 살릴지 여부는 법안 운용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넘쳐나는 정보를 제대로 주체하기조차 힘든 상황에서 그 많은 정보를 모두 통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통제만을 앞세운 섣부른 법 개정보다는 네티즌들에게 스스로 정보의 가치를 판단하고 수용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오히려 더 절실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여과장치인가, 검열의 수단인가. 통신질서확립법을 둘러싼 ‘온라인 민주주의’의 정체성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