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상아탑’이라는 별칭이 무색하게 대학 내에서 언어 성희롱 사건이 꼬리를 물고 계속되고 있다. 6월 13일 고려대 교정에는 이 대학 총학생회와 ‘고려대학교 카카오톡 대화방 언어성폭력 사건 피해자 대책위원회’(고려대 사건 대책위)가 각각 작성한 대자보가 나붙었다. 대자보에 공개된 내용은 지난해 교양수업을 수강한 남학생 8명이 1년 넘게 카카오톡 단체방(카톡방)에서 나눈 대화와 그에 대한 비판이었다. 공개된 카톡방 대화의 내용은 심각했다. 시중에 떠도는 음담패설 수준을 넘어 특정 여학생들을 성적으로 매도하고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 가득했다. 문제는 성희롱 대상이 된 인물이 함께 공부한 동기나 선후배였다는 점.
지난해 2월 국민대 카톡방에서는 여학우를 대상으로 한 언어 성희롱이 있었고, 올해 초 건국대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는 성교를 연상케 하는 술자리 게임을 해 논란이 일었다.
대자보에 따르면 교양수업을 함께 수강한 남학생 8명이 카톡방에서 1년에 걸쳐 동기, 선배, 신입생,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두고 막말을 하며 성희롱 발언을 일삼았다. 지하철에서 여성을 몰래 찍은 사진도 공유했다. 이들이 나눈 성희롱 발언의 분량만 A4용지 약 700쪽에 육박한다.
지난해 논란이 된 국민대 카톡방 사건에선 모 학과 축구 소모임 남학생 32명이 여학생들 사진을 올려 외모를 평가하거나 여학생을 위안부에 빗대며 성희롱을 일삼았다. 올해 2월 건국대 대나무숲(건국대 학생들의 익명게시판)에는 자신을 ‘16학번 새내기’라고 소개한 한 학생이 2016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유사 성행위를 묘사하거나 성추행에 가까운 벌칙이 있는 게임이 진행됐다고 폭로했다.
문제는 이런 언어 성희롱이 대학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점. 많은 대학생이 “무분별한 언어 성희롱이 지속적으로 이어졌지만 알려지지 않은 문제일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학생 금모(23·여) 씨는 “고려대 카톡방 내용이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지만 사실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남학생들의 카톡방이나 술자리에서 나누는 대화가 그보다 수위만 조금 낮을 뿐, 흔한 일이란 것을 대학생활을 하면서 계속 경험해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여대를 다니는 임모(24·여) 씨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임씨는 “여중, 여고, 여대를 다녀 학내에서 성희롱을 당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지만 다른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면 과도한 음담패설을 듣게 된다”고 말했다. 2014년 대학을 졸업한 김모(27·여) 씨는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음담패설 같은 성희롱은 학교가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서 흔히 마주치는 문제다. 대학 내에서 자주 발생한다기보다 그나마 대학이기에 반발하고 알려질 수 있는 것 같다. 직장 등 사회생활의 경우 위계질서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이 생겨도 반발하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전문가들 역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발생하는 성희롱 사건이 “특정 대학, 특정 학과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만연한 여성 차별적 인식, 여성을 같은 인간이라기보다 성적 대상으로 보는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정해은 한국여성연구소 여성사연구실 실장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인식은 계속 있어왔지만 최근 들어 여성 비하나 성적 대상화가 만연한 것은 큰 문제다. (남성의) 사회적 위기의식이 고조되면서 억눌린 감정이 여성이나 노인, 어린이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고려대 카톡방 사건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진단했다.
구성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20대 남성들이 약자이자 자신의 경쟁자인 여성에게 공격성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카톡방에 있던 남학생의 제보로 피해 사실이 드러난 점이 중요하다. 이는 우리 사회가 여성 혐오나 비하가 부적절하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추후 자정 노력을 계속해 이러한 인식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의견도 이와 유사하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도 “확실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소장은 “처벌보다 사회적 인식 변화가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인식 변화를 위해서라도 처벌은 필요하다. 인터넷상의 언어 성희롱의 경우 일부 가해자는 진정으로 반성하기보다 ‘재수 없어 적발됐다’고 생각한다. 처벌을 통해 인터넷상의 언어 성희롱도 확실히 잘못된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의견이 나오는 이유는 국민대 카톡방 언어 성희롱 사건에서도 대다수 학생이 처벌을 면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민대 측은 이 사건과 관련해 사과문을 발표하고 해당 소모임을 해체했다. 징계위원회를 구성해 성적 발언 등에 따라 처벌 수위를 조정했는데, 그 결과 2명에게는 무기정학, 4명에게는 근신 처분이 내려졌지만 나머지 26명은 처벌되지 않았다.
고려대에 대자보가 나붙은 이틀 뒤인 6월 15일 고려대는 총장이 직접 사과문을 발표했다. 염재호 고려대 총장은 사과문에서 “고려대의 교육철학에 위배되는 매우 심각한 사건이 벌어졌다”며 “충격과 실망을 느낀다”고 밝혔다. 학교 측은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특별 대책팀을 꾸려 진상 조사를 벌이고 학칙에 따라 가해 학생들을 처벌할 예정이다.
지난해 2월 국민대 카톡방에서는 여학우를 대상으로 한 언어 성희롱이 있었고, 올해 초 건국대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는 성교를 연상케 하는 술자리 게임을 해 논란이 일었다.
언어 성희롱, 경쟁자 향한 공격?
고려대 사건 대책위가 교내에 게시한 대자보 ‘동기, 선배, 새내기를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카카오톡 언어성폭력 사건을 고발합니다’ 가운데 카톡방 대화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을 보면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의 발언들이 담겨 있다.대자보에 따르면 교양수업을 함께 수강한 남학생 8명이 카톡방에서 1년에 걸쳐 동기, 선배, 신입생,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두고 막말을 하며 성희롱 발언을 일삼았다. 지하철에서 여성을 몰래 찍은 사진도 공유했다. 이들이 나눈 성희롱 발언의 분량만 A4용지 약 700쪽에 육박한다.
지난해 논란이 된 국민대 카톡방 사건에선 모 학과 축구 소모임 남학생 32명이 여학생들 사진을 올려 외모를 평가하거나 여학생을 위안부에 빗대며 성희롱을 일삼았다. 올해 2월 건국대 대나무숲(건국대 학생들의 익명게시판)에는 자신을 ‘16학번 새내기’라고 소개한 한 학생이 2016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유사 성행위를 묘사하거나 성추행에 가까운 벌칙이 있는 게임이 진행됐다고 폭로했다.
문제는 이런 언어 성희롱이 대학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점. 많은 대학생이 “무분별한 언어 성희롱이 지속적으로 이어졌지만 알려지지 않은 문제일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학생 금모(23·여) 씨는 “고려대 카톡방 내용이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지만 사실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남학생들의 카톡방이나 술자리에서 나누는 대화가 그보다 수위만 조금 낮을 뿐, 흔한 일이란 것을 대학생활을 하면서 계속 경험해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여대를 다니는 임모(24·여) 씨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임씨는 “여중, 여고, 여대를 다녀 학내에서 성희롱을 당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지만 다른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면 과도한 음담패설을 듣게 된다”고 말했다. 2014년 대학을 졸업한 김모(27·여) 씨는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음담패설 같은 성희롱은 학교가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서 흔히 마주치는 문제다. 대학 내에서 자주 발생한다기보다 그나마 대학이기에 반발하고 알려질 수 있는 것 같다. 직장 등 사회생활의 경우 위계질서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이 생겨도 반발하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전문가들 역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발생하는 성희롱 사건이 “특정 대학, 특정 학과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만연한 여성 차별적 인식, 여성을 같은 인간이라기보다 성적 대상으로 보는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정해은 한국여성연구소 여성사연구실 실장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인식은 계속 있어왔지만 최근 들어 여성 비하나 성적 대상화가 만연한 것은 큰 문제다. (남성의) 사회적 위기의식이 고조되면서 억눌린 감정이 여성이나 노인, 어린이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고려대 카톡방 사건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진단했다.
구성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20대 남성들이 약자이자 자신의 경쟁자인 여성에게 공격성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카톡방에 있던 남학생의 제보로 피해 사실이 드러난 점이 중요하다. 이는 우리 사회가 여성 혐오나 비하가 부적절하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추후 자정 노력을 계속해 이러한 인식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처벌 흐지부지, 가해자는 “재수 없어 적발됐다”
대학가에서 성희롱 사건이 일어났을 때 명확한 처벌 없이 우물쭈물 넘어가는 악습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대학생 고모(26) 씨는 “도를 넘는 음담패설과 언어 성희롱을 막으려면 명확한 처벌이 필요하다. 이 같은 처벌 사례가 없으니 일부 남학생은 심한 음담패설이라도 사회적으로 용인된다고 착각하곤 한다. 확실한 처벌을 통해 이와 같은 인식을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의견도 이와 유사하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도 “확실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소장은 “처벌보다 사회적 인식 변화가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인식 변화를 위해서라도 처벌은 필요하다. 인터넷상의 언어 성희롱의 경우 일부 가해자는 진정으로 반성하기보다 ‘재수 없어 적발됐다’고 생각한다. 처벌을 통해 인터넷상의 언어 성희롱도 확실히 잘못된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의견이 나오는 이유는 국민대 카톡방 언어 성희롱 사건에서도 대다수 학생이 처벌을 면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민대 측은 이 사건과 관련해 사과문을 발표하고 해당 소모임을 해체했다. 징계위원회를 구성해 성적 발언 등에 따라 처벌 수위를 조정했는데, 그 결과 2명에게는 무기정학, 4명에게는 근신 처분이 내려졌지만 나머지 26명은 처벌되지 않았다.
고려대에 대자보가 나붙은 이틀 뒤인 6월 15일 고려대는 총장이 직접 사과문을 발표했다. 염재호 고려대 총장은 사과문에서 “고려대의 교육철학에 위배되는 매우 심각한 사건이 벌어졌다”며 “충격과 실망을 느낀다”고 밝혔다. 학교 측은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특별 대책팀을 꾸려 진상 조사를 벌이고 학칙에 따라 가해 학생들을 처벌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