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모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좋은 대학 가는 키워드’인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이제 옛말이 됐다. 바야흐로 ‘학종(학생부종합전형)시대’이기 때문이다. 특히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로 대학 간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학부모와 학생은 물론, 교사들 또한 학생부 작성에 혈안이 돼 있다. 오죽하면 ‘생기부스터’란 말까지 탄생했을까. ‘학교생활기록부’와 로켓을 의미하는 ‘부스터’를 합친 말로 학생이건 학부모건 학생부에 기록된다면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드는 경우를 일컫는다.
최근 대구 한 사립고교 교사가 후배 교사의 인증서를 불법도용해 자신의 동아리 학생 30명의 기록을 조작한 사건이 발생, 파문이 일었다. 이 교사는 지난해 2월부터 지금까지 1년 넘게 권한이 없는 학생들의 기록을 무단으로 정정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내가 맡은 동아리 아이들의 학생부를 잘 써주고 싶었다”는 게 이유였다. 현재 경찰은 이 사건에 대가성이 있었는지를 조사 중이다.
대학 문을 여는 주요한 열쇠로 여겨지는 학생부가 언제든 조작될 수 있다는 사실에 학부모와 학생은 충격에 빠졌다. 과연 학생부가 제대로 작성되고 있는지, 전적으로 교사 재량에 맡기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의구심도 동시에 일고 있다.
애초 취지로만 따지자면 학종은 분명히 ‘착한 정책’이다 사교육을 근절하고 공교육의 위상을 되찾는 한 방법으로 도입됐기 때문이다. 학생부에는 ‘사교육의 꽃’으로 여기는 교외대회 수상 실적은 배제하고, 철저히 교내활동 위주로 평가 내용을 기록하게 돼 있다. 결국 학생의 발전 가능성은 물론 결과보다 과정을, 스펙보다 스토리를 보겠다는 의도였다. 교내대회 수상 경력뿐 아니라 봉사활동·인성·독서기록 활동 등이 세밀하게 기록돼 수시모집 위주의 대입에서 학생부는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입시의 요체’로 여겨진다. 학부모가 직접 교육행정정보시스템(나이스·NEIS)을 열람하고 교사와 교육청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실적과 기록을 중시하는 학생부 위주의 수시 전형은 일선 학교의 교사들에게 학생에 대한 진실된 모습을 기록하기보다 입시 평가에 최적화된 학생의 모습을 기록하는 데 급급하도록 강요하고 있고, 교육청도 나서서 학생부의 내용을 더 늘리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며 “이를 감당하지 못한 일부 교사는 학생부 기록을 후배들에게 떠넘기는 경우도 있는데, 얼마나 많은 학생을 소위 명문 학교에 보내느냐로 교사와 학교의 능력을 평가하는 현행 체계에서는 이런 일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서울 시내 교사는 학생부에 매달리는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전했다. 그는 “학생부가 학교 수업 정상화에 일조하는 것은 사실이다. 예전보다 훨씬 많은 아이가 수업에 집중하고 적극 참여하려 애쓴다. 하지만 이 역시 어디까지를 평가 선상에 올려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학생부에서 요구하는 출석일 하나하나까지 정확하게 계산해 움직이는 아이들을 보면 ‘기계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학생부의 등장은 학부모의 자녀교육 방법까지 바꿔놓았다. ‘사교육 1번지’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을 살펴보면 이제는 한가롭게 브런치를 즐기며 학원 정보를 공유하는 엄마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 많던 ‘돼지맘’(학원 정보를 쥐락펴락하며 반장 노릇을 하는 엄마)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학종시대를 사는 요즘 학부모는 아이의 ‘개인플레이’에 몰두한다. 아이 진로와 유사한 사례의 ‘모범 답안’을 참고해 학생부를 계획하고 외부에서 고액 컨설팅을 받은 뒤 그 내용을 학부모 상담 때 교사에게 넌지시 건네며 그대로 써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사는 한 주부는 “아이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부모 마음 아닌가. 요즘에는 고액 컨설팅을 받은 뒤 학생부에 들어갈 만한 내용을 직접 작성해 교사에게 ‘참고용’으로 건넨다고 하더라”며 “중학생 때부터 학생부 관리를 시작하기 때문에 내신과 함께 학생부 관리를 함께 해주는 학원이 인기다. 보통 특수목적고교(특목고) 진학을 목표로 하는 아이가 많이 다닌다. 우리 아이도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독서, 체험, 봉사활동 등 학생부 관리를 받고자 학원을 옮겼다”고 밝혔다.
교육부 지침상 한 번 작성된 학생부는 수정할 수 없기에 학부모는 행여 자녀에게 불리한 내용이 기재되지 않았을까, 학생부 내용이 공개되는 학년 말까지 마른침을 삼키며 기다린다. ‘어느 학교가 학생부를 정성껏 잘 써준다’고 소문이 나면 아예 그 학교로 전학을 추진하기도 한다. 회원 수 40만 명을 자랑하는 한 인터넷 카페 학부모 모임엔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학생부 코치 요령’이 업데이트돼 올라온다. 게시판에는 ‘고1 때 학생부 내용 때문에 아이가 자퇴하고 싶어 한다’ ‘담임한테 어떻게 보여야 우수한 멘트가 실리느냐’ 등 학부모의 절박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내용이 다수다.
일단 학생부의 방향을 잡았다면 행동은 아이 몫이다. 학생부에 기록되면 유리한 것으로 알려진 영자신문, 과학탐구, 시사토론, 독서클럽 동아리는 워낙 인기가 많아 지원자를 대상으로 테스트와 면접을 해 최종 선발할 정도다. 때론 실력과 상관없이 선배(또는 부모) 인맥으로 동아리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학생은 ‘동아리 낙하산’으로 불리기도 한다고.
최근 ‘학생부는 양보다 질’이라는 말이 정설이 되면서 한 주제로 일관되게 포트폴리오를 짜는 전략이 유행하고 있다. 현재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명문대 중국어과에 보내는 게 목표라는 한 학부모는 “초등 3, 4학년 때부터 중국 관련 봉사활동을 시작해 캠프, 독서, 대회 수상 등의 이력을 쌓았다. 일찌감치 목표를 정하지 않으면 아이나 엄마나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아이 적성을 최대한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입이란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이상 부모와 아이가 다 잘할 수 있는 쪽으로 진로를 잡는 것도 방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최근 대구 한 사립고교 교사가 후배 교사의 인증서를 불법도용해 자신의 동아리 학생 30명의 기록을 조작한 사건이 발생, 파문이 일었다. 이 교사는 지난해 2월부터 지금까지 1년 넘게 권한이 없는 학생들의 기록을 무단으로 정정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내가 맡은 동아리 아이들의 학생부를 잘 써주고 싶었다”는 게 이유였다. 현재 경찰은 이 사건에 대가성이 있었는지를 조사 중이다.
대학 문을 여는 주요한 열쇠로 여겨지는 학생부가 언제든 조작될 수 있다는 사실에 학부모와 학생은 충격에 빠졌다. 과연 학생부가 제대로 작성되고 있는지, 전적으로 교사 재량에 맡기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의구심도 동시에 일고 있다.
애초 취지로만 따지자면 학종은 분명히 ‘착한 정책’이다 사교육을 근절하고 공교육의 위상을 되찾는 한 방법으로 도입됐기 때문이다. 학생부에는 ‘사교육의 꽃’으로 여기는 교외대회 수상 실적은 배제하고, 철저히 교내활동 위주로 평가 내용을 기록하게 돼 있다. 결국 학생의 발전 가능성은 물론 결과보다 과정을, 스펙보다 스토리를 보겠다는 의도였다. 교내대회 수상 경력뿐 아니라 봉사활동·인성·독서기록 활동 등이 세밀하게 기록돼 수시모집 위주의 대입에서 학생부는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입시의 요체’로 여겨진다. 학부모가 직접 교육행정정보시스템(나이스·NEIS)을 열람하고 교사와 교육청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갈수록 왜곡되는 ‘학생부 전쟁’
학생부 경쟁이 과열되면서 폐해도 뒤따른다. 대표적인 것이 객관성 논란이다. ‘정성평가’가 주를 이루다 보니 학생부를 위한 스토리 ‘창작’에 골머리를 앓는 건 교사도 마찬가지. 대구 학생부 조작 사건처럼 ‘대리 작성’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우리복지시민연합은 학생부 위주의 수시모집 전형을 비판하면서 교사 개인의 일탈로만 몰아가는 대구시교육청을 비판했다.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실적과 기록을 중시하는 학생부 위주의 수시 전형은 일선 학교의 교사들에게 학생에 대한 진실된 모습을 기록하기보다 입시 평가에 최적화된 학생의 모습을 기록하는 데 급급하도록 강요하고 있고, 교육청도 나서서 학생부의 내용을 더 늘리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며 “이를 감당하지 못한 일부 교사는 학생부 기록을 후배들에게 떠넘기는 경우도 있는데, 얼마나 많은 학생을 소위 명문 학교에 보내느냐로 교사와 학교의 능력을 평가하는 현행 체계에서는 이런 일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서울 시내 교사는 학생부에 매달리는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전했다. 그는 “학생부가 학교 수업 정상화에 일조하는 것은 사실이다. 예전보다 훨씬 많은 아이가 수업에 집중하고 적극 참여하려 애쓴다. 하지만 이 역시 어디까지를 평가 선상에 올려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학생부에서 요구하는 출석일 하나하나까지 정확하게 계산해 움직이는 아이들을 보면 ‘기계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학생부의 등장은 학부모의 자녀교육 방법까지 바꿔놓았다. ‘사교육 1번지’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을 살펴보면 이제는 한가롭게 브런치를 즐기며 학원 정보를 공유하는 엄마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 많던 ‘돼지맘’(학원 정보를 쥐락펴락하며 반장 노릇을 하는 엄마)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학종시대를 사는 요즘 학부모는 아이의 ‘개인플레이’에 몰두한다. 아이 진로와 유사한 사례의 ‘모범 답안’을 참고해 학생부를 계획하고 외부에서 고액 컨설팅을 받은 뒤 그 내용을 학부모 상담 때 교사에게 넌지시 건네며 그대로 써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사는 한 주부는 “아이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부모 마음 아닌가. 요즘에는 고액 컨설팅을 받은 뒤 학생부에 들어갈 만한 내용을 직접 작성해 교사에게 ‘참고용’으로 건넨다고 하더라”며 “중학생 때부터 학생부 관리를 시작하기 때문에 내신과 함께 학생부 관리를 함께 해주는 학원이 인기다. 보통 특수목적고교(특목고) 진학을 목표로 하는 아이가 많이 다닌다. 우리 아이도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독서, 체험, 봉사활동 등 학생부 관리를 받고자 학원을 옮겼다”고 밝혔다.
‘돼지맘’ 인기 시들, ‘개인플레이’가 대세
이처럼 학생부에 대한 관심은 이미 중학교로 내려왔다고 볼 수 있다. 특목고나 자율형사립고교(자사고) 진학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미리미리 준비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 고교 진학 전부터 학생부 관리에 공을 들이는 학부모가 많다. “아이에게 수시로 자기소개서를 써보게 한다”는 학부모도 꽤 된다.
교육부 지침상 한 번 작성된 학생부는 수정할 수 없기에 학부모는 행여 자녀에게 불리한 내용이 기재되지 않았을까, 학생부 내용이 공개되는 학년 말까지 마른침을 삼키며 기다린다. ‘어느 학교가 학생부를 정성껏 잘 써준다’고 소문이 나면 아예 그 학교로 전학을 추진하기도 한다. 회원 수 40만 명을 자랑하는 한 인터넷 카페 학부모 모임엔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학생부 코치 요령’이 업데이트돼 올라온다. 게시판에는 ‘고1 때 학생부 내용 때문에 아이가 자퇴하고 싶어 한다’ ‘담임한테 어떻게 보여야 우수한 멘트가 실리느냐’ 등 학부모의 절박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내용이 다수다.
일단 학생부의 방향을 잡았다면 행동은 아이 몫이다. 학생부에 기록되면 유리한 것으로 알려진 영자신문, 과학탐구, 시사토론, 독서클럽 동아리는 워낙 인기가 많아 지원자를 대상으로 테스트와 면접을 해 최종 선발할 정도다. 때론 실력과 상관없이 선배(또는 부모) 인맥으로 동아리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학생은 ‘동아리 낙하산’으로 불리기도 한다고.
최근 ‘학생부는 양보다 질’이라는 말이 정설이 되면서 한 주제로 일관되게 포트폴리오를 짜는 전략이 유행하고 있다. 현재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명문대 중국어과에 보내는 게 목표라는 한 학부모는 “초등 3, 4학년 때부터 중국 관련 봉사활동을 시작해 캠프, 독서, 대회 수상 등의 이력을 쌓았다. 일찌감치 목표를 정하지 않으면 아이나 엄마나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아이 적성을 최대한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입이란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이상 부모와 아이가 다 잘할 수 있는 쪽으로 진로를 잡는 것도 방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