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를 쓰는 행위로서의 서(書)를 표현하는 말로 ‘필가묵무(筆歌墨舞)’가 있다. 붓은 노래하고 먹이 춤추면, 글자가 되고 그림이 된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리는 ‘조선시대의 궁중화·민화 걸작전-문자도(文字圖)·책거리(冊巨里)’는 바로 ‘서(書)’ 영역에 방점을 찍은 전시다.
‘책거리’는 책을 비롯해 도자기, 청동기, 문방, 화병 등이 함께 그려진 그림을 총칭하는 것으로, 책거리 가운데 서가로만 이뤄진 것을 ‘책가도(冊架圖)’라 한다. 조선시대 정조(1752~1800)는 창덕궁 어좌 뒤에 왕권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대신 책가도 병풍을 세우라고 명할 만큼 책거리를 사랑했다. 궁중에 불어닥친 책가도 열풍은 민간에도 이어졌고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의례용 그림과 민화 형태로 다양한 책가도가 탄생했다. 문자도는 수(壽)와 복(福)처럼 특정 한자와 사물을 합해 그린 문자그림을 가리킨다. 특히 조선왕조 500년의 통치이념인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 여덟 글자를 문자그림이라는 제3의 조형언어로 재해석한 것이 ‘유교문자도(儒敎文字圖)’다.
책거리와 문자도는 ‘학문 숭상’이라는 조선시대 선비 문화를 반영하지만 그 이면에는 출세욕과 지적 허영 같은 신분사회의 욕망이 담겨 있다. 예술의전당 측은 이에 대해 “왕실 중심의 지배계층은 교화(敎化) 관점에서 ‘유교문자도’를 유행하게 했고, 민간인들은 과거 급제를 통한 신분 상승의 욕망을 문자도와 책거리에 반영했다”고 설명한다.
예술의전당과 현대화랑이 공동 기획한 이 전시회에서는 조선 궁중화와 민화 가운데 걸작으로 꼽히는 문자도, 책가도 병풍 등 58점이 선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삼성미술관 리움, 서울미술관, 제주대박물관, 한국민속촌, 개인 등 20여 곳의 소장품이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공개될 뿐 아니라, 9월부터 2017년 9월까지 1년간 미국 순회전시도 예정돼 있다.
조선시대의 궁중화·민화 걸작전-문자도·책거리
기간 | 6월 11일~8월 28일
장소 | 예술의 전당 서울서예박물관 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