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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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유승민의 시간이 왔다

당권이냐 대권이냐 저울질…현재권력 미움을 자양분 삼아 미래권력으로 훌쩍 성장

  • 이숙현 시사칼럼니스트 mcleesh@gmail.com

    입력2016-06-24 16: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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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돌아왔다. 총선을 앞두고 쫓겨나듯 새누리당을 나간 지 86일 만이다. 복당 소식은 갑작스러웠다. 상당 기간의 외면, 상당 기간의 논쟁, 상당 기간의 고민 끝에 복당이 결정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말 그대로 전격적으로 탈당파들의 일괄 복당 결정이 내려졌다. 그가 돌아오자 당은 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유승민 의원(4선)을 대권주자라고 얘기하는 데 이제 어색함이 없다. 지난해 2월 원내대표를 맡을 때만 해도 대중적 인지도로 보나, 개인적인 캐릭터로 보나 일반 대중 눈에 유승민이라는 정치인은 3선 의원 가운데 1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곧 반전이 일어난다.

    국회법 개정안 문제로 유 의원과 청와대는 정면으로 부딪쳤고 결국 그는 원내대표직을 내놔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그를 있는 힘껏 찍어 눌렀고, 그만큼 그를 키웠다. ‘배신의 정치’라는 박 대통령의 발언에 그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맞받아쳤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유승민’이라는 세 글자는 대중 머릿속에 각인됐다. 그가 잃은 건 오로지 원내대표라는 ‘자리’뿐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이유다. 결과적으로 그를 대권주자로 만들어준 일등공신은 바로 박 대통령인 것이다.

    현시점에서 그의 복당이 당을 흔들어놓는 이유는 간단하다. 8월 예정된 전당대회와 내년 대통령선거(대선) 때문이다. 누가 당권을 잡느냐에 따라 내년 대선후보 경선 흐름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현재 새누리당은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고 있다. 당헌 제93조는 ‘대통령후보 경선에 출마하고자 하는 자는 상임고문을 제외한 모든 선출직 당직으로부터 대통령선거일 1년 6개월 전에 사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의 선택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유 의원이 당권가도를 달리느냐, 아니면 대권을 향해 나아가느냐에 따라 그 누군가는 울고 또 누군가는 웃을 것이다. 현재까지 그는 당권 도전과 관련해 뚜렷한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당내 일각에서는 그가 8·9 전당대회에 나가 친박(친박근혜) 세력과 정면승부를 벌일 것이라는 전망, 혹은 ‘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얘기가 나온다. 4·13 총선 패배가 친박 인사들의 전횡에서 비롯됐다는 당 안팎의 평가와 분노가 있는 만큼, 이번 전당대회에서 또다시 친박계에게 주도권을 빼앗길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특히 공천과정에서 입은 상처로 친박계에 칼을 가는 인사가 많은 데다, 궁극적으로 이 상태로 가다가는 내년 대선 필패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유 의원의 몸값을 올리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유 의원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당장 4·13 총선 과정에서 공천을 받은 친박계 인사가 19대 국회에 비해 대거 늘었다. 당내 친박계 의원만 70여 명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게다가 ‘공천학살’을 당한 친유승민계 의원들이 여의도 재입성에 실패한 점도 뼈아프다. 다시 말해, 일단 수 싸움에서 밀린다. 특히 전당대회는 당원들 의지가 많이 반영되는 만큼 당권 도전이 그에게는 또 다른 상처로 남을 수 있다. 정치에서 필요한 건 ‘나’ 이전에 세력이기 때문이다. 6월 16일 갑자기 복당이 결정되면서 8월 9일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준비할 물리적 시간도 부족하다는 현실론 역시 그를 주저하게 하는 요인이다.



    미워하면서도 닮은꼴, 박근혜와 유승민

    당권 도전이 어렵다면 남은 카드는 대권이다. 생각해보면 그의 고민은 크지 않을 수 있다. 이미 대권주자로 주목받고 있는 상황에서 시간을 미룰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 대선 국면에서는 전당대회만큼 당원들 입김이 세지 않다. 일반 여론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당내 세력이 열세라 해도 비빌 언덕이 생긴다. 당내 역학구도, 세력, 물리적 시간 모두 전당대회보다 대선 쪽에 한 발 더 다가가 있는 형국이다. 다소 지엽적인 문제일 수 있지만 내년이면 그의 나이도 만 59세가 된다.

    6월 18일 발표된 여권 내 대선주자로 누가 적합한지를 묻는 여론조사(CBS-리얼미터) 결과 유 의원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22.5%)에 이어 지지율 2위(15.7%)를 기록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9.6%)과 김무성 전 대표(6.8%)를 모두 제쳤다. 지난해 원내대표로 선출되기 전까지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름을 찾아보기조차 힘들었던 그다. 유 의원이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최종 후보가 되지 않는다 해도 선택지는 여전히 넓다. 새누리당 내 빈곤한 후보군을 감안한다면 그의 행동반경은 넓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 의원의 선택에 따라 당내 지형 변화도 불가피하다. 전당대회냐 대선이냐에 따라 이합집산이 다른 양상으로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전당대회로 방향을 틀 경우 현재 당권 도전 의지를 드러낸 비박(비박근혜)계 정병국 의원과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 대선에 비해 비교적 ‘간단한’ 작업이다.

    대선은 다르다. 일단 그에 대한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친박계를 논외로 한다면 당장 떠오르는 사람은 김무성 전 대표다. 원내대표 시절 이른바 ‘찍어내기’를 당할 때 옆에서 속수무책 바라만 보고 있던 바로 그 사람이다. 유 의원이 당권에 도전하면 대선에 나설 김 전 대표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질 테지만, 만약 대권이 목표라면 같은 비박계 내에서 양자는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김 전 대표 외에도 남경필 경기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의 표정도 유 의원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숙제는 끝이 없다. 만약 8월 전당대회에서 친박계가 일방적으로 승리하면 내년 대권 도전은 시작도 못하고 끝날 개연성이 있다. 따라서 대선에 나가길 원한다면 전당대회 과정에서 그가 감당해야 할 몫은 결코 작지 않다.

    지금은 대척점에 서 있지만 유 의원을 따라가다 보면 박 대통령이 보인다. 정치인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그 정치적 자양분이 유승민에게서도 발견된다는 점은 흥미롭다. 잠시 지난해 ‘찍어내기’를 당했던 상황으로 되돌아가보자. 당시 청와대와 갈등이 전면적으로 부각되자 그의 낮은 지지도는 급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 10일(유 의원은 이틀 전인 8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공개한 여권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유승민은 전달 조사 대비 13.8%p나 급등해 19.2%를 기록했다. 리얼미터 조사 이래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더군다나 박 대통령과 정확히 겹치는 지역, 즉 대구에서도 유의미한 평가를 받았다. 사실 당시 대구는 박근혜와 유승민 가운데 ‘선택’을 강요받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대구 민심은 유승민에게서 등을 돌리지 않았다. 같은 리얼미터 조사에서 그가 대구·경북(26.3%)을 비롯해 광주·전라(27.7%), 대전·충청·세종(23.9%)에서 1위를 기록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둘째, 유 의원은 온갖 시련 속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를 얻었다. 바로 동정심이다. 동정심은 그 어떤 논리도, 설득도, 설명도 무력화한다. 유명인에 대한 대중의 강력한 지지는 종종 동정심을 기반으로 한다. 주지하듯, 박 대통령의 개인사는 이미 고전이 됐다. 게다가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내 비주류로 존재하면서 당시 최고권력이던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상황이 벌어졌다. 양자는 사사건건 부딪쳤고 박근혜 의원은 핍박받는 장면을 곧잘 연출했다. 

    이번엔 유승민 차례였다. 유승민도 살아 있는 권력, 최고 권력으로부터 핍박받는 상황이 됐고 이는 동정론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지난 총선에서 ‘내쫓김’은 화룡점정이었다. 대통령의 의도와 달리 유 의원의 몸집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셋째, 그는 자기 이름과 함께 ‘합리적 보수’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지난해 4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당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 등의 주장은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 이미지와 연결됐다. 아울러 대통령의 심기에 따라 바로바로 ‘순하게’ 반응하던 김 전 대표와 자연스럽게 비교되면서 낡은 보수, 구정치라는 단어와도 거리를 두게 됐다. 최소한 자기 소신은 있다는 평가다. 여기서 다시, 그가 잃은 건 오로지 원내대표라는 ‘자리’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살아 있는 권력, 새로운 권력

    정치에서 타협과 배신은 흔한 단어다. 동지와 적의 경계는 모호하고 때로는 무의미까지 하다. 돌이켜보면 2005년 박근혜 대표 시절 한쪽에는 김무성 사무총장이, 다른 한쪽에는 대구 출신의 유승민 비서실장이 있었다. 사무총장과 비서실장의 다른 말은 ‘대표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김무성은 2008년 ‘친박연대’ 참여를 거부하면서 박근혜와 멀어졌고, 유승민은 2012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당 운영을 공개 비판하며 돌아섰다.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정책메시지단장으로도 맹활약했던 유승민이었기에 충격은 컸다. 아이러니한 것은 2011년 말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와 여권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DDoS) 사태 연루 등 잇단 악재가 발생하자 당시 최고위원이던 유승민이 가장 먼저 사퇴를 선언하고 남경필, 원희룡 최고위원 등이 뒤따르면서 결국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유승민은 자신이 물꼬를 튼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정면 비판하면서 완전히 멀어지게 됐다.

    ‘악연’은 계속됐다. 2014년 국정감사에서 유 의원은 박근혜 정부의 외교실정을 비판하며 ‘청와대 얼라들’이라는 표현으로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 ‘얼라들’은 나중에 ‘십상시와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연결된다. 주지하듯 지난해에는 원내대표직까지 내놓으며 양측은 최악의 관계로 치달았다.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밀리는 쪽은 당연히 유 의원이다. 하지만 상황은 역전될 공산이 크다. 임기를 1년 반가량 남겨놓은 대통령을 기다리는 건 힘이 아니라 레임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 권력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그와 맞서 싸워줄 누군가를 기다린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 정동영 의원이 그랬듯, 이 무렵 동지가 적으로 돌변하는 광경이 낯설지 않은 이유도 이 같은 대중의 기대 심리 때문이다. 하물며 이미 오래전부터 대척점에 서 있는 유 의원의 경우, 같은 여권이긴 해도 더 많은 기대를 할지 모른다. 대중의 시선이 모이는 곳에 힘이 생기고 세력이 생긴다. 

    이쯤 되면 궁금하다. 앞으로 남은 1년 반 동안 얼마나 드라마틱한 충돌이 일어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유 의원의 반격은 어떨지. 또 궁금하다. 궁극적으로 ‘친박-비박’이라는 오래된 과거를 과연 ‘친유-비유’라는 새로운 구도로 바꿀 힘이 유승민에게 있는지, 만약 있다면 그 힘이 가시화되는 시기는 언제쯤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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