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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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교수

V3 백신 무료 배포 혁신의 기업가 정신

  • 정지훈 관동대 IT융합연구소 교수 @niconcep

    입력2011-05-23 11: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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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교수

    의학자에서 벤처사업가로, 벤처사업가에서 교육자로, 거침없는 행보를 거듭하는 KAIST 안철수 석좌교수.

    한국을 대표하는 소프트웨어 기업 안철수연구소(이하 안연구소)를 창업한 KAIST(한국과학기술원) 안철수 석좌교수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부산에서 태어난 안 교수는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기초의학을 전공했다. 기초의학자로서 살아가던 그의 삶은 1988년 컴퓨터 바이러스와 운명적으로 만나면서 통째로 바뀌었다. 그의 플로피디스크에 (c)브레인 바이러스가 침투했던 것.

    당시만 해도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개념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컴퓨터 바이러스의 발견은 그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바이러스와의 첫 만남을 언급한 글을 보면 그의 이런 마음이 잘 나타난다.

    “1988년 초 잡지를 통해 브레인 바이러스라는 것이 한국에 상륙한 것을 알게 됐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그놈의 예기치 않은 방문을 받게 됐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태도가 더 당당하듯이 그놈은 떡하니 내 디스켓 안에 자리 잡고 앉아 있었다. 마치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내 디스켓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바꿔놓았던 것이다. 처음에 그놈을 발견했을 때의 황당함이란….”

    예기치 못했던 첫 만남 이후 그는 컴퓨터 바이러스에 도전했다. 그동안 익혔던 기계어 실력을 발휘해 바이러스 구조를 파악했고, 자연스럽게 이것을 치료하는 방법도 알게 됐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전설적인 바이러스 치료 프로그램인 백신(Vaccine)이다. 필자는 당시 고등학생이었지만, 그가 작성하고 배포한 백신 프로그램의 소스코드가 담긴 책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이후 그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올 때마다 백신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했다. 의과대학에서 기초의학 연구와 논문 작성, 그리고 컴퓨터 바이러스 치료를 병행하는 이중생활을 계속했다. 단국대 의과대학 전임 강사를 거쳐, 의예과 학과장까지 지냈지만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컴퓨터 전문 주치의’의 사명을 저버리지 못했다. 1995년 7년간의 이중생활을 접고 본격적인 벤처사업가가 된 것이다.



    사업은 그리 쉽지 않았다. 연매출은 1억여 원에 불과했다. 당시만 해도 소프트웨어는 공짜라는 인식이 강했기에 직원 월급 주는 것도 쉽지 않았다. 1997년 세계적인 보안회사 맥아피로부터 ‘V3’를 1000만 달러에 매각하라는 제의도 받았지만, 꿋꿋히 버텼다. 벤처 투자 열풍이 불었을 때도 지나친 투자를 받지 않았고, 서둘러 코스닥에 진입하지도 않으면서 내실을 다졌다.

    그가 우직하게 회사를 운영하던 1999년 4월 26일 전국 개인용 컴퓨터(PC) 30만 대를 일시에 초토화한 CIH 바이러스가 나타났다. 안연구소는 피해 신고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고, 급한 사람들은 PC를 들고 직접 찾아왔다. 이 사건은 기업과 개인으로 하여금 보안의 중요성에 눈뜨게 했으며 안연구소도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2005년 그는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회사 설립 10주년 기념식 자리에서 사장직을 내던지고 미국 유학을 떠나겠다고 선언한 것. 결국 그는 일선에서 물러난 뒤 다시 공부를 시작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MBA 2년 과정을 밟았다.

    안철수 교수
    2008년 귀국한 이후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부임해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기업가 정신을 함양하는 소임을 맡았다. 그의 다음 행보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는 고등교육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담당한 대학, 대학원보다 혁신과 거리가 먼 조직도 없는 듯하다. 그가 새로운 도전을 통해 한국 고등교육 문화에 새바람을 일으켜 교육체계 전반을 혁신하길 기대한다.

    >> 정지훈 교수는 의사이면서 IT 전문가라는 이색 경력을 지니고 있다. 현재 관동대 의과대 명지병원 융합의학과 교수이자 IT융합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거의 모든 IT의 역사’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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