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 최고경영자 스티브 발머.
MS의 ‘무료통화’ 승부수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둔 스카이프는 인터넷과 연결한 기기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가입자끼리 공짜로 음성전화나 비디오통신을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카이프 외에도 인터넷전화 회사는 많다. 하지만 2003년 설립한 스카이프는 인터넷 기반 전화의 대명사가 된 데다 현재 6억6300만여 명의 가입자와 880만여 명의 유료 가입자를 둔 글로벌 회사다. 국내에도 350만여 명의 이용자를 확보했다.
MS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발머는 5월 10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TV부터 아웃룩 e메일, 메신저까지 MS 제품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스카이프를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MS의 비디오 콘솔 게임기인 엑스박스를 통해 거실에서도 스카이프 영상통화를 할 수 있다. 동작인식 기능이 있는 ‘키넥트’와 결합하면 동작으로 영상통화를 제어하는 새로운 기능도 선보일 수 있다.
MS는 어디에서나 페이스북에 로그인할 수 있듯이, 영상통화도 재미있고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AP통신은 “정부가 이번 인수를 승인하면 MS는 더 많은 디지털 광고를 팔고, 비즈니스 비용을 줄여주는 인기 콘퍼런스 툴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MS는 스카이프 사용자 6억여 명에게 광고를 확장할 계획도 갖고 있다.
가장 기대되는 시너지는 역시 모바일이다. 지지부진한 MS의 모바일사업에 애플의 페이스타임, 구글의 구글보이스 같은 막강한 킬러 콘텐츠가 덧붙여지면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인터넷 기반 전화는 이동통신사의 수익을 갉아먹지만, 저렴한 이용료 때문에 스마트폰 사용자 사이에서는 인기를 얻고 있다.
물론 MS는 애플 아이폰, 구글 안드로이드폰 등 다른 경쟁 플랫폼에도 예전처럼 스카이프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발머는 “우리는 다른 플랫폼에도 계속 스카이프를 지원할 것”이라면서 “내 말을 의심하지 말아달라. 매킨토시 컴퓨터에 MS 오피스 소프트웨어를 지원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MS의 운영체제(OS) ‘윈도폰7’을 탑재한 스마트폰에선 MS의 ‘윈도 라이브’ 등과 결합해 한층 진화한 인터넷전화 서비스를 선보일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MS가 본격적으로 인터넷전화 사업을 키울 경우,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통신시장에 회오리바람이 몰아칠 것으로 내다본다. 이미 스카이프는 세계 최대 국제전화사업자가 됐고, 지역 정복은 시간문제다. 그래서 통신사 사이에서는 스카이프를 탑재한 윈도폰이 자신들의 이익 기반을 흔들게 분명한데도 열심히 팔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말이 나온다.
어쨌든 MS는 스카이프의 6억여 명 가입자를 MS의 플랫폼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발머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MS의 최근 성장에서 중심 구실을 했고, 스카이프는 이 분야에서 실제 돈을 버는 회사”라면서 “이번 인수로 MS는 더 큰 야망을 품을 수 있게 됐으며,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구글과 애플을 상대하기 위해 MS는 스카이프를 인수했지만 과도한 인수 금액을 지적하는 시선이 많다.
외신에 따르면, MS 외에 공식적인 인수 경쟁자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페이스북과 구글이 관심을 보이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뛰어들진 않았다. 기업 공개를 준비하던 스카이프가 “돈을 올려주지 않으면 증시에 상장할 것이다”고 으름장을 놓자 MS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인수 가격을 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카이프의 잠재력이 과대 포장됐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스마트폰 인구가 늘면서 2010년 스카이프 서비스 사용자 수는 40% 가까이 증가한 6억6300만 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유료서비스 가격이 너무 저렴해 700만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e베이는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하자 벤처캐피탈 등 투자회사 집단에 지분 70%를 넘겼다. 시너지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계의 공룡’의 고민
MS가 스카이프 가입자당 1000달러를 계산해줬다는 소문도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닷컴 버블 시대의 비합리적 투자를 재현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주주들은 잠재력이 있다고 해도 수익성이 떨어지는 업체를, 그것도 관련 기술을 가진 MS가 터무니없이 비싸게 샀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인수 발표 직후 MS 주가는 0.16% 떨어졌다.
전 세계 수많은 인재가 포진한 MS가 이런 시장의 비판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비싼 값을 치르고 인수를 감행한 이유는 모바일시대에 소프트웨어계의 공룡이 처한 상황 때문이다.
MS는 여전히 전 세계 개인용 컴퓨터(PC) OS를 거의 독점하다시피하며 떼돈을 벌고 있지만, 문제는 미래다. PC시장은 줄어드는 반면,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대변되는 모바일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MS는 애플과 구글에 밀려 설 자리가 좁아졌다. PC의 강자가 모바일 OS에서는 죽을 쓰는 모양새다. 시장조사기관 컴스코어에 따르면, 2010년 2월 기준 MS의 모바일 OS 미국 시장 점유율은 7.7%에 그쳤다. 올 초 노키아와 손잡고 윈도폰 확산에 나섰지만 아직 눈에 띄는 성과가 없다.
검색엔진 ‘빙’으로 인터넷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려 갖은 수를 쓰고, 야후 인수까지 고려했지만 구글에 한없이 밀리고 있다. MS의 미래에 대해 투자자들이 느끼는 불안은 2010년 증시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0년 5월 애플이 사상 처음으로 MS의 시가총액을 추월한 것이다.
MS는 구글과 애플이라는 강적을 상대하기 위해 어떻게든 반격을 가해야 하는 처지다. 6억여 명이 몰린 인터넷전화 플랫폼 스카이프가 절실했던 이유도 이것이다. 애플의 영상통화 페이스타임, 구글의 인터넷전화 구글보이스 등 경쟁자들은 모바일 플랫폼의 킬러 콘텐츠를 확보했지만, MS는 그만한 경쟁력을 지닌 ‘킬러’가 부족했던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에반 뉴마크 칼럼니스트는 ‘스티브 발머를 해고해야 하는 85억 개 이유’라는 칼럼에서 “발머의 잘못은 단순히 과한 (스카이프) 인수 금액에 있지 않다”며 “MS를 아무도 원치 않는 회사를 살 수 밖에 없는 처지로 끌어내렸다는 것이 발머의 진짜 잘못”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