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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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족’한 국가의 아토피 관리

환경부·복지부 주도권 다툼 속 예방 관리·홍보에 치중…지자체는 예산 부족 어려움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1-05-23 10: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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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부족’한 국가의 아토피 관리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한 살배기 아토피 환자는 아기 4명 중 1명일 정도로 심각하다.

    “손에 물이라도 닿으면 더 간지러워요. 그럴 때는 손을 잘라내고 싶죠.”

    아토피 피부염(이하 아토피)으로 수년째 고통받고 있는 고등학생 김모(16) 양. 그는 심해졌다 나아졌다를 반복하는 아토피 때문에 숱하게 피부과를 찾았다.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기에 마땅한 치료법도 없었다. 최근 증상이 더 심해지자 아토피 치료로 유명한 P한의원을 찾았다. 김양은 이곳에서 “아토피 치료를 위해선 꾸준히 약을 먹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한 달치 약값만 40만 원이 훌쩍 넘는 데다, 최소 6개월은 먹어야 해 240만 원 넘게 드는 셈이다. P한의원 관계자는 “아토피는 완치가 없다. 6개월은 어디까지나 최소 기간이며, 그 이상 먹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양은 “고통도 고통이지만 만만치 않은 비용 탓에 부모님에게 죄송스럽다”며 울먹였다.

    김양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아토피는 일반 가정에서 치료비를 전부 부담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질환이다. 약값이 비싼 데다 장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토피를 환경성 질환으로 인식하기 전까지 그 부담은 온전히 개인 몫이었다.

    정부 차원서 아토피 인식 그나마 다행



    “이제부터 아토피는 정부가 직접 관리에 나서겠다.”

    2006년 9월 27일 정부는 ‘2007년 예산 및 기금을 활용한 정부 사업’을 발표하면서 처음으로 아토피 질환을 정부가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어린이용품 및 활동 공간을 대상으로 유해물질 위해성 평가를 실시하기로 했으며 환경성 질환과 관련한 정보 제공은 물론, 학부모와 교사를 위한 행동지침 개발 등 환경보건교육을 강화하는 데 총 29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아토피 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접근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에 많은 아토피 환자가 관심을 보였다.

    2008년 2월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아토피 등 환경성 질환 예방과 치료를 보건 분야 우선과제로 내세웠다. 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가 없는 실정이다. 오히려 아토피 환자 수가 증가했다. 특히 한 살배기 아토피 환자는 전체 1세 인구(44만6000명)의 26.5%(11만8000명, 국민건강보험공단 2008년 자료)에 이른다. 한 살배기 아기 4명 가운데 1명이 아토피를 앓는 셈이다.

    아토피에 관한 정부 정책은 의욕만 앞세운 ‘따로 또 같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아토피 관련 부처인 환경부와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 그리고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 등 부처별로 아토피 예방 및 관리 사업을 벌이는 한편, 3개 부처 합동으로 ‘환경보건 종합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부터 2020년까지 1조4000억 원을 투입하는 환경보건 종합 계획을 실행하면서 관계부처 간 긴밀히 협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토피와 관련해 주무부서와 협조 부서가 명확히 나눠져 있지 않은 데다, 부처 간 주도권 다툼이 여전해 환경보건 종합 계획을 마련한 원래 취지를 무색케 한다. 환경부와 복지부는 “환경보건 종합 계획을 마련하면서 서로 긴밀히 의견을 나눴다”고 설명했지만, 정보와 결과를 공유하지 않은 채 사실상 독자적으로 사업을 수행하는 실정이다.

    부처 간 기싸움 엄청난 비효율성

    ‘2% 부족’한 국가의 아토피 관리

    최근 아토피에 대한 정부 차원의 인식이 이뤄지면서 환경보건센터 등 많은 사업을 벌이지만 실제적인 지원보다 각 부처 홍보 성격이 짙다.

    그러다 보니 성격이 비슷한 사업을 여러 부처에서 다른 이름으로 동시에 시행하는 비효율성이 나타난다. 환경부의 환경보건센터가 대표적이다. 2009년 환경부는 아토피, 석면 관련 질환, 소아암, 선천성 기형, 알레르기 천식 등 5개 분야 연구 병원을 환경보건센터로 지정해 환경과 환경성 질환의 상관성을 규명하고, 예방 및 관리 사업을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12곳인 환경보건센터는 무엇보다 환경성 질환 예방을 위한 홍보와 예방, 관리를 중시한다. 이런 환경보건센터의 임무는 복지부가 수행하는 여러 아토피 관련 사업과 중첩된다. 복지부 또한 아토피, 천식 관리와 관련해 여러 홍보 사업을 벌이며, 그 일환으로 교육정보센터를 운영하기 때문이다.

    환경부와 복지부는 “사업 주제가 비슷할지 몰라도 서로 다른 성격의 사업”이라고 해명했다. 환경부 환경보건정책과 관계자는 “복지부가 아토피 환자 치료와 보건사업에 초점을 맞춘다면 환경부는 아토피 예방과 관리에 중점을 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복지부 또한 상당 부분 아토피 예방과 관리 홍보에 치중하고 있다. 2010년 복지부가 발표한 ‘아토피·천식 예방 관리 사업지침’에 따르면 홍보위원회 개최, 지역사회 예방 관리 교육 콘텐츠 보급, 잘못 알려진 건강상식 FAQ 및 생활환경지침 개발, 보건소 순회 주민강좌 및 지역사회 중간 관리자 교육 50회 이상 같은 아토피·천식 예방, 관리 교육 및 홍보에 7억5000만 원을 사용했다. 그 밖에 보건소의 아토피·천식 예방 관리 사업 6억5000만 원, 아토피·천식 환자 적정 진료 및 관리 2억5000만 원, 아토피·천식 조사감시연구 15억 원 등 총 31억5000만 원을 사용했다.

    홍보에 치중하다 보니 아토피 환자가 실감하는 지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국내 영유아 보육시설과 유치원 4만여 군데에서 아토피에 취약한 4세 이하 어린이 250만 명가량을 보육하지만, 이들 시설 가운데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 전문 인력을 확보한 곳은 거의 없다. 인근 병원과 보건소가 매년 몇 차례 시설을 방문해 지도관리 하는 수준에 그친다.

    저소득층 아토피 환자에 대한 지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일부 지자체에서 저소득층 가정의 아토피 환자에게 연간 30만 원 한도 내에서 지원하지만, 한 달 약값에도 못 미친다는 불만이 많다.

    아토피 전문가들은 한정된 아토피 관련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각 부처 간 협조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대한아토피협회 김정희 이사는 “각 부처의 사업 특성을 살리면서 협조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들 부처가 연계하면 예산 낭비를 줄일 수 있고, 시너지 효과도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환경성 질환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도 앞다퉈 아토피 치료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하지만 열악한 재정 상황 탓에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예산을 확보해 사업을 수행하기란 불가능하다. 사업을 제대로 운영하려면 정부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중앙 정부 역시 “한정된 예산 때문에 모든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난색을 표한다.

    “어렵사리 따냈습니다. 요즘 지자체가 예산 따내려면 다 그렇죠.”

    전남 보성군청 환경수자원과 관계자는 “아토피 치료센터를 건립하려고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예산을 지원받기가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2009년 초 보성군은 군 특산물인 녹차를 활용해 아토피 치료센터를 건립하려고 나섰다. “녹차 성분이 아토피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까지 준비했기 때문에 정부 지원을 쉽게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어렵사리 지원받아도 내용 부실

    ‘2% 부족’한 국가의 아토피 관리

    아토피 관련 사업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유관부서 간 협조와 종합적 대책이 절실하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참 좋은 계획이지만 예산이 없다”는 말뿐이었다. 환경부, 기획재정부를 수차례 찾아가 설득한 끝에 국비 50억 원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이것도 보성군이 정부에 처음 요청한 84억 원에서 30억 원가량이 깎인 수준이다. 현재 보성군은 국비 50억 원에 지방세수 50억 원을 지원받아 2012년까지 아토피 치료센터를 건립하기로 하고, 설계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나마 보성군은 나은 편이다. 어찌 됐든 예산을 확보했고 아토피 치료센터를 건립할 수 있으니 말이다. 많은 지자체의 아토피 관련 사업은 예산상 이유로 중단한 상태다. 환경부가 올해 아토피 등 환경성 질환 예방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배정한 예산은 36억6700만 원으로, 거의 대부분 환경보건센터 지원과 환경성 질환 연구에 사용한다. 환경부의 아토피 사업 예산에서 지자체 사업을 직접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은 전무하다.

    어렵사리 예산을 지원받아 아토피 사업을 추진해도 내용이 부실한 경우가 많다. 특색 있는 사업도 없고, 대부분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장밋빛 계획을 내세웠다가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토피 관련 사업을 가장 활발하게 추진한다는 서울시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시는 2006년 오세훈 시장이 부임하면서 ‘아토피 없는 서울’이라는 모토 아래 아토피의 주요 발병 원인을 규명하고, 표준화한 진단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아파트 실내 건축자재의 유해물질 방출 여부를 조사한 뒤 친환경 자재 사용을 유도하고, 환경부 및 복지부와 협조해 종합적인 아토피 대책을 마련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저소득층 아토피 환자를 위한 ‘아토피 전문 클리닉’도 4곳으로 확대 설치할 계획이었지만 예산 부족 등의 문제로 서울의료원 1곳에서만 운영한다. 서울시 자치구 보건소를 통해 250개 학교 및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2010년 4월부터 ‘아토피 안심학교’를 운영했지만 대부분 홍보, 건강 강좌, 상담에 그쳤다. 서울시 건강증진과 관계자는 “아토피는 건강, 환경, 사회 문제가 다 함께 얽힌 문제다. 지자체가 환경학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서울시에서는 아토피를 질환으로 간주하고 건강학 측면에서 접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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