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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어린 시절’(2009). 원 안은 세부 모습.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오광수) 산하 아르코미술관(관장 김찬동)이 ‘2011년 올해의 대표작가’로 선정한 황인기 작가는 ‘디지털 산수화’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컴퓨터로 작업을 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한 땀 한 땀 손으로 ‘새겨넣는’, 그야말로 아날로그 방식이죠. 동서양의 명작, 풍경, 기록 사진 등을 디지털 픽셀로 ‘전환’한 후 못의 일종인 리벳이나 실리콘, 플라스틱 레고, 크리스털 등을 부착해 거대하게 재구축합니다.
5월 29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는 ‘황인기 :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전은 작가의 40여 년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는 것은 물론, 실험적인 신작도 다수 선보입니다. 제1전시실에서는 ‘한바퀴 휙’ ‘몽유’ ‘황새마을’ ‘오래된 바람’ ‘산보’ 등 산수를 소재로 한 대표작을 전시합니다. 동양의 전통 산수를 이진법의 디지털 기법으로 묘사했는데, 실제 디지털 픽셀은 2차원이지만 그의 작품 속 ‘픽셀’은 3차원 입체 구조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즉 높낮이를 달리해 밀도와 깊이를 가지도록 한 거죠.
이 전시의 타이틀작인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 시리즈는 제2전시실에서 선보입니다. 이 시리즈 중 하나인 ‘플레이보이’는 가슴을 활짝 드러낸 육감적인 모델이 마치 관람객을 유혹하듯 바라보고 있죠.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가슴 한가운데엔 ‘타이머’가 돌아가고, 아름다운 얼굴과 윤기 넘치는 머리카락엔 하얗게 곰팡이가 슬었습니다. 작품 표면에 석회와 메주콩, 우유, 달걀, 바나나 등 부패하기 쉬운 재료를 섞어 발랐거든요. 같은 시리즈 ‘페라리’와 ‘롤렉스’ 역시 이름만으로도 유명한 상표와 브랜드를 녹슬고 부식되고 심지어 넝쿨에 휘감긴 모습으로 표현했습니다. 마치 지금 ‘명품’으로 대변되는 가치가 얼마나 덧없는지 비웃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 젊음과 청춘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도 알려주는 듯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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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 연극을 보러 간다면, 이 전시도 꼭 한번 둘러보길 바랍니다. 디지털 픽셀로 표현한 아날로그 소재의 독창성은 직접 보지 않으면 어떤 건지 알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관람료 2000원.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월요일 휴관. 문의 02-760-48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