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주목한 제이 알라드는 구태의연한 마이크로소프트(MS)에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었다.
알라드는 보스턴대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링을 공부했다. 그는 좋은 학생을 채용하러 온 MS 스카우트 담당자의 눈에 들어 시애틀 MS에 입사했다. 대학시절부터 인터넷에 심취한 그는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라는 MS의 분위기는 그의 생각과 달랐다. 윈도와 오피스 제품군이 대성공을 거뒀지만 인터넷을 대하는 MS의 태도는 매우 소극적이었다.
그는 입사 후 3년간 윈도 NT 서버 소프트웨어 사업 부문에서 일했지만, 이대로는 MS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1994년 ‘윈도 : 차세대 인터넷 킬러 애플리케이션’이라는 메모를 남겼는데 이 메모가 빌 게이츠의 눈에 띄어 25세의 젊은 혁신가는 일약 MS의 스타로 등극했다.
그는 빌 게이츠에게 강력한 웹서비스를 구축하라는 미션을 부여받고, ‘프로젝트 42’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1500명에 이르는 인원을 투입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관리의 어려움과 지나치게 많은 목표 탓에 제대로 추진해보지도 못하고 1999년 5월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두 달 정도 휴식기를 가지면서 뼈저린 반성을 했다. 꿈이 아닌 조직을 꾸려 나가려 했던 것이 프로젝트의 주된 실패 요인이라 판단한 그는 이후 콤팩트한 조직을 강력하게 끌고 나가는 방식을 선호했다.
MS가 패키지 기반의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 외에 마땅한 혁신을 거두지 못할 때 빌 게이츠는 비디오게임에 관심을 돌렸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는 당연히 윈도를 운영체제로 해 새로운 게임 콘솔을 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하드웨어 부문 부사장이던 릭 톰슨은 닌텐도를 인수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반면 알라드는 윈도가 들어가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게임 콘솔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빌 게이츠는 공식 회의석상에서 윈도를 채택할 수 없다는 그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결국 빌 게이츠는 그의 의견을 수용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Xbox다. Xbox는 윈도와 오피스 외에는 별다른 성공 사례가 없던 MS에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줬다.
이후 알라드는 E·D 사업부의 최고경영자(CEO) 겸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일하면서 준(Zune)과 XBox 360 같은 MS의 미래를 좌우할 프로젝트를 진행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MS의 최대 실패작인 윈도 모바일을 그의 사업부로 이관함에 따라 그는 선택의 기로에 섰고, 그가 야심차게 진행했던 태블릿PC 프로젝트 쿠리어가 세상에 나올 수 없다는 최종 결정에 이르자 그는 결국 MS 생활을 정리했다. 앞으로 그가 어떤 선택을 가지고 다시 나타날지 많은 사람이 궁금해한다.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을 가지고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 정지훈 교수는 의사이면서 IT 전문가라는 이색 경력을 지니고 있다. 현재 관동대 의과대 명지병원 융합의학과 교수이자 IT융합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거의 모든 IT의 역사’ 저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