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은 누구일까. 북한 김정은,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극단주의자 등 저마다 답변이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100년 후 역사학자가 지금 이 시점을 평가한다면 가장 위험한 인물로 누구를 꼽을까. 아마도 1월 20일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꼽을 개연성이 크다.
인류의 운명과 직결된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가 지구온난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공공연하게 지구온난화는 ‘사기’라고 말해왔다. 그가 지구온난화를 초래하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기체를 내뿜는 석탄산업의 부활을 언급한 것도 이런 인식 탓이다. 정말로 지구온난화는 사기일까.
이미 너무 더운 지구
트럼프 대통령뿐이 아니다. 지구온난화가 사기라거나 과장됐다는 기사는 잊을 만하면 국내외 언론에 실린다. 보통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번 겨울처럼 예년보다 기온이 높을 때는 정말로 지구가 더워지나 싶다가도, 무서운 동장군이 차가운 칼날을 거침없이 휘두를 때는 고개를 갸우뚱한다.하지만 보통 사람이 지구온난화를 일상생활에서 체감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왜냐하면 지구온난화는 말 그대로 지구 전체의 기후 변화이기 때문이다. 지구 전체의 표면 온도는 계속 오르는데도, 어떤 지역은 오히려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날씨 변화를 놓고 지구온난화를 따져서는 안 된다.
이제 지구온난화에 대한 ‘팩트’를 확인해보자. 공교롭게도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무렵 미국 항공우주국(NASA) 등의 과학자는 충격적인 관측 결과를 발표했다. 2016년 지구 표면 온도(14.84도)가 기상 통계를 내기 시작한 1880년 이후 가장 뜨거웠다는 것이다. 3년 연속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이런 ‘뜨거운 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세기 지구 평균 기온(13.9도)보다 뜨거운 해가 1977년부터 40년째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지구 기온은 산업화 이전(1880~1899)과 비교해 2016년 기준으로 1.1도 상승한 상태다. 즉 지구는 진짜로 더워지고 있다.
이 대목에서 ‘고작 1도가 뭐가 대수지?’ 하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겠다. 그럴 만도 하다. 요즘 같은 환절기에는 5~6도의 일교차도 다반사니까. 그럼 지구 평균 기온이 5~6도 낮아지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과학자의 추정에 따르면 얼음이 지구를 가장 넓게 덮고 있었던 최근의 빙하기는 약 2만 년 전이었다. 그때 지구 전체 평균 기온이 지금보다 5~6도 낮았다.
역으로 따져 지구 평균 기온이 1.1도 상승한 게 얼마나 큰일인지 감이 올 것이다.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지구 평균 기온이 2도 정도 높아지면 지구 생명체의 20%가량이 멸종하리라는 게 과학자들의 예측이다. 지구 평균 기온이 2도 정도 상승했을 때 제일 먼저 자취를 감출 것으로 예상되는 동물은 개구리다. 1987년 수컷이 마지막으로 발견되고 나서 자취를 감춘 남미 코스타리카의 ‘황금개구리(The Golden Toad)’는 지구온난화로 멸종한 (인간이 알고 있는) 첫 번째 동물로 추정된다.
지구온난화, 과학이 아니라 정치
지구가 더워진다고 곧바로 할리우드 재난영화 같은 대재앙이 닥치지는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앞으로 50년 후, 100년 후 더워진 지구의 기후가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당연한 얘기다. 툭하면 일기예보가 틀리다고 투덜대지 않는가. 하루 이틀 뒤 서울 날씨도 예측하기 어려운데 50년 후, 100년 후 전 지구의 기후를 어떻게 정확히 예측하겠는가.기후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 사이에서도 상당한 의견 차가 있다. 극소수 낙관론자는 지구온난화가 초래할 기후 변화가 인류가 감당할 만한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다수 과학자는 지금 이대로라면 (인류가 온실기체를 줄이려 노력하더라도)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3도 정도 올라 심각한 기후 재앙이 닥치리라고 전망하다.
진짜 무서운 것은 비관론자의 예측이다. 이들에 따르면 인류는 기후 변화의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로 질주하고 있다. 어느 시점에 지구온난화가 초래할 작은 변화가 걷잡을 수 없는 심각한 변화를 낳으리라는 것이다. 가만히 들어보면 상당히 그럴 듯하다.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양의 피드백(Positive Feedback)’ 현상이다.
예를 들어 북위 60도 이상은 1년 내내 땅이 얼어 있는 영구 동토층이다. 이런 땅 에는 동식물 사체를 비롯한 수많은 유기물이 썩지 않은 채 얼어 있다. 인간이 배출한 온실기체가 늘어나 지구가 더워지면 이 영구 동토층이 녹아 그 안의 유기물도 썩는다. 그때 나오는 메탄은 짧은 시간 동안 강력한 온실효과로 지구를 더 덥게 만든다. 그 결과는? 대재앙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산업화 이후 인간이 배출한 온실기체 때문에 지구가 더워진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과학자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더워진 지구가 어떤 모습의 기후 변화로 이어질지를 놓고는 이렇게 의견이 다르다. 이것이 바로 지구온난화를 둘러싼, 과학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불확실성이다.
과학자조차 이렇게 낙관론과 비관론이 엇갈린다면 어쩌란 말인가. 이 대목에서 지구온난화는 과학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로 바뀐다. 과학자의 입만 바라보면서 그들의 처방을 기다릴 일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고민해 해결 방향을 선택해야 할 정치 문제인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런 사실을 정확히 간파한 인물이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는 개구리를 비롯한 수많은 동식물 대신 부자 나라의 부유한 정치인과 기업가 편에 서 있다. 그런 부자는 기후 재앙이 닥치더라도 살 길을 찾을 가능성이 클 테니 그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라 멸종위기의 개구리 편에 서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