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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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의 미식세계

말린 우럭 바람 맞을수록 꾸덕꾸덕 더해지는 맛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17-04-04 13:5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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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 횟집에 들러 계절이나 입맛에 상관없이 맛볼 수 있는 상시 메뉴가 있다면 광어·우럭 세트가 아닐까.

    횟집 우럭은 양식으로 대량 공급되기 때문에 주인공으로보다 다른 회의 부족한 양이나 시원한 매운탕 맛을 보탤 때 주로 사용된다.

    이처럼 도시에서는 묵묵한 조연인 우럭도 제 고향 서해에 가면 어느 것보다 눈부시고 맛좋은 요리 재료의 주인공이 된다.

    충남 서산, 태안 등 조수 간만의 차가 큰 바다에서 나는 자연산 우럭은 힘이 좋고 살이 탄력 있다. 우럭은 늦가을이나 겨울에 짝짓기를 한 뒤 5~6월 새끼를 낳는다(알을 배 속에서 부화한 다음 새끼를 낳는 점이 특이하다).

    새끼를 낳기 직전인 3~4월에 살지고 맛도 오른다. 서산 사람들은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는 때’가 우럭도 맛이 오를 때라고 한다. 생우럭을 회, 구이, 탕으로 먹기도 하지만 말려 먹는 우럭의 맛을 최고로 친다.



    싱싱한 우럭의 내장을 제거한 뒤 배 쪽으로 길게 반 가른다. 우럭을 펼쳐 깨끗한 물에 씻은 다음 물기를 빼고 껍질과 안쪽에 천일염을 골고루 뿌려 간한다. 이것을 펼쳐 바람이 잘 통하는 넓은 철망에 널어 말린다. 봄철 천수만 쪽에 가보면 등이나 배를 활짝 펼친 채 하늘을 향해 누워 있는 우럭 무리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짧게는 사흘, 길게는 2주일가량 말린다.

    말리는 기간에 따라 발효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요리 맛도 차이 난다. 말리는 기간이 짧으면 살이 부드럽고 짠맛이 덜하다. 오래 말릴수록 살이 단단해지고 간이 세지며 독특한 향이 난다. 오래 말린 것일수록 살코기 색도 노릇하게 짙어진다. 말린 우럭은 4등분하거나 통째로 차곡차곡 쌓아 냉동실에 넣어 두고두고 먹을 수 있다.

    서산 사람들은 말린 우럭 요리 중에서도 속풀이 해장은 물론이고 보양도 되는 우럭젓국을 으뜸으로 여긴다. 젓국 요리로 유명한 식당 ‘솔밭가든’은 말린 우럭을 쌀뜨물에 담가 잠시 불린 다음 큼직하게 썬 두부, 마른 고추, 무, 파, 다진 마늘을 넣고 새우젓으로 간해 끓인다. 마른 고추의 달고 매운맛이 우러나 시원하다. 우럭 살은 포슬포슬 부드럽고 고소하다. 북어나 황태로 끓이는 국물의 시원함과는 달리 개운함 속에 진한 맛이 가득 차 있다.



    우럭을 직접 잡아 말리는 ‘대영수산’에서는 2주가량 말린 것으로 젓국을 끓인다. 대파, 양파, 풋고추와 다진 마늘만 넣고 바로 쌀뜨물을 부어 끓인다. 노르스름한 우럭 살코기는 쫄깃쫄깃하고, 맑은 국물은 놀랄 만큼 진국이며, 코끝을 툭 치는 독특한 향이 입맛을 돋운다.

    발효의 맛이다. 입맛에 따라 미나리, 버섯, 쑥갓 등을 올려 채소향을 보태도 좋고 조개나 미더덕 등을 넣어 바다의 감칠맛을 더하기도 한다.

    간과 향이 잘 밴 말린 우럭은 그대로 쪄서 결대로 찢어 먹어도 맛있다. 또는 말린 우럭을 물에 담가 소금기를 빼고 불린 다음 갖은 양념을 넣어 조려 먹기도 한다.

    간장, 고춧가루, 다진 파와 마늘을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말린 우럭에 큼직하게 썬 무, 대파, 고추 등과 양념장을 올리고 물을 자작하게 부어 조려 내면 ‘기똥차게’ 맛있는 밥도둑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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