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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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 처녀 회춘론'믿다가 목숨잃은 충혜왕

  • < 이선규/ 유로탑 피부비뇨기과 원장 > www.urotop.com

    입력2004-12-30 15: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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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백 처녀 회춘론'믿다가 목숨잃은 충혜왕
    얼마 전 청소년 성매매 사건으로 망신살 톡톡히 뻗친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연이어 2차 신상공개가 있다고 하니 당사자의 두려움은 차라리 ‘죽음’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의 역사 속에도 이런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고려 28대 충혜왕. 비록 오늘날과 같은 신상공개를 하더라도 해당사항이 없는 왕의 위치에 있었지만 결국 그런 작태로 인해 목숨을 잃고 말았으니 처지가 다를 바는 아니다.

    충혜왕의 신하 중 유씨 성을 가진 간신이 있었는데, 그는 어의(御醫)라는 자신의 직분을 이용해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1백 처녀 회춘론’ 비슷한 것을 진언했다. ‘백만대군 양병설’은 들어봤어도 ‘1백 처녀 회춘론’은 독자나 필자나 처음 듣는 이야기일 것이다. 내용인즉, 1백일 동안 매일 밤 어린 숫처녀와 잠자리를 하면 만수무강하리라는 것이었다.

    충혜왕이 누군가. 색(色)을 밝히기로는 연산군 둘째가라면 서러운 군주였다. 사서(史書)에 따르면 그는 아버지 충숙왕 사후 부왕의 여자인 숙령과 휘령공주를 술자리에 불러 신하들로 하여금 몸을 붙잡게 한 채 강간하기도 했고 아버지의 후궁인 수빈 권씨 몸마저 강제로 빼앗은 사람이다.

    이런 상황에서 ‘1백 처녀 회춘론’이 등장하니 충혜왕으로서는 듣던 중 반가운 이야기. 냉큼 신하의 의견을 받아들인 충혜왕은 그로부터 1백일 동안 환락의 밤으로 빠져들었다. 유씨는 전국을 돌며 어린 처녀를 물색해 차곡차곡 왕의 방으로 들여보냈으며 거기에 각종 정력제와 원기회복을 위한 처방전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하루도 빼지 않고 밤을 지새기를 석 달 열흘째. 빛나는 얼굴에 아기 같은 피부를 얻어, 말 그대로 ‘회춘’할 것으로 기대한 충혜왕의 얼굴은 핏기는 간 데 없고 골육은 쇠잔해졌다. 왕은 그때부터 코피를 쏟으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결국 충혜왕은 그 일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고 한다.

    회춘도 좋고 정력도 좋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고 했다. 청소년 성매매의 근본에는 이러한 충혜왕식(式)의 무지한 ‘회춘론’이 자리잡고 있다. 가장 좋은 회춘 방법은 역시 평소의 건강관리와 애정 어린 섹스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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