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년 서울지하철노조 초대위원장을 맡은 이후 두 번의 투옥과 해고, 10년 만의 복직을 거친 그의 이름은 80~90년대 노동운동계에서 ‘강성’을 상징하는 말 그 자체였다. 그런 그가 ‘노조 온건화’를 주도하는 리더가 된 것은 99년 다시 노조위원장을 맡으면서부터. “일단은 성질대로 발길질은 했는데 나중에 보면 감옥에 가 있더란 말입니다. 파업을 통해 얻은 성과들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모두 사라지거나 오히려 악화되고, 조합은 위기에 처하는 악순환이 계속된 거죠.” 파업 위주의 전략은 회사측에 “강성노조 때문에 경영이 안 된다”는 빌미만 제공해 왔다고 그는 말한다.
이제 그가 그리는 노조의 모습은 임금 인상과 같은 사내 문제에 집중하는 대신 시민이 주인인 공기업 직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생각하는 형태. 이를 바탕으로 그는 ‘지하철 24시간 운행’ ‘공사 임원 선임과정의 시민참여 제도화’ 같은 뜻밖의 이슈들을 제기했다.
이러한 주장들은 안팎에서 ‘노사협조주의’ ‘어용’이라고 비판받기도 했지만 그가 털어놓는 생각은 조금 다르다. “솔직히 속에서는 불이 나지만 웃고 있는 겁니다. 저라고 지난 2년 간 조금도 달라진 게 없는 회사가 예쁘겠습니까. 장기적으로 득이 안 되니까 참는 거죠.”
99년 노조가 선언한 ‘무파업 선언’ 덕분에 서울 지하철은 지난 22개월 간 쟁의 없이 달렸다. “지하철이 시민의 발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겠다”는 배위원장의 실험이 추후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