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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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모른 척한다고 ‘괘씸죄’ 적용했나

부시 ‘우방국 리스트’ 캐나다 누락 들끓는 여론 … “이웃 나라 너무 홀대 섭섭하네”

  • < 황용복/ 밴쿠버 통신원 > ken1757@hotmail.net

    입력2004-12-29 16: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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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모른 척한다고 ‘괘씸죄’ 적용했나
    미국 뉴욕과 워싱턴에서 항공기 자살테러 사건이 터지자 캐나다는 성의를 다해 애도의 뜻을 표했다. 적어도 대다수 국민은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런 캐나다 사람들을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사건 9일 뒤인 9월 20일 크게 실망시켰다. 부시 대통령이 상하 양원과 행정·사법부의 요인들까지 참석한 가운데 행한 이날의 ‘역사적’ 연설에서 테러와의 전쟁에 지지를 보낸 대표적 우방(ally) 16개국을 열거했으나 캐나다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 이 16개국에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전통적 ‘친구 나라’들뿐 아니라 일본 인도 파키스탄 이집트 엘살바도르 등도 포함돼 있다. 한국의 어린이들이 희생자들을 애도한 사례도 인용됐다.

    연설 직후 캐나다의 정치권과 뉴스 미디어들은 캐나다가 ‘부시 리스트’에서 빠진 경위를 놓고 스너브(snub)냐 아니냐로 촉각을 곤두세웠다. ‘스너브’란 단어는 ‘핀잔’ 정도의 한국어로 번역될 수 있겠으나 그 뉘앙스는 속어인 ‘쫑코’에 더 가까운 듯하다.

    “점수를 매기는 부시 행정부”

    캐나다의 장 크레티앵 총리 정부가 앞으로 있을 미국의 군사행동을 무제한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을 비롯해 여러 가지로 ‘부시의 길’과 어긋나게 걷는 데 대해 심사가 뒤틀린 부시 행정부가 의도적으로 캐나다를 명단에서 뺐다는 해석이 스너브설(說)의 요지다. 만약 스너브가 맞다면 단순히 캐나다인들의 불쾌감을 유발한 해프닝 정도가 아니라 부시 행정부와 캐나다의 험난한 관계를 예고하는 불길한 전조다. 앞으로의 문제는 접어두더라도 당장 많은 캐나다 사람들이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워싱턴 당국은 여러 채널을 통해 스너브가 아니라며 진화에 나섰다. 캐나다는 미국의 입장에서 외국이라기보다는 형제 또는 가족과 같은 나라이기 때문에 굳이 연대감을 강조할 필요가 없어서 거명하지 않았다는 것이 미국 쪽의 한결같은 설명이다. 부시 대통령은 연설 나흘 뒤 크레티앵 총리와 사전 예약된 회담을 마치고 나와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스너브설은 “나의 말꼬리를 잡아 정치놀음을 하려는 자”(Those who try to play politics with my words)들의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크레티앵 총리도 테러사건 이후 부시 대통령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상태임을 전제하고 캐나다를 누락시킨 것이 “의도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백악관 관리는 30분 동안의 연설에 방대한 내용을 담아야 하는 관계로 연설문 작성 막판에 캐나다 부분을 뺐다고 말했다. 평소 미국과의 공조가 덜 이뤄졌던 나라들을 추켜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 캐나다는 뺐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들의 말과는 달리 미국이 심술을 부렸다고 봐야 한다는 해석도 많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 소재 전략 및 국제문제 연구센터 연구원인 크리스토퍼 샌즈는 캐나다를 누락시킨 것이 “우발적인 것이 아니다”며 “부시 행정부는 (상대국의) 점수를 매기는 행정부”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테러사건과 관련한 미국과 캐나다의 공조는 ‘참사 단계’와 ‘전쟁 단계’로 구분된다고 전제하고, 캐나다가 참사 단계에서는 미국에 많은 지지를 보냈으나 전쟁 단계에서는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조 클라크를 비롯해 캐나다의 야당 정치인들 중에서도 이번 캐나다의 누락이 부시 행정부가 크레티앵 정부에 대해 ‘괘씸죄’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캐나다 국민 입장에서는 캐나다가 가족과 같은 나라이기 때문에 따로 공치사를 하지 않았다는 설명을 믿고 싶지만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부시 대통령은 테러사태 이후 급히 미국을 방문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면전에서 미국에게는 “영국 이상으로 진실한 친구가 없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또 2주일 전 멕시코 대통령이 미국에 들렀을 때는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멕시코와의 관계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매파적 성향의 부시 행정부와 캐나다의 크레티앵 정부간에는 관계가 껄끄러워질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당장 이번 사태와 관련해 크레티앵 총리는 테러를 근절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에 동의하면서도 부시 대통령이 자제와 인내를 보여야 한다는 뜻을 함께 내비쳤다. 9월24일 두 사람이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했을 때 앞으로 있을 미국의 군사행동에 캐나다가 가세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쟁 모른 척한다고 ‘괘씸죄’ 적용했나
    이번 사태 이전부터 캐나다는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에 분명한 동조 입장을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미국으로 수출되는 캐나다산 목재에 대해 올 7월부터 미국이 보복관세를 잠정 부과하고 있는 조치를 놓고도 두 나라 당국의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다.

    이번 테러사건과 관련, 크레티앵 정부는 군사적 발맞춤 외에도 또 하나 부시 행정부를 실망시키는 입장을 취했다. 미국은 테러범들이 미국보다 입국하기 쉬운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잠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캐나다도 미국 못지않게 이민 및 입국심사 절차를 강화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크레티앵 정부는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크레티앵 정부는 ‘미국이 가는 길’에 그냥 ‘옳소’만 연발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캐나다가 쌓아 온 평화의 나라로서의 이미지가 훼손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크게 봐서 캐나다는 미국의 우방이지만 캐나다 지도자들이 워싱턴 당국의 노선에 늘 고분고분하지만은 않았던 사례들이 캐나다 건국(1867년) 초기에는 물론 최근세사에까지 수없이 나온다. 이 때문에 미국과 많은 갈등을 겪기도 했다.

    1960년대 초 소련 미사일의 쿠바 배치와 관련해 미국과 소련이 첨예하게 대립함으로써 3차 대전의 전운까지 감돌았을 때 미국의 여러 ‘친구 나라’들이 미국을 지지하고 나섰으나 캐나다 총리 존 디펜베이커는 그 대열에 끼이지 않았다. 이후 존 케네디 대통령은 디펜베이커를 원수 보듯 대했다.

    1965년 레스터 피어슨 총리가 워싱턴으로 가 린든 존슨 대통령을 만났을 때 존슨이 피어슨의 멱살(정확히 말해 양복의 목덜미 부분)을 잡고 “당신이 내 집 양탄자에 오줌을 갈겨!”(You peed on my rug!)라며 고함을 지른 적도 있었다. 피어슨은 존슨을 만나기 전 뉴욕에서의 연설에서 미국이 베트남전을 확대하는 데 대해 비판했는데, 존슨은 이를 손님이 주인집 양탄자에 오줌을 갈기는 것에 비유하며 화풀이를 했다. 캐나다는 끝까지 베트남전에 발을 담그지 않았다.

    1970년대에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의 피에르 트뤼도 총리를 비속한 욕설인 ‘항문’(asshole)이라고 지칭했던 것도 유명한 일화다. 트뤼도는 미국 자본이 캐나다의 석유자원을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를 입법화 한 것을 비롯해 여러모로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

    올 초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부시 대통령의 예우가 깍듯하지 못했다는 국내 보도들이 있었으나 캐나다 지도자들이 당한 험한 꼴보다는 덜한 듯하다. 캐나다는 어느 모로 봐도 선진국이고 G7의 일원이기도 하지만 상대적 약소국의 입장이어서 미국을 대하기가 어렵기는 한국이나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밴쿠버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밴쿠버 선’은 9월24일자 사설에서 근 7000 명이 숨진 대재난의 와중에서 미국의 감사를 받는 대상국에서 캐나다가 빠졌다고 ‘칭얼거릴’ 수는 없지만 부시 대통령은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그 북쪽의 “이웃, 교역 파트너 그리고 친구”에게 좀더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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