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인 2002년 5월 모교인 부산상고에서 열린 동창회 가족 한마음 체육대회에 참가, 선후배 동문들과 박수를 치며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그러나 몇 개월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박 회장이 보란 듯이 포스코건설 등기이사 겸 상임고문으로 복귀한 것. 다른 기업에서도 주총에서 물러난 대표이사가 등기이사로 다시 돌아온 경우는 거의 없다. 포스코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 초기 포스코 회장으로 영전한다는 얘기가 나돌았던 박 회장이 오히려 밀려난 것도 놀라운 일이었는데, 정부의 반대에도 복귀에 성공한 것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면서 “그의 복귀를 둘러싸고 부산상고 동문들의 지원이 결정적이었다는 뒷말이 나왔다”고 소개했다.
당시 정부 관계자들은 “포스코가 민영화된 직후여서 정부의 각별한 관심 대상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포스코 자회사 인사에 ‘개입’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포스코 주변에서는 “민영화 기업 자회사 인사에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한 것도 문제이지만, 박 회장이 부산상고 출신이 아니었다면 명예회복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뒷말이 나왔다.
한행수 전 열린우리당 재정위원장(현 대한주택공사 사장)도 구설에 올랐다. 2004년 5월 한국도로공사(이하 도공)가 사장을 공모할 때의 일이다. 당시 도공 주변에선 “현 정권 실세가 응모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사장추천위원회에 참여했던 K 씨는 “실세란 한행수 당시 열린우리당 재정위원장을 두고 하는 얘기였는데, 한 위원장이 부산상고 출신이어서 그런 소문이 나돌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오정희 씨, 2급 승진 2년도 안 돼 차관급으로 초고속 승진
그러나 한 위원장은 도공 입성에 실패했다. 부산상고 출신이라는 점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 앞의 K 씨는 “당시까지만 해도 노무현 정부가 ‘시스템 인사’를 강조할 때여서 사장추천위원들은 한 위원장이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도공 사장이 되면 오히려 정권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그에게 낮은 점수를 주었던 게 탈락 이유였다”고 귀띔했다.
한 위원장은 2004년 11월 대한주택공사(이하 주공) 사장으로 입성했다. 그는 1970년 삼성그룹에 입사한 이후 삼성건설 주택사업본부 부사장, 삼성중공업 건설부문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그는 삼성중공업 건설부문 대표이사 시절 주택부문 사업 부실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00년 1월 삼성라이온즈㈜ 대표로 전보됐는데 주공 사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해 삼성 내부에서도 뒷말이 무성했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의 모교인 부산상고 인맥이 다시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내정설’이 나돌던 신상우 전 국회 부의장이 1월3일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열린 KBO 이사회(프로야구 8개 구단 사장단 회의)에서 차기 총재로 추대됐기 때문. KBO는 10일 총회(구단주 회의)를 열고 신 전 부의장을 총재로 선출했다. 신 전 부의장은 한때 한국무역협회 회장 내정설이 나돌기도 했다.
잘 알려진 대로 신 전 부의장은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로, 대선 때 총동창회장을 맡아 측면 지원을 했던 대선 공신. 노 대통령이정치적 자문을 구할 정도이고, 현 정부 초기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한때 국가정보원장에 거명되기도 했으나 ‘신상 문제’ 때문에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이런 이유로 신 전 부의장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후문.
이성태 한은 부총재 승진 여부 관심
현재 고위 공직자 가운데 부산상고 출신은 윤광웅 국방부 장관과 오정희 감사원 사무총장, 성윤갑 관세청장, 차의환 대통령혁신관리비서관, 이성태 한국은행 부총재, 이수희 증권예탁결제원 상임감사 등이 있다. 이밖에 공기업 대표로는 한행수 주공 사장을 비롯해 황두열 한국석유공사 사장, 김지엽 대한석탄공사 사장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오정희 감사원 사무총장은 초고속 승진으로 주목을 받았다. 7급 출신으로 감사원 공보관과 특별조사국장을 거쳐 2003년 말 2급으로 승진한 그는 이듬해 2월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들어간 직후 1급 비서관으로 승진했다. 이어 1년 만인 2005년 초 차관급인 감사원 사무총장으로 금의환향해 뒷말을 낳기도 했다.
이성태 한국은행 부총재는 금융계의 관심 대상 중 한 사람. 박승 한국은행 총재의 임기가 3월 말로 끝나기 때문이다. 한은 내부에서는 이 부총재의 승진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한 간부는 “이 부총재는 한은에 수석 입행한 이후 실력과 인품으로 직원들의 신망을 얻고 있는 데다 조직을 잘 알기 때문에 한은 내부의 기대감이 크다”고 말했다.
민간 부문에서도 부산상고 출신의 부각은 눈에 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관심을 끈 인사는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5월 현대증권 사장으로 영입된 김지완 전 부국증권 사장. 이에 대해 당시 증권가에서는 “현대그룹이 정부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던 현대증권 매각 작업의 흐름을 바꾸기 위한 포석으로 영입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현대그룹 측은 당시 이런 관측을 부인했지만 이후 현대증권 매각 작업은 실제로 중지돼 여전히 현대그룹이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김 사장은 올 5월 주총에서 연임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증권 한 임원은 “젊은 직원들의 생각을 수렴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와 현장을 누비는 활동력이 김 사장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부산상고 출신의 부상에 대해 일반의 시선은 복합적이다. “노무현 대통령 덕을 본 것 아니냐”는 시각에서부터 “이미 조직 내부에서 검증이 이뤄진 인사들이 빛을 보고 있을 뿐”이라는 평가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반면 재경 부산상고동창회 인사들은 “대통령의 모교라는 이유 때문에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