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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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공무원 ‘살생부’ 나돈다

親 민주당·‘고건맨’ 명단 적힌 문건 유통 … 대선 앞두고 공직사회 분열 우려돼

  •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4-10-12 10: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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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공무원 ‘살생부’ 나돈다
    16개 광역 시·도에서 인사개편이 시작되면서 공직사회 분위기가 뒤숭숭한 가운데, 서울시청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살생부’가 정치권에서 돌고 있어 커다란 파문이 예상된다.

    ‘주간동아’가 국회 한 사무실에서 입수한 ‘자료제출’이라는 제목의 이 ‘살생부’는 서울시 공무원 중 한나라당에 비판적이었던 일부 인사들을 4급 이상 공직자와 5급 이하 공직자로 구분해 직위와 이름을 기록해 두고 있다. 4급 이상 공직자는 모두 9명으로, 이들은 ‘주요 핵심대상자’와 ‘캠프 적극 가담자’로 구분돼 있다. 여기서 말하는 ‘캠프’란 지난 6·13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 김민석 서울시장 후보 캠프를 뜻한다.

    이 문건은 고건 전 시장 체제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갖고 있던 서울시 한 공무원이 최근 작성해 한나라당 관계자에게 넘긴 뒤 일부 정치인들 사이에서 돌고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문건은 특정 인사를 지목한 구체적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문건 유통 경로에 있던 한 인사의 설명에 따르면 주요 핵심 대상자로 분류된 인사들은 고건 전 시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면서 고건 체제의 서울시에서 잘나가던 상위 공직자들이라는 것. 즉 ‘고건 사단’의 핵심 멤버들이라는 얘기다. 이들은 현직 이사관급 이상이 2명, 부이사관급이 1명, 서기관급이 4명이다. 캠프 적극 가담자에는 현직 서기관급 인사 두 명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

    인사문제로 인한 오랜 갈등 노출된 셈

    서울시 공무원 ‘살생부’ 나돈다
    이 문건은 또한 인사, 감사, 예산, 총무 등 4개 부서를 ‘서울시 주요 부서’라고 정의내린 뒤 “5급 이하 직원 교체 요망”이라고 제안했다. 서울시 주요 부서에 대한 인적개편을 기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의 구체적 대상자들은 따로 분류돼 있다는 것이 정치권 한 인사의 설명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정치적, 악의적 해석은 하지 말아달라”고 주장했다. “정치권으로 들어오는 여러 실명 제보 중 하나일 뿐이며, 제보를 일부러 안 받겠다고 할 수도 없지 않느냐. 한나라당의 당 조직과는 무관한 개인의 제보수집 활동”이라는 설명이다. 이 문건을 작성한 공무원은 문건이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전달되기를 원했지만 실제로 이시장에게는 건네지지 않았다고 이 관계자는 주장했다.

    그러나 이 문건은 서울시의 복잡한 속사정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1, 2대 민선시장 시대를 거쳐오면서 서울시 공직사회 내부에 인사 문제로 인한 갈등양상이 심각하게 진행되어 왔다는 것. 서울시청 공무원직장협의회 박관수 회장은 “전임 고건 시장이 2002년 1월 단행한 인사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보는 서울시 공무원들이 상당히 많았으며, 이러한 세력들 중 몇몇은 시장교체 이후 큰 폭의 변화를 원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고건 당시 서울시장은 11명의 공직자를 3급으로 승진시켰다. 이때 서울시 내부에서는 ‘직원들 사이에 무능력자로 찍힌 인사가 포함됐다’ ‘연공 서열도 능력 위주도 아니다’ ‘특정지역 출신이 7명이나 포함됐다’는 등 심한 반발이 터져나왔다. 서울시공무원직장협의회측은 “당시 편중인사를 성토하는 글로 직장협의회 인터넷 게시판이 도배됐다”고 말했다. 나중에 인사 담당자가 “심사기준을 공개했으며, 공정한 인사였다”고 밝혔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명박 시장은 차관급과 이사관급 이상, 그리고 일부 부이사관급 및 서기관급 등 서울시 고위 공직자 30명에 대한 인사를 최근 단행했다. 살생부 문건에 거론된 공직자 중 일부가 이번 인사에 포함됐지만 해임, 대기발령, 비선호 부서 임명 등 문책성 인사조치를 받은 사례는 없었다.

    특히 고건 전 시장이 임명한 1급 공무원 7명은 전원이 승진되거나 유임됐다. 서울시 1급 공무원은 법적 신분보장이 안 되는 자리여서 한나라당 시장 취임 이후 큰 폭의 물갈이를 예상하는 시각이 서울시 내부에선 많았다. 그러나 이시장은 이들을 그대로 기용한 것.

    이시장의 첫 인사에 대해 “아들 사진 촬영 구설수에서 벗어나 서울시 조직을 안정화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히려 “조직을 쇄신할 대폭적 물갈이와 대규모 승진인사가 안 되어 아쉽다”는 반대 얘기도 있다. 이명박 시장의 한 측근은 “살생부 문건을 본 적 없다. 그러한 내용을 참고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살생부 문건에 대해 “그 내용은 전혀 검증 안 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연이어 국장급과 중·하위 직원 인사를 단행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공무원 수 4만5000명에 이르는 ‘준정부’ 규모다. 7년 만에 한나라당 시장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곳이기도 하다. 특히 5개월 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어 인사개편의 개혁성, 공정성 여부는 최대 유권자 집단인 서울 시민들의 표심에도 영향을 줄 사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동료를 악의적으로 매도하는 문건의 작성과 유통은 ‘공직사회 분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 등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서울시 한 고위 공직자는 “살생부 유포를 막기 위한 근본적 처방은 공정인사 관행의 정착에 있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7월22일부터 3기 단체장의 정실, 보복, 부적격 인사 등 ‘인사횡포’에 대한 특별감찰을 실시한다. 겉으로는 조용한 듯 보여도 수면 아래에선 거대한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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