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고유의 생식이 김치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브랜드로 부상할 수 있을까. 각종 곡식과 채소류를 익히지 않고 가루로 만든 생식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해외의 우리 교민들에게도 아침 식사용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생식은 이제 외국인들을 공략 대상으로 삼고 있다. 최근 국내의 한 생식업체가 화식(火食)에 길들여져 온 백인들의 입맛에도 맞는 제품을 개발,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는 호수 레이크타호를 끼고 있는 이 지역은 중류층 이상의 백인들이 끼리끼리 모여 사는 곳. 따라서 이 지역 사람들을 대상으로 생식이 호평을 얻을 경우 전체 미국인들에게도 충분히 먹힐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의 생식업체로서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음회 결과는 매우 성공적으로 나타났다. ‘밀타임’이라는 제품을 백인들에게 선보인 고을빛생식의 이광복 대표는 40여 가지가 넘는 건강 영양소에다 미국인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개발할 경우 미국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한국산 생식제품이 미국 교민들에게 건강에 좋은 것으로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백인들의 경우 생식 고유의 풋풋한 맛 때문에 먹기를 꺼려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기존의 생식 재료들에다 임준규 박사의 한방 비방을 가미한 ‘밀타임’으로 승부를 걸기로 했다. 이 제품은 풀맛 같은 냄새가 없으면서 우유나 두유에 타서 마시면 한국인 사이에서도 맛이 좋다는 평을 듣고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강좌에 참석한 백인들도 자기들 입맛에 맞다고 하면서 생식 한 컵을 단숨에 들이켰다. 맛이 없으면 대체로 이맛살을 찌푸리게 마련인데 대부분 거부감 없이 먹을 만하다는 반응이었다. 한 미국인 의사는 이 제품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느냐고 문의해 오기도 했다.”
고을빛생식의 북미지역 총판 책임자인 현승재씨(버클리 인터내셔널 대표)는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미국인들에게 식사 대용식으로서의 생식이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친다. “미국 사람들은 패스트푸드 같은 고칼로리성 음식을 즐겨 먹다 보니 비만 당뇨 등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돼 있다. 미국인들이 건강을 지켜주는 식품에 관심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생식이 패스트푸드를 대신할 여지가 많고, 더 나아가 생식이 김치에 이어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브랜드로 커갈 수 있다고 본다.”
사실 한국의 생식은 일찌감치 우리 교민사회를 거점으로 해외시장 진출을 꾀해왔다. 국내 생식회사 중 가장 먼저 해외시장에 진출한 회사는 이롬라이프. 1998년 미국 수출을 시작으로 현재 캐나다 호주 등 10여개국에 생식을 보급하고 있다. 이롬라이프의 최창원 부사장은 “우리 회사의 생식제품(이롬 황성주생식)만 하더라도 매년 평균 200% 이상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추세”라고 말한다. 이롬라이프측 자료에 따르면 ‘이롬 황성주생식’의 경우 2001년 480만 달러 수출액을 기록한 데 이어, 올 상반기에만 무려 450만 달러의 수출을 달성해 연말까지는 1000만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이중 미국이 전체 수출액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아쉬운 점은 미국에서도 생식의 80% 이상이 교민사회에서 소화되고 있다는 것.
이에 대해 이롬라이프의 미국지사 본부장인 김태진씨(LA 거주)는 백인 주류사회에서 생식에 대한 인지도는 낮은 편이지만 당뇨 등 건강에 이상이 있는 백인들 사이에서 생식이 건강에 좋은 식품으로 점차 자리잡아 가고 있다고 밝힌다. “현재까지는 생식제품이 각종 곡식가루와 채소, 해조류를 섞어 가루로 만든 것이다 보니 색깔이 칙칙한 편이고 맛도 그다지 없어 한번 시식해 본 백인들은 고개를 흔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비만과 당뇨 등으로 먹는 즐거움을 포기한 일부 백인들의 경우 꾸준히 생식을 복용해 본 결과 건강에 좋은 효과를 보았다고 입소문을 내고 있어 전망은 낙관적이다.”
현지법인 풀무원USA를 통해 풀무원 생식제품을 공급하고 있는 풀무원테크의 이규석 사장 역시 미국시장 개척에 밝은 견해를 보이고 있다. “풀무원 두부가 미국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경험을 바탕으로 생식 역시 백인들의 기호와 입맛에 맞게 개발해 마케팅을 할 경우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특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비만으로 고민하는 백인들에게 생식이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는 임상실험 결과를 들고 접근하면 아침이나 점심으로 햄버거 대신 생식이 대용식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다.”
풀무원테크측은 올해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지역에 대한 생식제품 수출액으로 100만 달러를 예상하고 있는데, 현 상태대로라면 목표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다.
미국에 진출한 국내 생식업체들은 한결같이 생식이 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는 먹을 만하다는 반응이 나타나고 있는데, 아시아계 사람들에게는 생식이 보편적인 식품으로서 어필할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밝힌다. 이는 특히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의 반응을 보면 보다 확실해진다는 것.
먼저 일본인들이 생식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언론보도에서도 나타난다. 지난 5월12일 TV아사히(朝日)에서는 ‘결정! 이것이 일본의 베스트 100’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생식을 주목받는 다이어트 식품으로 소개한 데 이어, 6월19일자로 발매된 주간지 ‘보물섬(寶島)’에서는 ‘건강유지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 생식이 일본에 상륙한다’는 제목으로 특집 기사를 선보이기도 했다.
일본에 한국의 생식제품이 처음으로 상륙한 것은 지난해 9월. 일본의 K&K 트레이딩사가 한국의 생식업체인 GMF사와 제휴함으로써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K&K의 마케팅 담당자는 생식을 수입한 이유에 대해 “곡물의 배아와 껍질, 식물의 이파리 등을 생(生)으로 제조한 한국의 생식제품은 여러 가지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고 컵에 타 마시는 등 먹기도 좋아 일본에서도 충분히 수용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가 일본에 생식을 선보인 후 여러 일본 업체에서도 한국의 생식회사들을 상대로 제품을 수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풀무원테크의 경우 일본의 5대 유통회사로 꼽히는 한 업체와 계약이 성립되기 직전까지 와 있다고 밝히고 있고, 고을빛생식의 경우도 일본측과 꾸준히 계약 상담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풀무원테크의 마케팅 담당자인 김병현 과장은 “일본 바이어들이 한국에서 생식 붐이 일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일본에서도 성공 가능성을 매우 높게 보고 있어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 쉽게 생식시장 안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중국 및 기타 시장
중국 역시 시장 개척은 낙관적이다. 현재 국내에서 생식업계의 선두주자로 달리고 있는 이롬라이프는 중국에서도 독특한 마케팅으로 활발한 시장 공략을 펼치고 있다. ‘이롬 생식(生食) 영양찬(營養饌)’이라는 광고 컨셉이 바로 그것. 즉 ‘생으로 먹는 영양 많은 식사’라는 개념으로 생식에 완전히 익숙지 않은 현지인들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이롬라이프의 윤승배 홍보팀장은 “현지에 맞는 마케팅 전략이 효과가 나타나 현재 베이징, 톈진, 칭다오 등 10여개 도시에 17개의 이롬라이프 지점이 개설됐고, 생식의 주요 소비층도 중국 현지인이 70%를 차지할 정도로 반응이 좋다”고 말한다.
풀무원테크측도 중국의 급속한 경제발전과 고소득층의 증가에 따라 건강용 생식에 대한 기대 수요가 높은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따라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에서 부유층을 상대로 한 고가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 풀무원테크측은 2005년까지 전 세계를 상대로 1000만 달러 수출 목표를 세우고 있는데, 이중 50% 이상은 일본과 중국시장에서 수출 결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
이 밖에도 홍콩,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 등지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시장 진출도 본격적으로 가동되고 있다. 전 아시아인을 생식으로 무장시키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고을빛생식의 이광복 대표는 “월드컵에서 꿈은 이루어진다는 표어가 있었듯 아시안들을 생식으로 묶겠다는 포부가 꿈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인다. 생식이야말로 세계적 브랜드로 자리잡은 김치에 못지않은 경쟁력 있는 식품이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생식이 세계적 식품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먼저 해결해야 할 일도 적잖다.
식품 전문가들은 생식이 김치처럼 국제식품규격(CODEX)의 승인을 얻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국제적인 규격에 맞는 표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금처럼 각 업체가 생식재료들과 용량을 자율적으로 만드는 것은 국제적 공인을 받기가 힘들다는 것. 또 하나 생식제품 수출은 세계무역기구(WTO)체제하에서 국산 친환경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정부의 체계적인 육성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드높다. 이는 친환경 농업을 하는 국내 농가를 살리는 길임과 동시에 생식을 세계 브랜드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는 것. 뒤늦게나마 지난 6월5일 한국의 대표적인 생식업체들이 생식의 세계화와 과학화를 기치로 내세워 ‘대한민국생식협의회’를 창립한 것은 생식의 세계화를 지향하는 좋은 조짐으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