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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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의 심중일언

김수영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 “비책 대신 중지를 모을 것”

출판계가 고른 구원투수 “어린 시절부터 책 경험할 복합문화공간 세우겠다”

  •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입력2018-08-07 1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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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출판진흥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출범했다. 출판은 모든 문화예술산업의 기초로 평가받음에도 정작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같은 문화산업진흥 기관 중에선 가장 막내다. 출판산업이 갈수록 위축되자 위기의식을 느낀 출판계의 요청으로 뒤늦게 결성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 내내 출판진흥원은 출판계와 사이가 좋지 못했다. 출판계가 중지를 모아 추천한 인사가 아니라 ‘낙하산 인사’가 원장으로 임명됐다며 6년 내내 보이콧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연간 80억 규모의 예산이 투입되는 세종도서 선정 심사 과정에서 정권의 눈 밖에 난 출판사의 책을 제외하는 ‘출판계 블랙리스트’ 집행기관이었다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그로 인해 이기성 2대 원장이 지난해 11월 중도 사퇴한 후 8개월째 공석이던 자리에 새 인물이 들어섰다. 7월 11일부로 3대 출판진흥원장에 임명된 김수영(53)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다. 기상 관측 111년 만에 최고 더위를 기록한 8월 1일 오후 전북 전주에 위치한 출판진흥원의 서울사무소 기능을 하는 서울 상암동 서울산업진흥원 건물 9층 출판아카데미 교육장에서 그를 만났다. 

    김 원장은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연세대에서 생화학을 전공하다 대학원은 철학과로 들어가 독일 콘스탄츠대 대학원에서 플라톤 철학으로 박사논문을 썼다. 

    “중고교생 때부터 문학과 철학을 좋아했는데, 자연과학도인 아버지의 반대가 심해 생화학과에 들어갔어요. 83학번 동기 가운데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이 있었는데, 둘이 과학 말고 다른 분야에도 관심이 많아 ‘생화학과의 이단아 2인방’으로 어울려 다녔죠. 3학년 때 철학과목을 듣다 4학년이 되면서 전공을 철학으로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버지를 설득하려고 ‘대학원 시험을 딱 한 번 보고 떨어지면 군말 없이 이공계를 계속 다니겠다’고 했는데 거짓말처럼 단번에 합격했으니 아버지도 포기했죠. 학부 때 이공계 학생치곤 술을 많이 마셨다 자부했는데, 철학과에선 한번 술을 마시면 몇박 며칠을 마시더군요.(웃음) 대학원생 때 술친구 가운데 한 명이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였습니다. 박사학위 공부를 하려고 독일 유학을 갔는데 지도교수가 너무 열정적이라 플라톤 ‘국가’의 방대한 내용이 도덕과 행복의 관계에 대한 한 가지 테마의 다양한 변주라는 텍스트 분석 논문을 쓰자고 해 논문 완성에만 6년이나 걸렸습니다.”

    불황을 넘어 고갈 수준의 출판시장

    전북 전주에 위치한 한국출판문화산업 진흥원 [사진 제공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전북 전주에 위치한 한국출판문화산업 진흥원 [사진 제공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01년 귀국해 강사 생활을 하다 출판사 문학과지성사(문지)에 들어가 편집부장, 편집주간, 대표이사를 마치고 2011년 퇴사해 로도스출판사라는 작은 출판사를 운영했다. 2014년부터는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돼 출판기획과 철학을 가르쳤다. 



    “뒤늦게 한국에 왔는데 마침 문지 쪽에 친구들이 있어 같이 어울리다 출판운동을 해보자는 차원에서 덜컥 문지에 입사하게 됐습니다. 제가 출판실무를 다지면서 커왔던 것이 아니라 처음엔 고생을 많이 했는데 직원들이 협조를 잘해줘 무난히 대표이사까지 하게 됐죠. 문지 시절 기획한 책 가운데 2개는 자랑할 만합니다. 한국문학전집과 한병철 선생의 ‘피로사회’입니다. 당시 한국문학전집 시장은 중고생 독자를 위한 염가경쟁만 이뤄지는 상황이었는데, 문지의 정체성과 맞고 상업성도 있겠다 싶어 작가 위주의 선집 작업에 뛰어들었고 아주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이광수, 김동인, 염상섭, 박태원, 채만식 등의 장편과 단편선집을 포함해 40여 권까지 나온 걸로 압니다. 한병철 선생은 당시 국내는 물론 독일에서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였는데, 제가 발굴했습니다. 책은 제가 퇴사한 후 나왔지만 큰 반향을 일으켜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이후 로도스출판사를 차리고 이헌재 전 부총리,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정수복 선생 같은 분들의 책을 내고 생명윤리를 다룬 ‘비오스 총서’ 같은 학술서도 내다 한양여대 문창과로 옮겼습니다.” 

    출판계에선 김 원장을 진정한 출판계 인사로는 첫 원장으로 인정한다. 출판진흥원에선 ‘민주적 절차로 임명된 첫 원장’이라고 부른다. 출판진흥원에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한 뒤 공모와 추천 절차를 거쳐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에서 임명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출판계가 원한 원장이란 소리다. 

    원래 출판사 지분을 소유한 사람은 출판진흥원장을 맡지 못하게 돼 있었다. 이 때문에 당초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가 자체 공모를 거쳐 추천한 출판사 대표 2명은 출판사 지분 정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4월 후보직을 사퇴했다. 재공모에 지원한 김 원장은 로도스출판사 경영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전임 원장들의 개인적 역량과 자질이 문제가 됐던 건 아니라고 봅니다. 출판계의 끈질긴 요청으로 설립된 만큼, 출판계를 잘 아는 분이 오리라 기대했는데 그렇지 못한 데 대한 실망과 불신이 더 컸다고 봐야 합니다. 민주적 절차 및 소통의 부재로 출판진흥원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출판계로부터 지지와 인정을 못 받았던 겁니다. 따라서 이번에 제가 발탁된 것은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출판계가 애써 마련한 민주적 절차를 거쳐 탄생한 원장이라는 데 방점이 찍였다고 생각합니다.” 

    ‘단군 이래 출판계가 불황이 아닌 적이 없었다.’ 출판계의 오래된 우스갯소리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최근 출판시장은 불황 수준을 넘어 시장 자체가 고갈되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영화나 방송에 슬쩍 비춘 책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휩쓰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출판시장이 아예 자생력을 잃은 게 아니냐는 자조 섞인 한탄도 나온다. 영상매체에 의존하지 않는 한 스스로 베스트셀러를 생산해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 이 때문에 김 원장에게 거는 기대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 원장의 임기는 2021년 7월 10일까지 3년에 불과하다. 출판진흥원 예산도 자체 예산과 교부 예산을 포함해 400억 원에 불과하고 인력도 1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신에겐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라고 했던 이순신의 비상한 각오라도 필요한 게 아닐까. 

    취임 이후 그의 일성은 ‘현장 중심’ ‘정책 중심’ ‘독자 중심’이란 3대 원칙의 천명이었다. 이에 대해 출판계에선 너무 추상적이고 선언적이라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왔다. 짧은 임기와 한계 속에서 이것만은 꼭 이루겠다고 세운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았다. 

    “(큰 한숨을 내쉬며) 아휴, 참 어려운 질문이네요. (한참 뜸을 들인 뒤) 출판진흥원이 설립되고 6년의 세월 동안 문체부의 예산을 받아 참 많은 일을 벌였습니다. 사업 가짓수가 수십여 개에 이릅니다. 문제는 그동안 출판계와 네트워크가 너무 취약해 여기서 집행하는 사업과 예산이 출판계의 구체적 요구와 잘 맞물리지 못했던 거죠. 원장 선정 과정의 문제로 출판계와 소원해지다 보니 면밀하고 긴밀한 소통을 통해 어떻게 하면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 정책 효과를 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고 봅니다. 제가 부임해 보니 첫 번째로 할 일은 원장이 새로 왔다고 깃발을 세우고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는 게 아닙니다. 출판진흥원의 사업 틀은 이미 다 짜인 상태라, 제가 새롭게 뭘 다시 하겠다고 예산을 추가로 요구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거든요. 그보다 현장 목소리를 더 듣고 그것들을 지금 하고 있는 사업에 잘 녹여내 사업 완성도만 끌어올려도 제게 주어진 일의 상당 부분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문학 · 교양 분야 필자 지원 강화”

    김 원장은 출판 불황, 출판유통 선진화, 도서정가제, 세종도서 선정, 출판기금 같은 출판계의 여러 문제에 대해 “답이 없어 문제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출판진흥원장이 새로 부임해 새로운 정책적 해답을 제시하고 그것에 예산이 투입되면 출판계 불황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야말로 현 출판계 불황을 너무 단순화하는 시각이라는 설명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적 이슈와 관련해 출판계에서 활발한 토론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출판진흥원장으로서 저의 첫 임무는 이런 정책적 이슈에 대해 출판계의 다양한 이견을 취합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그 에너지를 잘 모아 출판진흥원의 정책에 잘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출판진흥원장이 무슨 마술지팡이를 가진 사람도 아니잖아요.(웃음)” 

    개인적으로 그는 책의 실제 판매 부수를 투명하게 공개, 관리하는 출판유통시스템을 반드시 구축해야 하고, 도서정가제를 강화해야 하며, 세종도서사업 민간 이양에 대해 유보적이라는 등 사안별 의견을 솔직히 밝혔다. 하지만 출판계에 다양한 이견이 존재하기 때문에 합의가 도출되면 그것에 맞춰 정책을 집행해가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그는 원장 직할조직으로 ‘정책통계연구센터’를 설치하고 연구위원 4명을 임명했다. 정책 이슈별로 출판계의 합리적 토론이 가능하도록 객관적 통계와 정책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사안과 관련해서는 대부분 출판계의 중지를 좇겠다면서도 그가 유독 강조한 점은 ‘문학보다 비문학, 학술서적보다 교양서적에 대한 지원 강화’였다. 문학이나 학술출판사에서 들으면 섭섭해할 수도 있는데, 이를 강조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제가 출판사를 직접 운영해보니 문학 필자에게는 문학상, 집필실 제공 등 다양한 형태의 지원이 있지만, 비문학과 교양 분야 필자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많이 부족한 편입니다. 학술서적의 경우 주요 필자가 대부분 교수로, 이분들 역시 안정적인 직업이 있고 다양한 학술지원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문학 및 교양서적 필자에겐 인세 수입 외에는 혜택이 적습니다. 그래서 이런 분야 필자들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지원제도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한국 출판시장 규모가 줄어들면서 중견 편집자의 입지도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출판사가 그들의 높은 임금을 감당할 수 없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밀려나 1인출판사를 세우다 보니 시장 상황은 열악한데 신규 출판사가 급증하는 이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중견 편집자의 부재와 1인출판사의 급증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중견 편집자의 부재 문제는 고급 독자의 감소와 맞물려 있습니다. 높은 안목이 사라지고 편집 완성도가 떨어지면 고급 독자도 줄어듭니다. 그럼 고급 독자를 위한 고급 텍스트를 다룰 편집자가 감소하는 악순환이 벌어집니다. 그런 면에서 출판진흥원은 독서 진흥과 떨어질 수 없다고 봅니다. 독서 진흥과 관련해서는 출판계뿐 아니라 다양한 기관에서 참여하고 있습니다만, 새로 추진하려는 사업은 아이들을 위한 책 복합문화체험공간을 세우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예술 경험이 나이 들어서도 유지되듯, 아이들이 책을 직접 쓰고 만들고 오디오북과 멀티미디어도 제작해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나이 든 종이책 독자가 적은 한국 사회에서 젊은 전자책 독자들을 겨냥해야 한다고 하지만, 각종 조사에서 보듯 종이책과 전자책 독자는 어차피 같이 갑니다. 그보다는 그동안 책을 숙제나 독후감 쓰기 같은 엄숙한 과제로 대하던 문화에서 벗어나, 친근하고 편하며 유쾌한 경험으로서 독서체험을 확산하는 장기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배경이 주로 학계와 출판계라는 점에서 행정가로서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예산 확보나 정책 입안을 위해선 문체부 공무원은 물론, 예산 배정 권한을 가진 기획재정부도 설득해야 하고 국회를 상대로 한 로비 능력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진흥원을 잘 이용해달라”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제가 출판사만 운영했다면 출판진흥원장 공모에 응하지 않았을 겁니다. 학교에 들어간 이후 비로소 정부가 예산을 어떻게 집행하고 그 예산이 개별 학교 교육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개별 출판사 사장의 눈으로는 정부 예산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안 보입니다. 기껏해야 우수학술도서, 우수교양도서를 구매한다는 정도겠죠. 그런데 학교에 들어가 다양한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예산이 작동하는 구조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민간의 요구와 관의 예산을 중간에서 매개하는 진흥기구, 이런 3자 체제로 모든 사업이 이뤄집니다. 진흥기구의 책임자는 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알면서 정부 요처에 이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공모에 응한 겁니다. 예산 확보와 정책 입안을 위해 열심히 발로 뛰어야 하는 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럴 의지로 똘똘 무장돼 있습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정상화와 절차, 소통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고, 출판계와 소통해 출판진흥원을 정상화하며, 출판계와 정부 사이에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본인의 임무라는 자의식의 반영이었다. 마지막으로 출판진흥원장으로서 출판계 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입장이지만 반대로 출판계에 부탁하고 싶은 게 뭔지가 궁금했다. 

    “정부 측에 과학적이고 강력하며 일관된 목소리가 전달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출판진흥원이 빨리 제자리를 찾아야 하고, 출판계 내부에서 다양한 이견에 대한 토론이 더 활성화돼야 합니다. 그렇게 논의된 내용이 출판진흥원을 통해 정부에 전달되고 또 정부의 의지가 출판진흥원을 통해 잘 흘러가 건강한 출판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출판계도, 정부도 출판진흥원을 잘 활용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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