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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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호 독설 빈자리 실력으로 빵빵하게 채워야죠

개그맨 윤형빈 “친근한 MC가 꿈, 차근차근 이뤄갈 것”

  • 이설 기자 snow@donga.com

    입력2011-01-10 13: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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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비호 독설 빈자리 실력으로 빵빵하게 채워야죠
    듣던 대로 반듯했다. 90도 각도의 허리 인사와 연방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자세, 그리고 차분한 말본새까지. 쫄티와 귀여운 허벅지를 드러내고 아픈 곳을 후벼 파는 ‘왕비호’는 온데간데없었다. 1월 2일을 마지막으로 시청자 곁을 떠난 KBS2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왕비호’. 개그맨 윤형빈(31)은 분신이나 다름없던 왕비호와 이별의식을 치르는 중이다.

    비호야,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

    “꼬박 2년 8개월을 왕비호와 함께했어요. 왕비호 덕분에 윤형빈 이름 석 자를 알렸고, 제가 원하던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할 수 있었죠. 비호야, 고마웠다!”

    왕비호는 왕비호감의 준말. 윤형빈은 이 코너에서 인기 연예인의 약점을 꼬집는 독설 개그로 인기를 끌었다. ‘멋있다’ ‘예쁘다’ ‘팬이다’ 소리를 들으며 어딜 가나 대우받던 스타들의 굴욕에 시청자들은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독설을 소재로 한 만큼 말도, 탈도 많았다. 걸그룹 포미닛의 현아는 “원더걸스에서 탈퇴했는데 이번에도 탈퇴해라”는 말에 끝내 눈물을 보였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소녀시대 멤버들에게 “학교는 제대로 가니”라는 멘트를 날려 팬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독설로 상처받는 분들께 너무너무 죄송하죠. 인터뷰에서 언급하는 것도 죄송스러워요. 이렇게 회자되면 본인들이 더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왕비호 이전에 방송계 독설 역사를 쓴 이는 개그맨 김구라와 DJ DOC의 정재용. 김구라는 인터넷 방송에서, 정재용은 케이블 방송에서 독한 멘트를 쏟아냈다. 그 트렌드를 이어받아 고안한 코너가 왕비호. 하지만 따끔하되 독설 대상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소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안티 카페에서 소재를 얻되 상처가 될 만한 부분은 삼갔어요. 왕비호는 그저 연예인의 단점을 헤집으려는 의도로 만든 코너가 아니에요. 독설이지만 대중이 몰랐던 부분을 조명해 당사자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습니다. 독하게 웃겨서 방송이 나간 뒤 검색 순위에 이름이 오르면 성공인 거죠.”

    “훈훈한 마무리가 힘 빠진다” “연예인 홍보용이다” 등 후반부로 가면서 ‘맹물 같은 독설’이라는 지적이 날아들었다. 실제 코너가 인기를 끌면서 제작진에게 청탁이 밀려들기도 했다. 따끔한 지적에 마음 아팠지만 겸허히 받아들이려 애썼다. 윤형빈은 그 덕에 왕비호가 장수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프로그램 인기가 식은 건 아니다. 최근까지 왕비호는 개콘의 마지막을 당당하게 장식했다. 잘나가던 왕비호 코너 폐지 결심은 힘든 과정이었을 터. 그 이유와 시기를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온다. 2년 전부터 고민하기 시작한 오랜 숙제라는 것.

    “개콘에서 조력자 역할을 주로 했어요. 앞에 나서서 웃기는 사람보다 배경처럼 주인공을 뒷받침하는 역할요. 그러다 왕비호로 주목받게 됐죠. 좋기도 했지만 거기에 안주할까봐 늘 걱정이었어요. 코너를 한 지 반년쯤 지나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죠. 지루하다는 시청자 반응도 있었고요.”

    왕비호 코너는 그의 인생에 많은 것을 안겼다. 우선 예능 프로그램 출연. 개그맨들의 영역은 점차 확장되는 추세다. 개그 프로그램에 주력하는 사람, 예능에 치중하는 사람, MC로 성장하는 사람 등 각자의 개성에 맞게 진로를 고민한다. 그는 일찌감치 예능 MC를 목표로 삼았다. 대학시절 이벤트 MC를 보며 “이거다” 싶었고, 선배 MC들을 보며 꿈을 키웠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그를 불러주지 않았다.

    “인지도가 약해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 요청이 오지 않았어요. 하지만 왕비호 이후 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했죠. KBS2 ‘해피선데이’의 ‘남자의 자격’(이하 남격)에는 고정출연까지 하게 됐고요.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진 겁니다.”

    연예인 친구도 상당수 얻었다. 가수 김희철과 김장훈이 욕하면서 형·동생 사이가 된 연예인. 김희철은 특히 왕비호 코너에 한 획을 그었다. 개콘 팬이던 그가 개콘 방청석에서 독설세례를 받는 모습에 환호하던 방청객들을 보고 해당 연예인을 직접 초대해 독설을 날리자는 아이디어가 나온 것. 김장훈은 방송에서 주고받을 대화를 준비하면서 친분을 다졌다.

    송해처럼 친근한 MC가 꿈이라는 윤형빈. 하지만 현재로서 MC 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지난 10년간 MC로 자리를 굳힌 개그맨은 이경규, 강호동, 지석진, 남희석, 유재석, 신동엽 정도. 숱한 개그맨이 데뷔했지만 종합예술의 종결판인 MC로 인정받은 이는 열 손가락에 꼽힌다. 윤형빈도 그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조급증을 잠재우고 훗날을 위해 발톱을 가는 중이다.

    “다른 사람의 특성을 파악해 그들의 능력을 끌어내는 역할은 잘하는 편이에요. 반면 제 스스로 크게 웃기는 캐릭터는 아니죠.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죠. 책도 읽고 경험도 다양하게 하고요. 저희 일은 노력이 바로 결과로 이어지지 않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내공이 쌓일 거라 믿습니다. 하하.”

    “이경규 어록 정리하는 중”

    왕비호 독설 빈자리 실력으로 빵빵하게 채워야죠
    남격은 왕비호가 아닌 자연인 윤형빈을 선보인 무대. 대본 없이 일상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하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됐다. 짙은 화장과 쫄티를 벗어던진 멀쩡한 왕비호를 시청자들은 낯설어했다. 본인도 방송과 일상 중간 지점에서 캐릭터를 잡는 데 애를 먹었다. 그럴 때마다 맏형 격인 이경규가 “편안하게 해라. 더 잘할 수 있다”라며 조언과 질책을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형제 같은 선후배가 생겨 기쁘다. 남격 멤버는 이경규, 김국진, 김태원, 이윤석, 이정진. 그중 이경규, 이윤석과는 ‘일주일에 8일’ 만난 적이 있을 정도로 친분이 두텁다. 소속사도 이경규가 대표로 있는 곳으로 바꿨다. 그는 개콘 동료 외에 이렇게 끈끈한 인연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닮고 싶은 MC 모델도 이경규. 이경규의 취중 한마디 한마디를 받아 적을 정도로 존경을 보낸다. 아이폰에 기록한 ‘이경규 어록’을 보여주며 그가 말을 잇는다.

    “이경규 선배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대단해요. 세상사를 꿰뚫는 시각도 놀랍고요. 아이처럼 장난치거나 삐치다가도 공자, 맹자 같은 말씀을 툭하고 던지죠. 수개월간 그 말을 적어뒀는데, 시간이 지나면 윤석이 형과 함께 책으로 펴낼 계획입니다.”

    윤형빈은 개그계의 이승기다. 성실하고 예의 바르며 일탈과 거리가 멀다. 그리고 늘 무언가를 하고 있다. 동료들과 놀다가 느닷없이 공연 준비를 하는가 하면, 록밴드를 이끌며 하나 둘 꾸준히 낸 음반이 무려 6장이다. 여자친구인 개그우먼 정경미는 그에게 “일을 벌이는 과정이 오빠(윤형빈)에게는 놀이 같다”라며 일침을 날렸다고 한다.

    “코너 폐지 후 내심 기대했어요. 그간 쉬는 날 없이 일했는데, 다소 여유가 생길까 해서요. 한데 여전히 바빠요. 제가 사부작사부작, 끊임없이 뭔가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여자친구가 ‘왜 놀지 않느냐’고 내심 서운해하는데, 저는 일하는 동안 제일 신나고 즐거운 걸 어쩌겠어요. 하하.”

    지나치게 멀쩡해서 옆집 오빠 같은 윤형빈. 대학(명지대 이공계) 후배이자 개그계 선배인 오지헌처럼 외모가 특출(?)나지도 않고, 이경규나 박명수처럼 능청스러운 개그 한 방도 없다. 그럼에도 그는 최고의 MC로 시청자 곁을 찾을 것이다. 듣는 귀와 열린 마음으로 늘 대중이 원하는 개그를 고민하는 까닭이다. “빠르면 1, 2주 안에 새로운 코너로 개콘 무대에 설 예정입니다. 캐릭터는 비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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