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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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이 홀랑 벗겨져야 진짜 찐빵이지

찐빵의 조건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입력2011-01-10 14: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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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껍질이 홀랑 벗겨져야 진짜 찐빵이지
    간혹 음식 이름에서 그것을 먹는 사람들의 욕구가 발견될 때가 있다. 재료와 조리법에 따르면, 원래는 달리 불러야 하는 음식이 그렇다. 일례가 찐빵. 변칙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빵과 떡은 곡물 가루를 반죽해 굽는가, 아니면 찌는가에 따라 나뉜다. 쉽게 말해 구우면 빵이고 찌면 떡이다.

    화덕을 주로 쓰는 서양은 빵을, 시루가 흔했던 한국과 일부 아시아 국가는 떡을 주로 먹었다. 그런데 찐빵이라는 이름은 아주 묘하다. 밀가루 반죽에 팥소를 넣고 찌는 것이니 빵이 아니다. 떡이다. 이와 비슷한 우리 음식으로 쌀가루를 막걸리로 발효해 찌는 것이 있는데, 이를 기정떡, 술떡, 증편 등으로 부른다. 왜 찐빵은 떡이 아니라 찐빵이라 하게 됐을까.

    국내에서는 찐빵과 만두를 전혀 다른 음식인 듯 여기지만, 중국과 일본에선 찐빵을 만두의 일종으로 보며 이름도 만두 계열이다. 중국에선 만두를 바오쯔(包子)라 하는데 팥소가 들어간 바오쯔는 더우바오쯔(豆包子) 등으로 부른다. 일본에서는 일본 발음으로 안만(饅)이라 한다. ‘안’은 팥과 콩 등으로 만든 소, 즉 ‘앙꼬’이며 ‘饅’은 만두다. 그러니까 팥소만두로 해석할 수 있다. 왜 우리는 찐빵을 팥소만두라 하지 않았을까.

    밀가루는 조선시대까지 귀한 식재료였다. 밀가루 음식은 일제 강점기에 잠시 맛을 보았고 6·25전쟁 이후 미국의 원조물자로 인해 대중화됐다. 그러나 싼 밀가루가 있다고 모든 밀가루 음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밀가루 음식은 수제비와 칼국수 정도가 전부였다. 국물에 얇게 민 밀가루 반죽을 칼로 썰거나 손으로 뜯어서 넣었다. 당시 우리 부엌의 빈약한 조리 기구로 이 이상의 음식을 어찌 만들어 먹을 수 있었겠는가.

    밀가루 음식의 정점에 있는 것이 빵이다. 그 시절, 이스트와 버터 등이 밀가루에 어우러져 화덕에서 구워질 때 그 고소함은 정말로 황홀했다. 빵집 한 곳에서 나는 냄새가 온 동네의 공기를 ‘오염’시킬 정도였다. 그런데 이 빵집은 귀하고 귀했다. 조리 기술도 없었고 조리 도구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빵은 비쌌다. 빵은 ‘있는 집 자제’나 먹는 고급 음식이었다. 서민은 팥소만두 정도에 만족해야 했는데, 이게 빵과 비슷한 모양이니 누군가가 이를 찐빵이라 부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찐빵이라는 이름에는 빵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찐빵 속 팥소처럼 틀어박혀 있는 것이다.



    겨울이면 찐빵은 여전히 우리 서민들을 위해 길거리에서 김을 모락모락 피운다. 그런데 고소한 고급 빵의 대체품이었던 서민들의 저렴한 찐빵이, 우리의 겨울 벗이었던 찐빵이 우리의 기대를 슬쩍슬쩍 배반한다. 찐빵 맛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이다. 기계에서 대량으로 만든 찐빵이 손으로 일일이 빚은 것처럼 팔린다. 마냥 단 팥소와 마분지 씹는 듯한 식감의 ‘빵’이 예사다. 찐빵이 서민의 것이었다 해도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본디의 맛을 잃어버리게 된다.

    다음은 내가 생각하는 맛있는 찐빵의 조건이다. 우선 찐빵의 겉을 잡아당기면 껍질이 ‘쭈~욱’ 일어나야 한다. 찐빵은 밀가루 반죽을 하고 나서 1차 숙성을 거치고, 다시 팥소를 넣고 2차 숙성을 해야 한다. 2차 숙성 때는 온도가 높아야 하지만 습도까지 높으면 좋지 않다. 반죽의 겉면이 말라야 하기 때문이다. 선풍기를 돌려 겉을 말리는 것이 요령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쪄내면 껍질이 잘 일어난다. 잘 숙성된 것은 껍질이 말끔하게 홀라당 벗겨진다. 찐빵 맛 좀 안다는 사람들은 이 껍질부터 먹는다.

    단팥은 대부분 중국산으로, 사람들이 많이 속는다. 대두(메주콩)에 팥을 조금 넣고 색소와 향을 더한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호두과자 팥소를 기억하는가. 질척하고 달기만 한 그것. 그게 가짜 팥소다. 게다가 아주 단 것은 팥의 향이 없으니 단맛으로만 맛있다고 여기게 하는 것이다. 팥소를 직접 만든다 해도 공장 팥가루를 쓰면 고운 입자 때문에 식감이 좋지 않다. 팥의 알갱이가 일부 살아 있는 듯하면서도 껍질이 주는 이물감이 없는, 약간 퍽퍽하다 싶은 것이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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