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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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열망 호세프 ‘뉴 브라질’ 희망 드라이브

브라질 첫 여성 대통령에 취임…한국에 상당한 호감 양국 발전 새 전기 될 듯

  • 상파울루=김재순 연합뉴스 특파원 fidelis21c@yna.co.kr

    입력2011-01-10 12: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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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월 1일 취임한 브라질 40대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는 ‘새로운 브라질 건설’을 기치로 내걸었다. 대통령궁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에게서 대통령 휘장을 건네받은 뒤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룰라 전 대통령이 이뤄놓은 성과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며 빈곤과 기아 퇴치, 정치개혁, 교육과학 기술 투자 확대를 통한 지속성장, 여성의 지위 향상 등을 위해 노력해 더 많은 국민이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호세프는 1889년 공화정이 수립된 이래 처음으로 등장한 여성 대통령이다. 브라질에서 21년간 지속된 군사독재정권이 끝나고 1985년 민주주의가 회복된 이후 네 번째로 선출된 대통령이며, 남미 지역에서 미첼레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과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 탄생한 선출직 여성 정상이다. 브라질과 세계 언론은 군사독재정권 시절 반정부 투쟁을 벌였던 전력을 들어 호세프를 잔 다르크에서 남미 대국 브라질을 이끌어갈 대통령으로 변신한 인물로 표현했다. 호세프의 취임은 혁명에 비유된다. 남성 우월주의 전통이 강한 브라질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고 뜻을 이뤘기 때문.

    룰라, 든든한 후견인이자 넘어야 할 산

    룰라 전 대통령은 90%에 육박하는 경이로운 지지율 속에서 8년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후계자를 자처하는 호세프는 룰라가 이룬 ‘다른 브라질’을 명실상부한 강대국으로 거듭나게 할 의무를 지고 있다. 룰라와 마찬가지로 호세프 역시 10여 개 정당과의 정책연합을 통해 국정을 운영하게 된다. 대선과 동시에 실시된 총선 결과 연방상원 81석 중 최소한 57석, 연방하원 513석 중 최소한 360석을 정책연합 관계에 있는 정당들이 차지하면서 호세프는 의회에 탄탄한 기반을 갖췄다. 전국 27명의 주지사 중 17명이 친여 인사로 분류된다는 것도 유리한 점이다.

    호세프 대통령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에 견줘 ‘브라질의 대처’로 불린다. 강한 여성 정치인의 이미지에서 온 말이다. 그러나 지난해 대선 출마와 함께 호세프는 과감한 친(親)서민 행보를 보였다. 머리 스타일부터 복장, 행동에 이르기까지 이웃집 아줌마 같은 모습으로 유권자들에게 다가섰다. 호세프는 1947년 12월 14일 브라질 남동부 미나스제라이스 주 벨로 오리존테에서 불가리아계 이민자 후손 가정의 1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올해로 63세다. 브라질 최남부 리우그란데 도술 주 포르토 알레그레 시 소재 연방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상파울루 주 소재 캄피나스 대학(Unicamp)에서 경제통화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 포르토 알레그레 시에서 민주노동당(PDT) 창당에 참여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2001년 노동자당(PT)에 입당해 전 대통령인 룰라와 인연을 맺은 호세프는 2003년 1월 룰라 정부 출범과 함께 연방 에너지장관에 임명됐으며, 2005년 6월에는 수석장관에 기용돼 5년 가까이 재직하다 대선 출마를 위해 2010년 3월 31일 사임했다. 호세프 대통령은 두 차례 결혼했으나 현재는 혼자 살며, 자녀로는 외동딸 파울라 호세프 아라우조(34)를 두었다. 대선 유세기간 파울라의 출산으로 손자를 안아보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 전문가들은 호세프가 룰라만큼 강한 카리스마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 집권 노동자당에 대한 장악력이 떨어질 것으로 본다. 퇴임 이후에도 룰라의 영향력을 배제하기는 어려우며, 이런 상황을 잘 아는 호세프는 룰라를 일종의 후견인으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취임사에서 “룰라는 늘 우리와 함께할 것”이라고 말한 점도 이를 짐작게 한다.

    호세프가 정치력보다는 정책으로 승부를 걸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호세프는 룰라 정부에서 핵심 각료인 에너지장관과 수석장관을 역임했다. 수석장관은 정부 주요 정책을 관장하는 자리로 브라질 정부가 추진하는 대형 국책사업을 총괄한다. 호세프는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 경제는 2003년부터 2010년 동안 연평균 5%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했다. 2009년에는 세계 경제위기 여파로 -0.6% 성장률을 나타냈으나, 2010년은 7.5~8%의 고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브라질 경제는 룰라 정부에서 탄탄한 성장 기반을 갖췄다. 호세프는 이를 견고한 성장궤도로 진입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물론 2003년 초 룰라 집권 때와 비교하면 호세프는 상당히 유리한 출발점에 서 있다. 룰라가 집권했을 당시 브라질 경제는 헤알화 가치 폭락과 국가위험도 폭등으로 국가 부도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었다.

    ‘남남(南南) 외교’ 강화, 친미파 대통령

    하지만 브라질은 2010년 중반을 기점으로 세계 7대 외환보유국으로 부상했으며 외환보유액은 2880억 달러를 넘었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8위로 올라섰고, 2011년에는 7위로 부상할 전망이다. 대서양 연안에서 발견된 심해유전의 개발과 바이오에너지 생산, 곡물 수확량 증가, 그리고 2014년 브라질월드컵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하계올림픽 개최는 브라질 경제를 또 한 번 도약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고용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업률이 6%대 초반에 머물면서 200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렇다고 호세프의 앞날에 장밋빛만이 드리운 것은 아니다. 룰라 정부 때 잠복해 있던 문제가 잇따라 분출하면서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호세프가 직면할 주요 과제로는 소득분배, 교육, 치안이 꼽힌다. 브라질의 경제 규모는 세계 8위지만 1인당 소득은 72위에 머물고 있다. 아르헨티나(50위), 멕시코(53위), 터키(57위), 베네수엘라(66위), 이란(68위) 등에도 뒤진다.

    전반적인 교육 수준이 떨어진다는 점이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57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육 수준 평가에서 브라질은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치안 문제는 2014년 월드컵, 2016년 하계올림픽을 치르거나 준비해야 할 호세프 정부에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안길 수 있다. 기준금리 인하 유도, 인플레율 상승압력 해소, 헤알화 환율방어, 재정건전화 도모, 극빈층 완전 해소, 조세제도 개혁 등 난제가 적지 않다.

    룰라는 세계의 변방에 머물던 브라질을 국제무대의 전면에 올려놓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 룰라가 추구한 외교의 글로벌화는 ‘적극적이고 당당한 외교’였다. 호세프는 룰라의 외교 노선을 충실히 이어가겠다는 생각이다. 이른바 ‘남남(南南) 외교’를 통해 중남미, 아프리카, 중동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러시아, 인도, 중국에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가세한 브릭스(BRICs)의 일원으로 국제 현안에 목소리를 높이겠다는 것. G20(주요 20개국)에서 주도적인 플레이어 노릇을 하고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유엔 등 국제기구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더욱 강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호세프 외교의 포인트를 남미 우선, 대(對)중국 관계 심화,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 확대로 꼽고 있다. 또 냉랭했던 미국과의 관계도 상당히 호전될 것으로 기대한다. 호세프는 대선 승리 이후 이란 인권 문제에 대해 강성 발언을 계속했고,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이뤄진 이란에 대한 인권결의안 표결에서 브라질이 기권한 것과 관련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또 워싱턴 주재 대사를 역임한 친미(親美) 성향의 안토니오 파트리오타를 외교장관에 기용하고, 외국 언론과의 첫 회견을 ‘워싱턴포스트’(WP)와 가졌다. 이런 점은 미국 정부의 호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미국 정부도 브라질과의 관계 개선을 탐색하고 나섰다. 호세프 취임식에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직접 참석했고, 호세프는 올해 안에 미국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의 브라질 방문도 기대되고 있다.

    그렇다면 호세프 정부 출범은 한-브라질 관계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대체적으로 양국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호세프가 에너지장관과 수석장관 시절부터 우리나라에 상당한 호감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 2010년 11월 서울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는 룰라와 호세프가 나란히 참석하기도 했다.

    양국은 최근 브라질의 고속철 건설 사업과 대서양 연안 심해유전 개발 등을 둘러싸고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사업비가 200억 달러에 이르는 고속철 사업은 우리나라 철도기술의 해외진출 확대를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최대 1000억 배럴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심해유전은 우리 조선업계의 수주 갈증을 해소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과 브라질 모두 대표적인 성장국가로 분류된다는 점은 앞으로 통상, 투자 기회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1959년 수교 이후 우리나라와 브라질의 교역은 50년 만에 무려 1만9000배 가까이 늘어나면서 100억 달러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브라질은 현재 우리의 16번째 수출대상국이자 7번째 수입대상국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브라질 정부의 적극적인 외국인 투자유치 확대 정책으로 우리의 브라질에 대한 투자는 현재 13억 달러에 달한다. 자동차, 에너지, 인프라 등이 유망 투자 분야로 꼽힌다. 또 브라질은 남미 공동시장의 거점국가이자 녹색시장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대한 브라질의 투자는 거의 없지만, 브라질 기업의 글로벌화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기대감을 가져도 좋다.

    롤 모델은 바첼레트 대통령

    브라질 일간지 ‘폴라 데 상파울루’는 최근 호세프가 칠레의 첫 여성 대통령이었던 미첼레 바첼레트(2006~2010년 집권)의 자서전 ‘남성들의 땅에 선 바첼레트’를 탐독하고 있다고 보도해 관심을 끌었다. 호세프와 바첼레트는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두 사람은 같은 중도좌파 성향의 정치인이고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바첼레트는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전 대통령 정부(1973~1990년) 시절 고문으로 부친을 잃었으며, 자신도 체포돼 고문을 받았고 망명생활까지 했다. 호세프도 브라질 군사독재정권(1964~1985년) 시절 반정부 투쟁을 하다 1970년 체포돼 3년간 수감생활을 하며 고문을 당했다.

    바첼레트는 리카르도 라고스 전 대통령 정부(2000~2006년 집권)에서 보건장관과 국방장관을 지냈다. 칠레는 물론 남미 지역에서 여성이 국방장관을 맡은 것은 바첼레트가 처음이었다. 국방장관 재임 당시 집중호우로 대규모 홍수 피해가 발생하자 바첼레트가 탱크에 올라가 이재민 구호작업을 지휘한 장면은 칠레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호세프는 룰라 정부에서 에너지장관과 수석장관을 역임하면서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문 행정 경험을 쌓았다.

    바첼레트는 2005년 말 대선에 출마했고, 이듬해 1월 실시된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해 칠레 사상 첫 여성 대통령으로 등장했다. 바첼레트는 새 정부 각료 20명을 남성 10명, 여성 10명으로 구성한 ‘남녀동수 내각’을 출범해 화제를 모았다. 바첼레트는 안정적인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 속에서 87%라는 높은 지지율로 임기를 마쳤으며, 칠레 국민은 바첼레트에게 2014년 말 대선 출마를 주문했다.

    호세프는 에너지장관과 수석장관 재임 시 브라질 정부가 추진한 대형 국책사업을 진두지휘하며 룰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이를 통해 ‘룰라의 후계자’로 떠올랐다. 새 정부에 여성 각료를 대거 기용한 점도 바첼레트와 닮았다. 인물난으로 각료 37명 중 30%를 여성으로 채우겠다는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룰라 정부 때의 3명보다 3배나 많은 9명의 여성을 각료로 기용했다. 호세프는 바첼레트와 마찬가지로 높은 지지율로 4년 임기를 마치고 2014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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