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 세 번째 작품을 준비 중인 이무영 감독의 논현동 사무실에 갔다가, ‘짝패’ 촬영에 들어가는 류승완 감독, ‘친절한 금자씨’를 끝낸 이춘영 프로듀서 등과 점심을 먹고 잡담을 나누었다(우리는 매우 유용한 정보교환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잡담이다). 그때 나는 류 감독에게서 처음으로 ‘여고괴담 4: 목소리’의 최익환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류 감독에 따르면, 최 감독은 영화 테크놀로지에 관한 한 박사다. 스태프들보다 기술적인 면을 더 잘 알고 있어서 그와 작업하면 스태프들이 초긴장한다고 했다. 영화 하는 사람들이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이들이고, 허구의 인물과 사건을 사실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직업이기 때문에, 10을 100으로 이야기하는 데 천재적인 재주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류 감독은 구체적인 실례들을 들어가며 최 감독의 능력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인터뷰는 그때의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 며칠 뒤 시사회에서 본 ‘여고괴담 4: 목소리’의 영화적 완성도가 높지 않았다면 나는 굳이 그를 만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고괴담’은 오랫동안 잊혀져왔던 한국 공포영화를 부활시켰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속편의 감독들은 시리즈의 기본 컨셉트를 유지하면서도 색다른 공포를 창출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출발한다. 최 감독의 ‘여고괴담4: 목소리’는 풀어헤친 머리카락, 피 흘리는 입으로 상징되는 귀신의 비주얼에 의존하지 않는다. 제목에서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듯이, 공포의 핵심은 소리다. 억압적 교육(1편), 동성애(2편), 왕따(3편) 등의 핵심 주제와는 다르게, 질투라는 가장 보편적 주제를 끄집어내어 다시 청각적으로 극대화한다. 어느 순간 깜짝 놀라는 찰나적 공포가 아니라, 서서히 관객들의 정서를 사로잡으며 등장인물들의 아픔이 내면에 스며들 수 있도록 슬픈 공포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누구에 의해 왜 죽었는지, 귀신이 자신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과정을 통해 정체성과 마주하도록 구성한 연출은 매우 특별하다.
“남들과 똑같이 하고 싶지 않았다. 무섭게 만들어야 하는 장면이 시나리오에 있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인사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만난 최 감독은, 투명한 안경 속에 총기가 번쩍이는 눈을 갖고 있었다. 재기 있는 선비처럼 보였지만 그 속에는 호기심 많은 장난꾸러기의 모습도 숨겨져 있었다. 그는 서울대 언어학과 89학번이고, 영화아카데미 11기 출신이다. 그러나 영화 마니아는 아니었다. 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를 공짜로 가르쳐준다는 말을 듣고 시험을 봤고, 영어 성적이 좋아서 입학한 것뿐인데 이후 굉장히 많은 자극을 받았다. ‘살인의 추억’의 봉준환 감독,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이 그와 아카데미 동기생이다. ‘여고괴담’ 1편의 조감독 등을 하면서 충무로 시스템을 익혔고, 그 속에 주저앉기보다는 다른 것을 하고 싶어서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실험영화를 공부했다.
최 감독이 영화 테크놀로지에 대한 뛰어난 식견이 있다는 소문을 전하자, 그는 “새로운 시각적 효과나 영화적 장치들이 등장하면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었을까 궁금증이 발동한다. 그 궁금증을 파고 또 파다 보니 아무래도 정보량이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테크닉에 대한 관심은 유학 가기 전 박기용 감독의 ‘모텔 선인장’ 스태프로 일할 때 크리스토퍼 도일 촬영감독을 만나면서 생기기 시작했다. 왕자웨이 감독 영화의 촬영감독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그의 뛰어난 카메라 테크닉은 두 가지 정도의 다른 정보를 섞어서 비트니까 마술이 된 것이란다.
그러나 ‘여고괴담 4: 목소리’는 실험영화가 아니다. 그는 ‘대중이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라는 대전제 아래 사운드를 디자인하고 새로운 촬영을 시도했다. 공포영화도 드라마가 있어야 재미있는데, 모든 테크닉들이 드라마와 분리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실험은 기술적인 것이 아니다. 새로운 감각이다. 이거 느낌이 다르네, 하는 것들이다. 여고라는 공간을 다른 느낌으로 바꿔버렸을 때의 감각적 충격을 보여주고 싶었다.”
‘여고괴담 4’의 순제작비는 20억원. 2004년 크리스마스 이튿날부터 찍기 시작해서 올 3월 중순까지 총 48회 촬영으로 마무리를 했다.
“예산이 적다는 것은 장점이다. 흥행에 대한 부담감이 없지는 않지만 예산이 많이 들어간 영화에 비해서 덜하다. 그래서 오히려 새로운 시도를 여러 가지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화의 중심이 귀신이다 보니 예산 문제와 매우 밀접히 결부돼 있다. 후반으로 갈수록 규모가 더 커져야 하지만 고민만 많이 하다가 결국 절제를 했다.”
완성된 작품은 기존의 ‘여고괴담’ 시리즈와는 많이 다르다. 그래서 ‘여고괴담’이 아니라 ‘목소리’라는 제목으로 해도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여고괴담 1·2·3과는 다르게 만들려는 반작용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시리즈 안에 안착해 있다는 느낌이 더 많이 든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 영화는 완전히 미스터리 구조도 아니고 드라마도 아닌 부분이 있다. 미스터리라면 그것이 풀리는 지점에서 영화가 끝나야 하는데, 깔끔한 영화적 종결은 만들 수 있었지만 그 이후의 주인공에 대한 삶이 궁금했다.”
‘여고괴담’ 시리즈는 일관되게 신인 여배우들의 등용문 구실을 하고 있는데, 네 번째 시리즈에서도 김옥빈 서지혜 차예련 등 아직은 낯선 이름의 신인들이 훌륭하게 신고식을 치렀다. 올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옥빈은 네이버의 얼짱 출신이다. 최 감독은 신인 배우들 오디션을 할 때, 대사를 하며 감정을 쏟아내는 배우를 보지 않고 그 상대편에 있는 배우를 보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배우를 캐스팅했다.
‘여고괴담 4’는 섬세하고 깔끔하다. 그러나 공포가 후반으로 갈수록 확산되지는 않는다. 영화의 초점이 공포의 확산에 있는 게 아니라, 귀신이 된 영언의 자기 정체성 확보에 있기 때문이다.
“내 성격 때문이다. 어느 한곳에 매몰되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다. 우물 속에 풍덩 들어가서 푹 젖었다 나와야 하는데, 그런 깊이가 없다. 액션도, 공포도 마찬가지다.”
귀신이 된 영언은 자신의 단짝친구인 선민에게서 자기를 생각하는 마음이 줄어들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선민에게는 영언에 대한 그리움도 있지만 동시에 무서움도 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영언의 목소리는 희미해진다.
“나중에는 영언의 목소리가 시각화되기도 한다. 전구가 틱틱거리면서 이야기한다. 영상은 사운드를 받쳐주는 구실을 하고 있다. 조용한 가운데, 예측하지 못한 소리가 갑자기 들렸을 때 그것이 공포가 되기도 한다.”
영화가 귀신의 시점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허용되는 것 중 하나가 영언이 과거를 경험하는 순간이다. 또 학교라는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귀신의 설정은 오히려 다른 공간으로의 일탈 욕망을 훨씬 강하게 만들 수도 있다.
최 감독의 다음 영화는 3명의 고등학교 친구가 30대 초반까지 변해가는 모습을 다룰 예정이다. CJ에서 제작하는 HD 장편 프로젝트의 하나로 기획되는 작품인데, 기본적으로 코미디지만 애니메이션 리터치를 사용해서 실험을 하려고 한다.
“나는 새로운 도전을 굉장히 좋아한다. 어떤 형태의 도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혹은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부분에서 실험은 계속할 것이다.”
류 감독에 따르면, 최 감독은 영화 테크놀로지에 관한 한 박사다. 스태프들보다 기술적인 면을 더 잘 알고 있어서 그와 작업하면 스태프들이 초긴장한다고 했다. 영화 하는 사람들이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이들이고, 허구의 인물과 사건을 사실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직업이기 때문에, 10을 100으로 이야기하는 데 천재적인 재주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류 감독은 구체적인 실례들을 들어가며 최 감독의 능력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인터뷰는 그때의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 며칠 뒤 시사회에서 본 ‘여고괴담 4: 목소리’의 영화적 완성도가 높지 않았다면 나는 굳이 그를 만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고괴담’은 오랫동안 잊혀져왔던 한국 공포영화를 부활시켰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속편의 감독들은 시리즈의 기본 컨셉트를 유지하면서도 색다른 공포를 창출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출발한다. 최 감독의 ‘여고괴담4: 목소리’는 풀어헤친 머리카락, 피 흘리는 입으로 상징되는 귀신의 비주얼에 의존하지 않는다. 제목에서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듯이, 공포의 핵심은 소리다. 억압적 교육(1편), 동성애(2편), 왕따(3편) 등의 핵심 주제와는 다르게, 질투라는 가장 보편적 주제를 끄집어내어 다시 청각적으로 극대화한다. 어느 순간 깜짝 놀라는 찰나적 공포가 아니라, 서서히 관객들의 정서를 사로잡으며 등장인물들의 아픔이 내면에 스며들 수 있도록 슬픈 공포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누구에 의해 왜 죽었는지, 귀신이 자신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과정을 통해 정체성과 마주하도록 구성한 연출은 매우 특별하다.
“남들과 똑같이 하고 싶지 않았다. 무섭게 만들어야 하는 장면이 시나리오에 있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인사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만난 최 감독은, 투명한 안경 속에 총기가 번쩍이는 눈을 갖고 있었다. 재기 있는 선비처럼 보였지만 그 속에는 호기심 많은 장난꾸러기의 모습도 숨겨져 있었다. 그는 서울대 언어학과 89학번이고, 영화아카데미 11기 출신이다. 그러나 영화 마니아는 아니었다. 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를 공짜로 가르쳐준다는 말을 듣고 시험을 봤고, 영어 성적이 좋아서 입학한 것뿐인데 이후 굉장히 많은 자극을 받았다. ‘살인의 추억’의 봉준환 감독,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이 그와 아카데미 동기생이다. ‘여고괴담’ 1편의 조감독 등을 하면서 충무로 시스템을 익혔고, 그 속에 주저앉기보다는 다른 것을 하고 싶어서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실험영화를 공부했다.
필자와 인터뷰한 최익환 감독(위 왼쪽). ‘여고괴담 4’ 제작발표회.
그러나 ‘여고괴담 4: 목소리’는 실험영화가 아니다. 그는 ‘대중이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라는 대전제 아래 사운드를 디자인하고 새로운 촬영을 시도했다. 공포영화도 드라마가 있어야 재미있는데, 모든 테크닉들이 드라마와 분리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실험은 기술적인 것이 아니다. 새로운 감각이다. 이거 느낌이 다르네, 하는 것들이다. 여고라는 공간을 다른 느낌으로 바꿔버렸을 때의 감각적 충격을 보여주고 싶었다.”
‘여고괴담 4’의 순제작비는 20억원. 2004년 크리스마스 이튿날부터 찍기 시작해서 올 3월 중순까지 총 48회 촬영으로 마무리를 했다.
“예산이 적다는 것은 장점이다. 흥행에 대한 부담감이 없지는 않지만 예산이 많이 들어간 영화에 비해서 덜하다. 그래서 오히려 새로운 시도를 여러 가지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화의 중심이 귀신이다 보니 예산 문제와 매우 밀접히 결부돼 있다. 후반으로 갈수록 규모가 더 커져야 하지만 고민만 많이 하다가 결국 절제를 했다.”
완성된 작품은 기존의 ‘여고괴담’ 시리즈와는 많이 다르다. 그래서 ‘여고괴담’이 아니라 ‘목소리’라는 제목으로 해도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여고괴담 1·2·3과는 다르게 만들려는 반작용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시리즈 안에 안착해 있다는 느낌이 더 많이 든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 영화는 완전히 미스터리 구조도 아니고 드라마도 아닌 부분이 있다. 미스터리라면 그것이 풀리는 지점에서 영화가 끝나야 하는데, 깔끔한 영화적 종결은 만들 수 있었지만 그 이후의 주인공에 대한 삶이 궁금했다.”
‘여고괴담’ 시리즈는 일관되게 신인 여배우들의 등용문 구실을 하고 있는데, 네 번째 시리즈에서도 김옥빈 서지혜 차예련 등 아직은 낯선 이름의 신인들이 훌륭하게 신고식을 치렀다. 올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옥빈은 네이버의 얼짱 출신이다. 최 감독은 신인 배우들 오디션을 할 때, 대사를 하며 감정을 쏟아내는 배우를 보지 않고 그 상대편에 있는 배우를 보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배우를 캐스팅했다.
‘여고괴담 4’는 섬세하고 깔끔하다. 그러나 공포가 후반으로 갈수록 확산되지는 않는다. 영화의 초점이 공포의 확산에 있는 게 아니라, 귀신이 된 영언의 자기 정체성 확보에 있기 때문이다.
“내 성격 때문이다. 어느 한곳에 매몰되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다. 우물 속에 풍덩 들어가서 푹 젖었다 나와야 하는데, 그런 깊이가 없다. 액션도, 공포도 마찬가지다.”
귀신이 된 영언은 자신의 단짝친구인 선민에게서 자기를 생각하는 마음이 줄어들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선민에게는 영언에 대한 그리움도 있지만 동시에 무서움도 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영언의 목소리는 희미해진다.
“나중에는 영언의 목소리가 시각화되기도 한다. 전구가 틱틱거리면서 이야기한다. 영상은 사운드를 받쳐주는 구실을 하고 있다. 조용한 가운데, 예측하지 못한 소리가 갑자기 들렸을 때 그것이 공포가 되기도 한다.”
영화가 귀신의 시점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허용되는 것 중 하나가 영언이 과거를 경험하는 순간이다. 또 학교라는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귀신의 설정은 오히려 다른 공간으로의 일탈 욕망을 훨씬 강하게 만들 수도 있다.
최 감독의 다음 영화는 3명의 고등학교 친구가 30대 초반까지 변해가는 모습을 다룰 예정이다. CJ에서 제작하는 HD 장편 프로젝트의 하나로 기획되는 작품인데, 기본적으로 코미디지만 애니메이션 리터치를 사용해서 실험을 하려고 한다.
“나는 새로운 도전을 굉장히 좋아한다. 어떤 형태의 도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혹은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부분에서 실험은 계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