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몽’, ‘세계의 욕망’, ‘마법사(들)’
2004년 ‘열대병’으로 태국 영화 최초로 칸 경쟁부문에 진입한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의 중편 ‘세계의 욕망’은 정글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회상이다. 정글로 들어간 두 남녀에 대한 영화를 찍는 영화팀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마치 일기를 기록하는 것처럼 이들의 촬영 과정을 상세히 담아내는데, 낮과 밤이 교차하고 태국의 정글이 이들을 문명 세계로부터 갈라놓는 동안 현실과 영화의 꿈 사이에 놓인 경계선은 점점 흐려진다. 종종 굉장히 매력적인 장면들을 포함하고 있고 예술영화 마니아들이라면 열광할 만한 소재와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또 그만큼 개인적이며 자폐적이기도 하다.
‘철남’의 감독인 쓰카모토 신야의 단편 ‘혼몽’은 가장 추상적으로 시작하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엔 가장 완벽한 자기 완결구조를 갖는 작품이다. 영화는 깨어나 보니 모든 기억을 잃고 좁은 콘크리트 벽 사이에 갇혀 있는 남자의 탈출기다. 남자는 이 공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는 동안 그에게 온갖 신체적 고통과 손상이 닥쳐온다. 영화가 끝날 무렵엔 이성적으로 해석될 수 없을 것 같았던 이 모든 상황에 대한 해답이 등장한다.
구체적인 주제야 달아 붙이겠지만, 그 의미가 무엇이건 ‘혼몽’은 굉장히 강렬한 악몽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폐쇄공포증, 육체적 통증, 정신적 혼란이 소용돌이처럼 뒤섞여 관객들의 오감을 자극한다. 다행히도 단편이라 그 고통은 길지 않다.
송일곤의 ‘마법사(들)’은 하나의 형식 실험으로 시작한다. 히치콕이 ‘로프’에서 그랬던 것처럼 단 하나의 쇼트로 40분짜리 영화 한 편을 찍는데, 그 하나의 쇼트 안에 현재와 과거의 회상, 그 과거에 회상한 그 이전의 과거가 모두 담겨 있다. 영화는 꽤 적절한 방식으로 이 개별적인 시간대를 엮어 순환구조를 만들어낸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매지션이라는 밴드의 구성원들이다. 영화가 시작될 무렵 이미 해체된 밴드의 두 구성원이 둘 중 한 사람이 소유한 강원도의 한 카페에서 술을 마시며 농담을 하고 있다. 코미디처럼 가볍게 시작되는 영화는 주인공 중 한 명의 회상을 통해 이들의 과거 속으로 들어간다.
이 영화는 어차피 기승전결의 스토리와 무관한 영화지만, 갑작스럽게 끝나는 결말이 초점이 맞지 않는 농담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송일곤의 전작들이 그렇듯, ‘마법사(들)’의 이미지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디지털 매체의 한계 속에서도 놀랄 만큼 아름답고 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