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홍수’라고 표현할 만한 계절이 돌아왔다. 한쪽에서는 여야 대통령후보를 선출하느라 법석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예외 없이 최고 권력자의 친인척과 관련된 권력형 부정부패가 드러나면서 정치공방이 난무한다.
형식에서도 내용에서도 마치 오래된 영화를 돌리듯 과거와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작금의 현실을 보노라니, 민주화와 부패의 함수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민주화가 진행되면 부패는 감소한다는, 어찌 보면 무슨 거창한 이론을 갖다 붙일 수도 없을 것 같은 평범한 진리가 과연 우리에게도 적용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동안 우리 사회는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 온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면서 전반적으로 민주화가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권력형 비리나 부패의 체감지수는 낮아졌다고 자신할 수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1997년 세계은행이 펴낸 세계발전보고서에 따르면, 부패의 근원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왜곡된 정책환경이고, 둘째는 취약한 법제도, 셋째는 공공서비스에 대한 부실관리다. 첫째와 셋째 요인은 제도를 만들고 개선해 나가면서 부패가 생길 여지를 줄임으로써 어느 정도 치유할 수 있다. 더구나 민주화가 진전되면 정보의 공개가 이루어지고 부패에 취약한 부문이 제도적으로 보완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이 같은 제도적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보완이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법제도는 조금 다른 차원의 문제다. 비리가 드러나면 제대로 갖추어진 법에 의해 엄정하게 처리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 경우는 제도의 운용이 다시 문제가 된다. 법제도가 제대로 갖추어진다고 해서 부패가 사라질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법제도가 취약할 경우의 문제는 비리를 저질러도 당사자가 빠져나갈 곳이 많고,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가 보완되면 부패 당사자들은 처벌받지 않으려고 제도 운용을 무력화하는 방도를 취하게 된다. 이때 가장 손쉽고 확실한 방도가 권력에 기대는 것이며, 여기서 이른바 권력형 비리가 나타난다.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외견상 민주화가 진전되었음에도 권력형 비리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아직 민주화가 완성되지 못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은 물리적 힘을 근거로 한 독재정권에 대한 투쟁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부정해야 할 독재적 정치권력이라는 거대한 실체만 중시되었다. 반면 민주화 추진세력의 내부적 민주화, 또는 민주적 의식의 함양이라는 측면은 간과되어 왔다. 그리하여 민주화 추진세력이 정치권력을 획득한 후에도 권위주의는 그대로 남아 친인척과 측근, 가신이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사회 전반에 걸친 민주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비리와 부패는 갈수록 권력 핵심으로 파고들어 이들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늘어졌으며, 마침내 권력형 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이런저런 테이프가 등장하는 기묘한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무시무시한 사정기관이 있으되 핵심 권력의 눈치보기에 바쁘고,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가 있으되 당파간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는 한, 민주화와 부패는 우리가 기대하는 올바른 함수관계를 형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민주화가 제대로 된 제도를 갖추는 것이고, 말 그대로 ‘주인인 국민’이 이를 운용하도록 하는 것이라면 국민의 입장에서도 반성할 점이 많다. 우리는 제도가 갖는 함정에 빠져 스스로 기만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패가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는, 올바른 시장기구가 작동하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경제 전체적으로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없게 만드는 데 있다. 말하자면 대다수 국민의 경제적 손실 가운데 일부가 소수의 비리 당사자에게 혜택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개개인의 손실이 미미하다고 해서 이를 손실로 깨닫지 못한다면 문제다.
민주주의 체제도 이 같은 함정을 가지고 있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선거권은 미미해 보이고, 따라서 이를 권력으로 인식하지 않으면 다수로부터 이탈된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작지만 강한 권력을 국민들이 깨닫고 올바르게 행사할 때만 민주화는 완성된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또한 그렇게 될 때만 ‘민주화가 진전되면 부패가 줄어든다’는 함수관계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로 남게 될 것이다.
형식에서도 내용에서도 마치 오래된 영화를 돌리듯 과거와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작금의 현실을 보노라니, 민주화와 부패의 함수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민주화가 진행되면 부패는 감소한다는, 어찌 보면 무슨 거창한 이론을 갖다 붙일 수도 없을 것 같은 평범한 진리가 과연 우리에게도 적용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동안 우리 사회는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 온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면서 전반적으로 민주화가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권력형 비리나 부패의 체감지수는 낮아졌다고 자신할 수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1997년 세계은행이 펴낸 세계발전보고서에 따르면, 부패의 근원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왜곡된 정책환경이고, 둘째는 취약한 법제도, 셋째는 공공서비스에 대한 부실관리다. 첫째와 셋째 요인은 제도를 만들고 개선해 나가면서 부패가 생길 여지를 줄임으로써 어느 정도 치유할 수 있다. 더구나 민주화가 진전되면 정보의 공개가 이루어지고 부패에 취약한 부문이 제도적으로 보완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이 같은 제도적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보완이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법제도는 조금 다른 차원의 문제다. 비리가 드러나면 제대로 갖추어진 법에 의해 엄정하게 처리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 경우는 제도의 운용이 다시 문제가 된다. 법제도가 제대로 갖추어진다고 해서 부패가 사라질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법제도가 취약할 경우의 문제는 비리를 저질러도 당사자가 빠져나갈 곳이 많고,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가 보완되면 부패 당사자들은 처벌받지 않으려고 제도 운용을 무력화하는 방도를 취하게 된다. 이때 가장 손쉽고 확실한 방도가 권력에 기대는 것이며, 여기서 이른바 권력형 비리가 나타난다.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외견상 민주화가 진전되었음에도 권력형 비리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아직 민주화가 완성되지 못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은 물리적 힘을 근거로 한 독재정권에 대한 투쟁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부정해야 할 독재적 정치권력이라는 거대한 실체만 중시되었다. 반면 민주화 추진세력의 내부적 민주화, 또는 민주적 의식의 함양이라는 측면은 간과되어 왔다. 그리하여 민주화 추진세력이 정치권력을 획득한 후에도 권위주의는 그대로 남아 친인척과 측근, 가신이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사회 전반에 걸친 민주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비리와 부패는 갈수록 권력 핵심으로 파고들어 이들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늘어졌으며, 마침내 권력형 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이런저런 테이프가 등장하는 기묘한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무시무시한 사정기관이 있으되 핵심 권력의 눈치보기에 바쁘고,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가 있으되 당파간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는 한, 민주화와 부패는 우리가 기대하는 올바른 함수관계를 형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민주화가 제대로 된 제도를 갖추는 것이고, 말 그대로 ‘주인인 국민’이 이를 운용하도록 하는 것이라면 국민의 입장에서도 반성할 점이 많다. 우리는 제도가 갖는 함정에 빠져 스스로 기만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패가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는, 올바른 시장기구가 작동하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경제 전체적으로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없게 만드는 데 있다. 말하자면 대다수 국민의 경제적 손실 가운데 일부가 소수의 비리 당사자에게 혜택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개개인의 손실이 미미하다고 해서 이를 손실로 깨닫지 못한다면 문제다.
민주주의 체제도 이 같은 함정을 가지고 있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선거권은 미미해 보이고, 따라서 이를 권력으로 인식하지 않으면 다수로부터 이탈된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작지만 강한 권력을 국민들이 깨닫고 올바르게 행사할 때만 민주화는 완성된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또한 그렇게 될 때만 ‘민주화가 진전되면 부패가 줄어든다’는 함수관계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