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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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엔 코엑스, 강북엔 ‘고엑스’

고려대 복합 생활공간의 별칭 … 열람실·게임방·식당가 등 주민 발길 모이는 지역 명소로

  •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04-10-04 14: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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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엔 코엑스, 강북엔 ‘고엑스’
    ”수업 끝나믄~ 고엑스로 와 ^^;;” 짧은 치마와 민소매 저고리로 한껏 멋을 낸 여학생이 수업을 듣고 있는 남자친구에게 휴대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30초 후 답장이 배달됐다.

    “다~알링 ^o^ 파파이스로… 밥 먹구 스타 한판?”

    ‘고엑스’에 자리잡은 패스트푸드점 파파이스에 남자친구가 나타났다. 햄버거와 구운 감자로 간단히 식사를 해결한 커플은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으로 향했다. 카페라테와 아이스모카를 받아 들고 찾아간 곳은 디지털카페 매직스테이션. “수업 시간 전까지 식곤증도 쫓을 겸 컴퓨터게임을 하러 간다”고 했다.

    강남엔 코엑스, 강북엔 ‘고엑스’
    고엑스? 고엑스는 고려대 학생들이 3월 완공된 중앙광장과 광장 지하에 만들어진 복합 생활공간에 붙인 별칭이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코엑스몰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붙인 이름.

    경영학과 김정훈씨(22)는 “강남에 코엑스가 있다면 강북엔 고엑스가 있다”고 말한다. 패스트푸드점과 카페에서는 학생들의 깔깔대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유니스토아가 어떻고, 로즈버드가 어떻고…. 고엑스에서는 나이 지긋한 졸업생들이 들으면 혀를 내두를 수준의 대화가 오간다.



    복학생들 낯선 풍경에 ‘문화충격’

    강남엔 코엑스, 강북엔 ‘고엑스’
    얼마 전 직장을 그만두고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한 법대 졸업생 이경호씨(29)는 4월 중순부터 모교에서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학교를 다시 찾은 첫날 이씨는 예전에 대운동장이 있던 자리에 ‘독서 열람실’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고엑스를 찾았다. 그러나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펼쳐진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기가 우리 학교 맞나? 유리벽으로 만들어져 내부가 훤히 보이는 서구식 열람실과 양쪽으로 늘어선 패스트푸드점….

    “한마디로 문화충격을 느꼈습니다. 변화가 조금 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너무 편해요. 제가 학교 다닐 때 이런 공간이 있었더라면 고시 합격을 열 번도 넘게 했을 거예요.”

    중앙광장 지하에는 1000여석의 열람실, 5개의 강의실, 인터넷카페, 편의점, 한식·양식 패스트푸드점, 게임방, 서점, 문구점 등이 들어섰고 991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공간이 마련돼 있다. 지하 1층에 위치한 열람실은 채광이 잘돼 지하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식당가의 대부분은 주고객인 신세대 대학생들을 겨냥해 포장판매(take-out) 전문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강남엔 코엑스, 강북엔 ‘고엑스’
    주말이면 중앙광장은 지역 주민들 차지가 된다. 인라인스케이트·킥보드를 즐기는 초등학생, 산책·운동을 나온 가족들로 붐빈다. 최근에는 소문을 들은 타 학교 학생들이 고엑스로 놀러 오는 경우도 있다. 매직스테이션 앞에서 만난 홍지영씨(19·성균관대 1학년)는 “성대에도 이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고엑스로 가끔 마실을 온다”고 말했다.

    강남엔 코엑스, 강북엔 ‘고엑스’
    그렇다면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는 학생들의 일과는 어떨까. 경영학과 이승진씨는 매일 오전 7시 중앙광장 열람실의 자리를 맡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오전 수업을 듣고 다시 고엑스로 돌아와 전공서적을 뒤적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패스트푸드형 비빔밥집으로 향한다.

    “점심을 먹은 뒤엔 게임방에 꼭 들러요.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풀면 공부가 잘됩니다. 열람실 바로 옆에 게임방이 있어서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 시간도 절약되고요.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중앙광장에서 산책도 할 수 있고, 서점과 문구점까지 들어와 있어 매우 편리합니다.”

    이씨는 하나의 공간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젊은 세대의 취향에 꼭 들어맞는다고 말한다. 집단보다 개인을 중시하고 실외활동보다 실내활동에 익숙한 새내기 대학생들에게는 이런 복합공간이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강남엔 코엑스, 강북엔 ‘고엑스’
    ‘상아탑’이라고 불리는 대학 캠퍼스에 패스트푸드점과 게임방 등이 들어섰다는 것은 기성세대의 관점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고루하고 촌스럽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고려대와 고엑스의 풍경도 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느껴진다.

    현재 중앙광장 지하공간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는 입학 연도를 기준으로 엇갈린다. 2000년 이후 입학한 학생들은 칭찬 일색이다. 심리학과 김정민씨(21)는 “학교의 변화에 여학생들이 특히 좋아한다”며 “깔끔한 분위기에서 수다도 떨고 피로도 풀 수 있는 공간이 학교 내에 있어 너무 좋다”고 했다. 미술교육과 강나진씨(23)는 “학교 이미지가 송두리째 바뀌었다”며 “산뜻하고 세련된 것을 좋아하는 신세대 고등학생의 욕구를 충족시켜 우리 학교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늘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엔 코엑스, 강북엔 ‘고엑스’
    반면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학생들은 이러한 변화를 마땅찮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경영학과 한순우씨(26)는 “대학은 대학다워야 한다. 교육과 관련된 인프라에만 투자해야 한다”며 “놀이시설과 상업시설을 학교 내에 끌어들인 것은 잘못이다”고 꼬집었다. 손창일 총학생회장은 “중앙광장 지하공간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이 긍정적이라 하더라도 패스트푸드점과 게임방 등이 교정에 자리잡은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엑스에 밀려난 대운동장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 정의감과 저항정신으로 똘똘 뭉친 학생들이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던 곳이다. 고엑스에서 학생들이 하는 일은 수업, 공부, 게임, 휴식, 주차, 쇼핑 등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민중가요를 부르며 정권 타도를 외치던 바로 그 공간에서 패스트푸드를 들고 컴퓨터게임을 즐기는 대학생들.

    고엑스는 ‘이념’과 ‘집단’을 버리고 ‘재미’와 ‘개인’을 선택한 대학문화와 보보스적인 N세대 대학생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고대의 한 노(老)교수는 “민주화를 갈망하는 교수, 학생들의 피와 땀이 서린 대운동장과 서로 몸을 비비며 응원가를 부르던 그 시절 학생들이 그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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