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 바르니아 이스라엘 모사드 국장(왼쪽)이 5월 13일 이스라엘 현충일 기념식에서 헌화하고 있다. [뉴시스]
이스라엘의 대외 정보기관 모사드에도 히브리어로 ‘단검’을 뜻하는 ‘키돈(Kidon)’이라는 암살 전문 요원들이 있다. 이들은 모사드에서 암살, 폭파 등 비밀작전을 전담하는 부서인 메차다(Metsada) 산하에 있는 전문 킬러다. 보통 4인 1조로 활동하는데, 2명은 직접 암살을 실행하고 다른 2명은 추적과 잠입, 탈출 등을 맡는다. 키돈은 모사드 요원 가운데 선발되며 2년간 특수 훈련을 받는다. 훈련 기지는 네게브 사막에 있다. 키돈에는 여성 요원도 있다. 이들의 모토는 “표적은 지옥까지도 찾아가 반드시 제거한다”이다.
4인 1조로 활동하는 전문 킬러들
아야톨라 알리 호세인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맨 앞)가 8월 1일 암살당한 하마스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의 장례식에서 기도하고 있다. [이란 최고지도자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귀빈용 숙소 건물에 2개월 전 몰래 설치된 폭탄에 의해 하니예가 암살됐다면서 이 폭탄은 원격 조종으로 터졌다고 보도했다. 해당 숙소는 테헤란 북부에 있는 6층 건물로 이란 혁명수비대가 관할해온 이른바 안가(安家)다. 카타르에서 망명 생활을 해온 하니예는 그동안 이란을 방문할 때 몇 차례 이 숙소에 묵었다. 하니예는 7월 30일 열린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고자 테헤란을 방문했다.
모사드는 포섭한 이란인들을 정보원으로 활용해 하니예의 동선을 면밀하게 파악한 뒤, 숙소에 인공지능(AI)이 탑재된 폭탄을 설치해 원격 조종으로 터뜨린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인터넷 언론 액시오스는 “하니예를 암살한 폭탄은 AI를 사용한 첨단 장비”라고 보도했다. NYT도 “이번 공격에 활용된 폭탄의 정확도와 정교함은 이스라엘이 2020년 이란 핵과학자 모흐센 파크리자데를 암살할 때 사용한 원격 조정 AI 로봇 무기와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은 파크리자데의 얼굴을 인식해 자동으로 조준하고 방아쇠까지 당길 수 있는 ‘AI 로봇 기관총’을 사용했다. 이번에 사용된 폭탄도 이와 비슷한 기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방 한 정보기관 관리는 “폭탄이 목표물인 하니예를 얼굴이나 음성으로 확인하고, 멀리 은신한 원격 조종자에게 알렸을 것”이라며 “원격 조종자가 ‘공격 승인’ 버튼을 누르고 AI가 목표물을 겨냥해 폭탄을 터뜨렸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번 테러는 하니예가 머문 숙소 외부에서 7㎏의 탄두를 실은 단거리 발사체에 의해 이뤄졌다”고 밝혔다. 경호·정보전의 총체적 참패라는 비난을 피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지구상에서 절대 공존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원수지간’이다. 하마스는 이슬람저항운동의 아랍어 머리글자를 딴 말로, ‘용기’를 뜻한다. 하마스는 1987년 제1차 인티파다(반이스라엘 저항운동)를 계기로 창설됐으며, 팔레스타인 영토에 이슬람 국가를 건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마스는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무력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하마스가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소탕하고자 가자지구를 침공했고, 민간인의 막대한 피해에도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22분 만에 암살 완수
모사드는 역대 이스라엘 정부의 지시에 따라 30여 년간 하마스 지도자들을 표적 삼아 암살 작전을 수행해왔다. 모사드에 의해 암살된 하마스 지도자와 간부는 창설자 아흐메드 야신을 비롯해 5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어린 시절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야신은 2004년 3월 사원에서 새벽 예배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헬기에서 발사된 미사일 공격으로 두 아들 및 경호원 5명과 함께 사망했다. 한 달 후 야신에 이어 하마스 최고지도자가 된 압델 아지즈 알란티시 역시 헬기 공격을 받아 숨졌다.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급 지휘관과 핵 과학자,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지도자 등 모사드가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수백 명이 넘는다.
모사드는 표적으로 삼은 대상을 끝까지 추적해 제거해왔다. 대표 사례가 2010년 1월 19일 두바이 한 호텔에서 벌어진 하마스 군사조직 알 카삼 여단의 창설자인 마흐무드 알마브후흐 암살이다. 모사드는 가자지구 무기 밀반입 총책을 맡고 있는 알마브후흐를 1989년부터 20년간 추적해왔다. 당시 모사드 요원들은 호텔 직원 등으로 위장해 알마브후흐를 살해했다. 모사드 요원들이 임무를 완수하고 호텔을 떠날 때까지 2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모사드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영국 대외정보국(MI6)과 맞먹는 세계 최고 정보기관으로 여겨진다. 모사드의 정식 명칭은 ‘정보 및 특수작전 기관’이다. 모사드는 히브리어로 ‘기관(Institute)’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모사드의 전체 요원이나 예산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이스라엘 건국 이듬해인 1949년 12월 13일 창설됐으며, 13명의 국장이 총리 직속 기관인 모사드를 지휘해왔다는 점만 알려졌다.
다비드 바르니아 모사드 국장은 2021년 6월부터 모사드를 맡고 있다. 특수부대 군인 출신인 그는 1996년 모사드에 들어가 휴민트(HUMINT·인적 정보) 분야에서 주로 근무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해 11월 바르니아 국장에게 해외에서 망명 생활을 하는 하니예를 비롯해 하마스 지도자들을 반드시 추적해 제거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듬해 1월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외곽에서 하마스 서열 3위 살레흐 알아루리가 무인기(드론) 공격으로 사망했다. 알아루리는 최근 수년간 베이루트에 주로 머물며 사실상 ‘헤즈볼라 주재 하마스 대사’ 역할을 해왔다.
이스라엘이 하마스 지도자를 모두 암살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의도는 미국이 테러단체인 이슬람국가(IS)에 대응하는 방식과 같다. 하마스가 다시는 위협 세력이 될 수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아모스 야들린 전 이스라엘 군사정보국장은 “10월 7일 공격 책임자들을 대상으로 한 암살 작전은 계속될 것”이라면서 “모든 하마스 지도자, 공격에 가담한 모두, 공격을 계획한 모두를 심판하거나 제거할 것이며, 이것이 정의 실현”이라고 강조했다.
사얀과 손잡은 모사드
이스라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700여 차례에 걸쳐 해외 암살 작전을 벌였다.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을 살해한 팔레스타인 테러단체 ‘검은 9월단’ 조직원 암살이 대표적 예다. 모사드는 이들을 모두 암살하고자 ‘신의 분노’라는 작전을 세웠고, 20여 년간 레바논 등 중동과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키프로스 등 유럽 각국에서 관련자 20여 명을 전부 제거했다. 작전에 참여한 요원 중 1명이 훗날 이스라엘 총리가 된 에후드 바라크다. 그는 1973년 동료들과 함께 여성으로 분장해 베이루트에 잠입한 뒤 뮌헨올림픽 테러 사건에 연루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정보책임자 모하메드 유수프 알나자르 등 3명을 살해했다. 당시 모사드의 암살 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가 ‘뮌헨’이다. 미국 유명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2005년 이 영화를 제작해 아카데미시상식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모사드는 여느 정보기관과 비교할 때 해외 작전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왔다. 자발적으로 모사드를 돕는 유대인 협력자 ‘사얀’이 전 세계에 많이 분포해 있기 때문이다. 사얀은 각국에서 사회적·정치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거나 상당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로, 비밀리에 모사드를 물심양면 돕는다고 한다. 게다가 이스라엘 정부의 막대한 예산과 기술 지원으로 모사드는 도청장치 같은 최신 감시 장비는 물론, AI 정보처리 기술도 계속해서 발전시켜왔다. 헤즈볼라 수장인 하산 나스랄라가 최근 부하들에게 스마트폰을 버리라고 얘기할 정도로 모사드의 정보 수집 능력은 대단하다. 모사드의 암살 수법도 각종 첨단기술을 활용하고 있어 대비하기가 어렵다. 모사드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하마스의 또 다른 지도자를 암살하기 위한 작전 계획을 짜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