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양궁 남자 개인 결승전에서 김우진 선수가 미국 브레이디 엘리슨을 슛오프 접전 끝에 물리치고 3관왕에 올랐다. 슛오프 마지막 한 발을 쏘려고 사대에 오른 김우진은 어느 때보다 침착하게 활시위를 당겼다. 화살은 과녁 중심으로부터 55.8㎜ 떨어진 곳에 꽂혔다. 이어진 엘리슨의 화살은 60.7㎜ 거리에 꽂히면서 김우진의 금메달이 확정됐다. 두 선수가 쏜 화살의 거리 차이는 단 4.9㎜. 앞서 혼성 단체전과 남자 단체전에서 금메달 2개를 딴 김우진은 이로써 파리올림픽 3관왕이자 한국 올림픽 사상 최초 총 금메달 5개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한국 양궁은 혼성 단체, 여자 단체, 남자 단체, 여자 개인, 남자 개인 등 전 종목에서 금메달 5개를 획득하며 또 하나의 신화를 썼다. 양궁 여자 단체팀은 1988 서울올림픽 이후 10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한국 양궁이 35년 넘게 세계 정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선수와 코칭스태프의 피나는 노력과 더불어 현대자동차그룹과 대한양궁협회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의선 회장, 선수들의 정신적 지주
대한양궁협회장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오른쪽)이 2024 파리올림픽에서 양궁 3관왕에 오른 김우진 선수를 격려하고 있다. [뉴시스]
현대자동차그룹은 1985년 정몽구 명예회장이 대한양궁협회장에 취임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40년간 한국 양궁을 물심양면 후원해왔다. 이는 국내 단일 종목 스포츠단체 후원 중 최장 기간이다. 정 명예회장에 이어 2005년부터 협회장을 맡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첨단 훈련 장비를 통한 양궁 과학화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과 대한양궁협회는 2021년 도쿄올림픽 직후부터 파리 앵발리드 경기장을 재현한 연습장을 만들어 선수들이 훈련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또한 슈팅 로봇을 비롯해 첨단 연구개발(R&D) 기술로 개발한 훈련 장비와 축구장 소음 체험 등을 통해 실전을 방불케 하는 특별 훈련 등을 실시했다. 첨단 훈련 시스템 지원과 더불어 정 회장은 선수들이 흔들릴 때마다 키다리 아저씨처럼 따뜻하게 보듬으며 정신적 지주 역할도 자처했다. 정 회장은 파리올림픽 양궁 첫 경기부터 마지막 경기까지 교민들과 함께 현장에서 응원했다. 남자 단체 결승전 상대가 개최국 프랑스로 정해지자 정 회장은 김우진, 이우석, 김제덕 선수에게 “홈팀이 결승전 상대이니 상대팀 응원이 많은 건 당연하지 않겠느냐”며 “주눅 들지 말고 하던 대로만 하자”고 격려의 말을 전했다. 힘을 얻은 한국 남자 양궁 선수들은 프랑스 홈팬들의 일방적인 응원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완벽한 경기를 펼쳤다. ‘양궁에 진심’인 정 회장의 진정성이 한국 선수들과 단단한 신뢰 관계로 이어져 좋은 결과를 낳은 것이다. 정 회장은 한국 여자 양궁이 올림픽 10연패를 달성하자 직접 시상자로 나섰다. 임시현 선수는 이날 “한국 양궁 대표팀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가장 큰 도움을 준 분은 정의선 회장님”이라면서 “정 회장님이 많은 지원을 해줬기 때문에 더 좋은 환경에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말하며 정 회장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SK텔레콤, 펜싱 경쟁력 강화에 앞장서
환상적인 호흡으로 올림픽 3연패를 달성한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 대표팀 ‘뉴 어펜저스’
구본길, 박상원, 오상욱, 도경동(왼쪽부터) 선수. [뉴시스]
파리올림픽에서 남자 사브르 개인전·단체전 금메달, 여자 사브르 단체전 은메달을 수확한 펜싱 ‘국대’ 뒤에는 2003년부터 대한펜싱협회 회장사를 맡고 있는 SK텔레콤과 대한펜싱협회장인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이 있었다. 최 전 회장은 파리올림픽 펜싱 경기가 열리는 기간 내내 현장을 직접 방문해 선수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등 펜싱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촌 형인 최 전 회장은 2018년 3월 대한펜싱협회장에 취임한 이후 6년 넘게 펜싱 경쟁력 강화를 위해 앞장서 왔다. 최 전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대한펜싱협회는 진천선수촌에 올림픽 경기장과 똑같은 규격의 피스트(piste·경기대)를 만들고, 선수들이 관중 함성과 경기장 조명까지 동일한 조건에 맞춰 훈련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또한 파리 현지에 훈련 파트너 선수단 7명 등 별도 전담팀과 의무 트레이너 2명을 파견해 선수들을 면밀히 관리했다. 파리 샹젤리제 인근 한식당에서 매일 점심 도시락을 배달해와 선수들이 부실한 선수촌 음식 대신 한식을 든든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선수 컨디션 관리에도 힘썼다.
파리올림픽에서 ‘효자 종목’으로 자리매김한 사격은 현재 후원하는 대기업이 없다. 다만 사격 마니아로 알려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20년 넘게 사격 종목을 지원해왔다. 2002년 대한사격연맹 회장사를 맡은 한화그룹이 그동안 사격 종목을 위해 내놓은 발전기금만 200억 원이 넘는다. 2008년부터는 한화회장배 전국사격대회를 매년 개최하는 등 사격 저변 확대에도 힘썼다. 국제 사격 경기 규정에 맞게 전자표적으로 경기를 진행하고, 겨울에는 전지훈련을 계획하는 등 아낌없는 지원을 통해 한국 사격 발전에 이바지했다. 그 결과 진종오 선수가 2004 아테네올림픽 남자 50m 권총에서 은메달을 딴 것을 시작으로 금메달 4개를 수확하며 ‘사격 황제’에 올랐다.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한국 사격은 오예진(여자 10m 공기권총), 반효진(여자 10m 공기소총), 양지인(여자 25m 권총)이 잇따라 금메달을 목에 걸며 황금기를 맞았다. 금메달 3개, 은메달 3개로 사상 최고 성적이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11월 한화갤러리아 대표 출신인 김은수 전 대한사격연맹 회장이 물러나면서 회장사 자리에서도 내려왔다. 대한사격연맹 회장직은 올해 6월 초 신명주 명주병원장이 단독 출마해 선출됐다. 하지만 신 회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임금체불’ 논란이 일자 8월 6일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