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어디 가?”
지난해 은퇴한 김성한(59) 씨는 아침부터 외출 준비로 부산한 아내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사실 아내가 어디 가는지보다는 점심 전에 돌아오는지가 궁금하다. 여차하면 오늘도 혼자 점심을 해결해야 한다. 김씨는 잠시 고민하다 용기를 내서 아내에게 한마디 건넨다.
“여보, 나도 같이 가면 안 돼?”
#파자마맨으로 전락한 남편
은퇴한 부부의 싸움은 의외로 단순한 일에서 비롯한다. 첫 번째 원인은 하루 종일 파자마만 입고 집 안에서 빈둥거리는 남편이다. ‘어디 갈 예정 없음. 누구도 올 예정 없음. 특별히 할 것도 없음.’ 이것이 준비 없이 은퇴한 남편의 보편적인 하루 일과다.
현역시절 남편의 인간관계는 대부분 회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회사를 떠나고 나면 관계가 소원해지게 마련이다. 휴대전화 주소록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등록돼 있어도, 은퇴 후 1~2년이 지나면 마음 편히 전화할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갈 곳 없이 집 안을 어슬렁거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오래 지속되면 아내 눈에 좋아 보일 리가 없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을 구박만 할 게 아니라, 은퇴 후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우선 남편은 ‘지역사회 데뷔’가 필요하다. 아내와 마찬가지로 남편도 은퇴한 뒤에는 지역사회를 주요 삶의 터전으로 삼는다. 따라서 매일 인사를 주고받는 이웃사촌, 취미를 함께 할 친구, 자원봉사 다닐 친구를 미리 사귀면 나이가 들어도 외롭지 않다. 남편의 지역사회 데뷔를 응원하는 것은 이미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가진 아내의 몫이다.
#아내의 외출과 점심
또 다른 갈등은 아내의 외출과 점심문제에서 시작된다. 남편은 은퇴 이후 아내와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려 하지만, 아내는 남편보다 마음 맞는 친구와 외출하는 게 편하다. 현역시절 남편은 ‘회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내를 홀로 집에 남겨두는 일이 잦았다. 그런데 은퇴 이후에는 그 관계가 역전돼 일상에 바쁜 아내가 남편을 집에 두고 외출하는 일이 잦아진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이 남편의 점심이다.
남편들은 점심 준비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 현역시절 휴일 낮에는 이 같은 마음으로 점심을 기다린다. ‘한 주 동안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으니 휴일에 아내가 점심 한 끼는 차려주겠지.’
하지만 은퇴한 이후에는 사정이 다르다. 매일 휴일 같은 일상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매일 집에서 점심상을 기다리는 남편을 보면, 아내는 속에서 천불이 난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지 몰라도 ‘매일 놀면서 무슨 염치로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차려내길 바라느냐’는 것이 아내의 속마음이다.
생각해보라. 아내들의 아침은 바쁘다. 아침상 차리기에서 시작해 설거지, 빨래, 청소까지. 이제 ‘휴~’ 한숨 돌리고 차라도 한잔 마시려 하면 벌써 오전 11시다. 다시 12시에 점심을 차리려면 늦어도 11시 반에는 조리를 시작해야 한다. 매일 이런 일상이 반복된다면 어느 주부가 좋아하겠는가? 심지어 남편이 이 번거로운 점심 준비를 당연시하며 고마워하지도 않는다면? 아내는 매일 되풀이되는 점심을 ‘저주’할 수밖에 없다.
아내들이여, 남편 은퇴 이후 ‘점심 고문’에서 벗어나려면 은퇴 이전부터 준비하라. 평소 주말에 남편이 점심 한 끼 정도는 직접 차려먹도록 하는 게 바로 그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아내의 도움이 필요하다. 남편이 제대로 못한다고 구박하지만 말고, 쉬운 요리 몇 가지는 혼자서도 해먹을 수 있게 도와주자. 은퇴 후 남편 점심 차리기에서 해방되려면 이 정도 노력은 필요하다.
#소리 없는 적(敵), 침묵
은퇴한 부부 사이의 가장 무서운 싸움은 ‘침묵’에서 시작한다. 때로 남편은 아내를 귀찮아한다. 아내와 차분히 대화하거나 아내의 의견을 듣고 그에 대한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는 일은 많지 않다. 뭐든 ‘잔소리’로 생각하기도 한다. 아내가 무슨 말을 하든 남편은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보며 “응” “음~” 하고 짤막하게 대답하는 것이 전부다.
남편이 성의 없이 대답해 아내와의 대화를 조기에 차단하면 번거롭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감정을 소모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긴 할 것이다. 아내 역시 몇 번 이런 대접을 받고 나면 남편과 속 깊은 얘기 하기를 포기한다. 그저 ‘부부 사이’에 대한 이야기만 오갈 뿐이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을 배우자에게 말하지 않으면 불만이 쌓여 부부싸움으로 번지게 마련이다. ‘혼자 집안일 하느라 이렇게 바쁜데 거들어주면 어디 덧나나.’ ‘말 꺼내기 전에 알아서 거들어주면 오죽 좋을까.’
대화가 차단된 부부 사이에서는 아내가 짜증 섞인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도 남편은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오히려 남편은 아내를 보며 ‘뭐가 저리 바쁘지’ 하는 표정으로 시치미를 뗄 뿐이다. 평소 대화가 없는 부부에게는 ‘이심전심’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니 미리미리 부부가 마주하고 대화하는 연습을 하자. 남편이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 말을 걸면 좋지 않다. 그때는 지금 상의할 일이 있으니 시간을 내달라고 하자. 조금이라도 마음이 통하는 부부가 되려면 미리 부부간 ‘대화의 토양’을 일궈야 한다.
▼ 은퇴 후 부부관계 진단
다음 중 자신에게 해당하는 항목을 모두 체크하세요.
□ 회사 동료와는 사이가 좋지만 집에서는 과묵한 편이다.
□ 남편이 살림하는 것은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아내의 스케줄이나 행동을 체크한다.
□ 자신도 모르게 아내에게 매정하게 대할 때가 있다.
□ 아내의 질문에는 ‘응’ ‘아니’ 하고 짧게 답한다.
□ 살림을 돕지는 않지만 잔소리는 한다.
□ 아내가 외출하면 잘 따라 나간다.
□ 평소 아내와 자식을 보살폈다는 자부심이 있다.
3개 이하
일단 안심하셔도 됩니다.
4~5개
잦은 부부싸움의 가능성이 보입니다.
6개 이상
버림받을지 모르니 조심하세요
*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으로 일반인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은퇴교육과 퇴직연금 투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저서로‘인생 100세 시대의 투자경제학’과 ‘적립식 투자 성공 전략(공저)’이 있으며, 월간 ‘은퇴와 투자’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은퇴한 김성한(59) 씨는 아침부터 외출 준비로 부산한 아내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사실 아내가 어디 가는지보다는 점심 전에 돌아오는지가 궁금하다. 여차하면 오늘도 혼자 점심을 해결해야 한다. 김씨는 잠시 고민하다 용기를 내서 아내에게 한마디 건넨다.
“여보, 나도 같이 가면 안 돼?”
#파자마맨으로 전락한 남편
은퇴한 부부의 싸움은 의외로 단순한 일에서 비롯한다. 첫 번째 원인은 하루 종일 파자마만 입고 집 안에서 빈둥거리는 남편이다. ‘어디 갈 예정 없음. 누구도 올 예정 없음. 특별히 할 것도 없음.’ 이것이 준비 없이 은퇴한 남편의 보편적인 하루 일과다.
현역시절 남편의 인간관계는 대부분 회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회사를 떠나고 나면 관계가 소원해지게 마련이다. 휴대전화 주소록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등록돼 있어도, 은퇴 후 1~2년이 지나면 마음 편히 전화할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갈 곳 없이 집 안을 어슬렁거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오래 지속되면 아내 눈에 좋아 보일 리가 없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을 구박만 할 게 아니라, 은퇴 후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우선 남편은 ‘지역사회 데뷔’가 필요하다. 아내와 마찬가지로 남편도 은퇴한 뒤에는 지역사회를 주요 삶의 터전으로 삼는다. 따라서 매일 인사를 주고받는 이웃사촌, 취미를 함께 할 친구, 자원봉사 다닐 친구를 미리 사귀면 나이가 들어도 외롭지 않다. 남편의 지역사회 데뷔를 응원하는 것은 이미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가진 아내의 몫이다.
#아내의 외출과 점심
또 다른 갈등은 아내의 외출과 점심문제에서 시작된다. 남편은 은퇴 이후 아내와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려 하지만, 아내는 남편보다 마음 맞는 친구와 외출하는 게 편하다. 현역시절 남편은 ‘회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내를 홀로 집에 남겨두는 일이 잦았다. 그런데 은퇴 이후에는 그 관계가 역전돼 일상에 바쁜 아내가 남편을 집에 두고 외출하는 일이 잦아진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이 남편의 점심이다.
남편들은 점심 준비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 현역시절 휴일 낮에는 이 같은 마음으로 점심을 기다린다. ‘한 주 동안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으니 휴일에 아내가 점심 한 끼는 차려주겠지.’
하지만 은퇴한 이후에는 사정이 다르다. 매일 휴일 같은 일상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매일 집에서 점심상을 기다리는 남편을 보면, 아내는 속에서 천불이 난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지 몰라도 ‘매일 놀면서 무슨 염치로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차려내길 바라느냐’는 것이 아내의 속마음이다.
생각해보라. 아내들의 아침은 바쁘다. 아침상 차리기에서 시작해 설거지, 빨래, 청소까지. 이제 ‘휴~’ 한숨 돌리고 차라도 한잔 마시려 하면 벌써 오전 11시다. 다시 12시에 점심을 차리려면 늦어도 11시 반에는 조리를 시작해야 한다. 매일 이런 일상이 반복된다면 어느 주부가 좋아하겠는가? 심지어 남편이 이 번거로운 점심 준비를 당연시하며 고마워하지도 않는다면? 아내는 매일 되풀이되는 점심을 ‘저주’할 수밖에 없다.
아내들이여, 남편 은퇴 이후 ‘점심 고문’에서 벗어나려면 은퇴 이전부터 준비하라. 평소 주말에 남편이 점심 한 끼 정도는 직접 차려먹도록 하는 게 바로 그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아내의 도움이 필요하다. 남편이 제대로 못한다고 구박하지만 말고, 쉬운 요리 몇 가지는 혼자서도 해먹을 수 있게 도와주자. 은퇴 후 남편 점심 차리기에서 해방되려면 이 정도 노력은 필요하다.
#소리 없는 적(敵), 침묵
은퇴한 부부 사이의 가장 무서운 싸움은 ‘침묵’에서 시작한다. 때로 남편은 아내를 귀찮아한다. 아내와 차분히 대화하거나 아내의 의견을 듣고 그에 대한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는 일은 많지 않다. 뭐든 ‘잔소리’로 생각하기도 한다. 아내가 무슨 말을 하든 남편은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보며 “응” “음~” 하고 짤막하게 대답하는 것이 전부다.
남편이 성의 없이 대답해 아내와의 대화를 조기에 차단하면 번거롭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감정을 소모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긴 할 것이다. 아내 역시 몇 번 이런 대접을 받고 나면 남편과 속 깊은 얘기 하기를 포기한다. 그저 ‘부부 사이’에 대한 이야기만 오갈 뿐이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을 배우자에게 말하지 않으면 불만이 쌓여 부부싸움으로 번지게 마련이다. ‘혼자 집안일 하느라 이렇게 바쁜데 거들어주면 어디 덧나나.’ ‘말 꺼내기 전에 알아서 거들어주면 오죽 좋을까.’
대화가 차단된 부부 사이에서는 아내가 짜증 섞인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도 남편은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오히려 남편은 아내를 보며 ‘뭐가 저리 바쁘지’ 하는 표정으로 시치미를 뗄 뿐이다. 평소 대화가 없는 부부에게는 ‘이심전심’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니 미리미리 부부가 마주하고 대화하는 연습을 하자. 남편이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 말을 걸면 좋지 않다. 그때는 지금 상의할 일이 있으니 시간을 내달라고 하자. 조금이라도 마음이 통하는 부부가 되려면 미리 부부간 ‘대화의 토양’을 일궈야 한다.
▼ 은퇴 후 부부관계 진단
다음 중 자신에게 해당하는 항목을 모두 체크하세요.
□ 회사 동료와는 사이가 좋지만 집에서는 과묵한 편이다.
□ 남편이 살림하는 것은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아내의 스케줄이나 행동을 체크한다.
□ 자신도 모르게 아내에게 매정하게 대할 때가 있다.
□ 아내의 질문에는 ‘응’ ‘아니’ 하고 짧게 답한다.
□ 살림을 돕지는 않지만 잔소리는 한다.
□ 아내가 외출하면 잘 따라 나간다.
□ 평소 아내와 자식을 보살폈다는 자부심이 있다.
3개 이하
일단 안심하셔도 됩니다.
4~5개
잦은 부부싸움의 가능성이 보입니다.
6개 이상
버림받을지 모르니 조심하세요
*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으로 일반인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은퇴교육과 퇴직연금 투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저서로‘인생 100세 시대의 투자경제학’과 ‘적립식 투자 성공 전략(공저)’이 있으며, 월간 ‘은퇴와 투자’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