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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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리는 놈 곤혹, 맞는 놈 큰소리…중동 민주화 ‘고난도 방정식’

빈곤과 정체성 혼란 속 갈수록 시위 확산…카타피 공격 놓고 국제사회는 내분 양상

  • 인남식 외교안보연구원 유럽아프리카 연구부 부교수in@mofat.go.kr

    입력2011-03-28 09: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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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세 튀니지 청년의 죽음이 역사를 바꾸고 있다. 인구 4만 소도시 시드 부지드의 채소 노점상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분신이 아랍권 전체의 정치 변동을 일으킨 것. 튀니지에서 시작된 혁명의 기운은 이집트로 확산됐다. 카이로 해방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요구에 의해 무바라크 31년 철권통치가 막을 내렸다. 이집트를 중심으로 서쪽 리비아, 동쪽 예멘과 바레인으로 정치변동이 확산되면서, 이른바 ‘신의 선물’이라는 꽃말을 지닌 재스민 혁명의 후속편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번 혁명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3000명 이상 근무한다고 알려진 세계 최대 공관이자 중동 아프리카 외교 거점인 이집트 카이로 주재 미국 대사관조차도 이번 일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게 중론. 각처의 중동 정치학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만큼 창졸간에 벌어진 이번 사안은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가져다줬다. 무엇보다 초창기 전파 속도가 무척 빨랐다. 향후 어느 방향으로 재스민 혁명이 옮겨갈지,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먹고살기 힘들어서 봉기

    안정적으로만 보였던 걸프 연안 왕정도 바레인, 오만을 필두로 흔들리기 시작했고, 유엔 안보리 결의안 1973호에 의해 리비아에 비행 금지구역이 설정됨에 따라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도 불안한 정세를 보이고 있다. 카다피 정부군과 반군 간의 밀고 당기는 교전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며, 예멘 살레 대통령 역시 정권 붕괴의 위기에 처했다. 전체 아랍권이 극도의 혼란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향후 상황 전개에 온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운 이 시점에서 현 상황과 관련해 몇 가지 짚어봐야 할 점이 있다.

    첫째, 최근 벌어지는 민주화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번 재스민 혁명과 전파 과정은 일반적인 민주화 과정과 다른 동기와 궤적을 보여준다. 흔히 이번 아랍의 정치변동을 시민혁명이라 부른다. 폭압적 독재와 권위주의에 맞서 정치적 자유를 희구하는 이들이 들고 일어나 생명을 걸고 투쟁했다는 점에서 시민혁명의 성격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민주화 과정과는 사뭇 다르다. 근대화론에 근거한 민주화 이론은 산업화와 경제발전 이후 국민소득이 일정 정도를 넘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즉 먹고살 만해져야 정치적 자유와 인류 보편의 가치에 대한 희구가 분출된다는 것. 이는 우리가 경험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아랍의 상황은 다르다. 오히려 동아시아의 경험과는 정반대로 ‘먹고살기 힘들어서’ 일어난 정치변동에 가깝다. 산유국이 아닌 아랍 권위주의 국가의 경우 실질 실업률이 30%를 상회한다. 특히 20대 이하 연령의 인구 비율이 60% 내외다. 이는 곧 20대 젊은이의 실업률이 절반을 넘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일자리 없이 하루하루 연명하는 이들의 불만이 누적되던 중, 2010년과 2011년 이상기후 및 국제금융위기와 맞물린 곡물가격 상승으로 인해 가난한 이들의 생계 자체가 위협받게 됐다. 이것이 바로 혁명의 원인이 됐다. 이집트 혁명을 대표적 서민 음식에 빗대어 ‘아이쉬(화덕에 구운 빵) 혁명’ 또는 ‘코샤리(콩류 등 곡물을 버무려 먹는 일종의 비빔밥류) 혁명’ 등으로 부르는 이유다.

    따라서 새롭게 등장할 정권의 최우선 목표는 국민을 잘 먹고 잘 살게 만드는 것이다. 문제는 현재 국내외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점. 현재 아랍 각국의 국가 수입과 생산, 분배 시스템상 빠른 시간 내 국민 삶의 질을 높이기란 쉽지 않다.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하겠지만, 당장 미국과 유럽 역시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민주화 시위 이후 등장한 정권으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 하겠지만, 상당 기간 현재의 빈곤과 저개발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곧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지 못함을 의미한다. 정권교체의 학습효과를 얻게 된 대중은 다시 정치적 의사표현에 나서려 할 것이다. 이렇게 혼란이 지속될 경우 새로운 형태로 변형된 권위주의로 회귀할 위험이 커진다.

    부족주의와 종파주의 첨예한 대립

    둘째, 아랍 혁명은 그동안 켜켜이 쌓였던 아랍 각국의 정체성 갈등과 이로 말미암은 분열 요소가 분출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나 다름없다. 이집트와 튀니지의 경우 시민의 불만이 임계점을 넘어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빈곤의 만연과 패배주의 확산, 여기에 집권세력의 부패와 타락이 더해지면서 시민들이 거리에 나선 것.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간 철권독재에 억눌려왔던 또 다른 갈등 요소가 있었다. 정체성과 관련된 요인이다. 부족 간 갈등, 수니-시아 종파 간 갈등, 부유층과 빈곤층 간 계급 갈등 등이 수면 아래 얽혀 있다가 혁명의 불길을 타고 터져나오고 있다. 리비아와 바레인, 예멘 등이 그러하다.

    리비아는 지역 및 부족 갈등의 대표적 사례다. 카다피의 근거지인 서부 트리폴리타니아와 동부 키레나이카 간 지역 갈등 구도에 부족 갈등이 더해졌다. 리비아 동부 최대 도시 벵가지를 중심으로 하는 키레나이카 지방은 예부터 지중해 교역의 중심지였다. 1969년 쿠데타로 세누시 왕조의 이드리스 왕을 축출하고 권좌에 오른 카다피는 왕실의 근거지였던 동부 지방 부족들에 대해 무자비한 탄압과 회유를 계속해왔다. 이 과정에서 폭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어쩔 수 없이 카다피에게 복종했던 주와야 등 동부 키레나이카 지방 부족들의 박탈감은 말할 수 없이 커졌다. 인근 튀니지와 이집트의 혁명을 지켜보던 리비아 동부 지역 부족들은 드디어 공포의 베일을 벗어버리고 카다피에게 대항하기 시작한 것.

    소수 카다파 부족 출신인 카다피는 그동안 와팔라 및 마가리하 부족과의 강고한 연대를 통해 나머지 주요 부족을 탄압해왔다. 최근 카다피에 반발하는 진탄 등 남부 부족과 동부 부족에 기존 친(親)카다피 세력이었던 와팔라 부족이 합세하면서 카다피는 궁지에 몰렸으나, 그럴수록 그의 모태인 카다파 부족과 마가리하 부족의 결속력은 강해졌다. 이러한 부족 정체성은 이집트, 튀니지와 달리 무한투쟁을 가능하게 한 동력이 된다. 결국 카다피가 결사항전을 이야기하는 것도 끝까지 충성을 맹약한 부족들의 결속력에 근거한다. 이는 시민혁명의 성격과는 매우 다른 양상임에 틀림없다.

    한편 바레인 시위는 종파 갈등의 대표적 사례다. 즉 시아와 수니 간 갈등이다. 전체 인구의 30% 내외를 점유하는 소수 수니파 칼리파 왕정이 다수 시아파를 오랫동안 통치해왔다. 시아파 세력은 계속해서 정치적 지분 확대를 요구했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 아랍권의 혁명은 바레인 시아파를 고무시켰다. 시아파는 자신들의 정치적 지분을 다시 확대해주기를 요구했고, 나아가 절대왕정 체제를 입헌군주제로 바꾸는 체제변혁에 대한 논의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걸프(페르시아만)를 둘러싸고 시아파의 영향력이 확장되는 상황과 맞물려 있다.

    이러한 수니와 시아 간 종파 갈등은 단순히 바레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 최대 유전지역인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 동부 알 하사 역시 사우디 시아파가 밀집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은 리야드 정부에 대한 불만이 크다. 여기에 쿠웨이트 역시 전체 인구의 40%가 시아파다. 쿠웨이트 왕실은 늘 이들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올 연말 이라크에 주둔하던 미군의 전투병력이 완전히 물러나면, 이라크의 불안정 상태를 기회로 이란이 이라크에 대한 영향력을 확장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동부 연안 지역에 이란, 이라크, 바레인, 사우디로 이어지는 거대한 시아파 띠가 형성될 수 있다.

    미국은 리비아 사태 악화에도 바레인 안정화에 전력투구해왔다. 바레인은 걸프에서 큰 영향력이 없는 소국이지만, ‘시아 연대’라는 틀에서 볼 때 바레인 수니 왕정의 붕괴는 곧 이란의 역내 패권탈환을 의미하기 때문. 사태 초기 사우디와 바레인은 바레인 시위대와 반정부 세력을 회유하는 전술을 폈다. 그러나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3월 15일 사우디 병력 1000명과 아랍에미리트(UAE) 경찰병력 500명을 바레인에 투입했다.

    이처럼 중동의 정치변동은 국제사회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3월 17일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리비아 전역에 비행 금지구역이 설정됨과 동시에 다국적군은 트리폴리 지역과 벵가지 인근 정부군 진영에 폭격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면을 들여다보면 미국의 고민이 묻어나온다. 비행 금지구역 설정에 관한 안보리 결의안은 프랑스와 영국의 주도로 제출됐다. 미국은 어쩔 수 없이 동참하긴 했지만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이번 군사조치에 대해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명시적인 반대를 표명하기도 했다. 아프간 및 이라크에서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미군으로서는 또 하나의 전장을 펼치기 부담스럽다는 게 이유였다.

    각국은 이해 놓고 치밀한 계산

    현재 카다피와 맞서 싸우는 리비아 반군 세력이 실제로 리비아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릴 수 있는 대체세력인가에 대한 의문이 계속 제기된다. 동부지역 반군의 핵심 거점인 벵가지 동편 데르나는 과거 카다피에게 탄압당했던 젊은이가 대거 모여 이슬람 투쟁을 벌인 장소. 리비아 이슬람전사그룹(Libyan Islamic Fighting Group)의 훈련캠프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정황상 반군 중 무기를 다룰 줄 알고, 탱크를 몰 수 있는 이가 이 캠프 출신이다. 만일 카다피가 물러나고 이들이 집권할 경우 반미, 반서구 성향이 훨씬 강한 이슬람 세력에게 정권을 고스란히 넘겨줄 수 있다. 미국의 두 번째 고민이 여기에 있다.

    가장 치명적인 고민은 리비아 반군을 지원하는 군사조치로 인해, 여타 아랍 왕정국가의 반군이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일 경우 미국으로서는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는 점이다. 리비아에서는 민주세력인 반정부군을 지원하고, 걸프 왕정에서는 오히려 시위세력을 무력화해야 한다는 모순된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

    카다피 정부군의 대학살 분위기가 확실해지자 미국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고, 결국 군사조치에 나섰다. 부시 행정부 당시 네오콘이 이끄는 확실한 대중동 정책이 있었다면, 오바마 행정부의 대중동 정책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형국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고뇌 끝’에 내린 결단이 상황을 점차 악화시키고 있는 것.

    여기에 유럽 내 정치적 영향력 강화를 노리는 프랑스 사르코지의 대담한 행보, 고유가 덕분에 국부(國富)가 급증하는 가운데 2012년 대통령 출마를 준비하는 러시아 푸틴의 미소, 민주주의 확산 우려와 미국의 영향력 감소에 대한 안도감 등 희비 곡선을 그리는 중국 등 전 세계가 자신만의 치밀한 계산속으로 리비아 및 중동 사태를 바라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동 각국은 민주주의 출발점에 서 있다. 쉽지 않지만 이들이 스스로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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