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패션 브랜드 ‘망고’의 플래그십 스토어, 미국의 슈즈 브랜드 ‘스티브 매든’.
롯데백화점 맞은편 명동 입구부터 사람들로 꽉 찬 거리를 지나기 위해 줄 따라 움직이듯 서서히 걷다 보면 잘나가던 시절의 동대문에 와 있는 것만 같다. 인파의 절반 가까운(때로는 절반을 넘는) 사람들이 외국인이라는 점도 그 시절의 동대문을 떠올리게 한다.
삼삼오오 모여 관광 안내책자를 손에 들고 노점상을 구경하는 일본인 관광객부터 가이드를 대동하고 특정 매장에 우르르 몰려 단체쇼핑에 여념이 없는 중국인 관광객, 배낭을 둘러멘 젊은 서양 남녀와 이미 여러 번 명동에 와본 듯 익숙한 발걸음으로 인파를 헤치고 걷는 외국인들까지…. 예전의 명동과는 사뭇 다른 다양한 국적의 사람이 뒤섞여 ‘글로벌’한 이미지의 명동을 빚어내고 있다.
눈스퀘어 … 제시카 심슨 … H·M
‘글로벌 쇼핑타운’으로 부활한 명동에 입점하려는 대형 패션브랜드도 부쩍 늘고 있다. 롯데백화점 건너편, 옛 ‘아바타’ 쇼핑몰 자리의 ‘눈스퀘어’에는 6월26일부터 순차적으로 유명 브랜드의 매장이 문을 열고 있다. 스페인의 SPA(제품의 생산부터 소매유통까지 한 회사가 맡아 하는 비즈니스 형태로 ‘패스트패션’ 브랜드가 대부분 이런 형태다) 브랜드 ‘망고’와 미국의 스타일리시한 슈즈 브랜드 ‘스티브 매든’을 비롯, 미국의 셀러브리티 제시카 심슨이 자신의 이름을 따 만든 슈즈 브랜드로 이미 트렌드세터들에게 입소문이 난 ‘제시카 심슨’ 등이 영업을 시작했다.
7월16일에는 대표적인 SPA 브랜드 ‘자라’가 명동의 세 번째 매장을 대규모로 개장했고, 한국형 SPA 브랜드로 기획된 ‘레벨5’가 문을 열 예정이다. 또 내년 3월에는 스웨덴의 또 다른 SPA 브랜드 ‘H·M’도 들어온다는 소식이다. ‘H·M’은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와 세계적인 디자인 듀오 ‘빅터 · 롤프’ 등이 디자인한 스페셜 라인을 내놓는 등의 시도로 럭셔리 패션브랜드를 선호하는 감각적인 소비자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브랜드다. 그래서 ‘H·M’의 한국 내 첫 매장이 명동에 생긴다는 사실이 트렌드세터들 사이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내년 3월 오픈하는 ‘H&M’은 서울 명동 ‘눈스퀘어’에 둥지를 튼 ‘핫’한 브랜드들이다. 미국 브랜드 ‘포에버 21’과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유니클로’ 매장 역시 지난해 문을 열면서 ‘명동의 부활’을 주도했다(왼쪽부터).
명동의 메인 거리는 한류스타가 광고모델로 나선 화장품 브랜드들이 의류매장 못지않은 화려한 외관으로 관광객을 유혹한다. 최근에는 브랜드 매장 외에 유기농 화장품 편집숍 ‘온뜨레’와 ‘이브로셰’ 그리고 ‘아리따움’ 등 뷰티 편집매장도 들어서는 추세다. 이쯤이면 ‘서울에서 가장 핫한 브랜드를 보려면 명동에 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
그 때문인지 필자의 주변인 가운데서도 명동으로 쇼핑을 간다고 말하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는 것 같다. ‘자라’ ‘유니클로’ ‘포에버 21’ 등 대형 규모로 자리잡은 글로벌 SPA 브랜드들이 지척에 있어 한꺼번에 둘러보기 편하고 ‘아메리칸어패럴’ ‘에이랜드’와 ABC마트, 카시나 등 젊은 감성의 브랜드숍과 편집숍, 보세숍 또한 포진해 다양한 눈요깃거리를 갖췄기 때문이다.
매장 개성과 다양성 유지가 관건
또 ‘크리스피 크림 도너츠’ ‘도넛플랜트’ 등 젊은 층이 선호하는 다국적 스낵 매장과 ‘스타벅스’ ‘커피빈’ ‘파스쿠치’ 등 프랜차이즈 커피숍들이 자리해 쇼핑하는 짬짬이 쉴 수 있는 공간도 풍부해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명동상권이 활기를 되찾은 데는 지난해 원화약세 속에 한국관광 붐을 타고 급증한 일본 및 중국인 관광객들의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 관광객이 서울 관광 1순위 지역으로 꼽히는 명동으로 모여들면서 명동 한복판에 관광안내소가 생길 만큼 관광객 유입이 급증했고, 자연히 상권이 활성화할 수 있었던 것.
관광객들은 명동과 시청 인근에 밀집한 호텔에 머물면서 시내 면세점, 동대문 등의 쇼핑타운, 청계천 경복궁 인사동 등 서울시내 주요 관광명소를 찾는데 명동은 이들이 지나칠 수 없는 필수 관광코스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명동상권의 1일 평균 유동인구는 평일 150만명, 주말 2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유통업계는 집계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강남에서 쇼핑과 문화생활 등 대부분의 여가를 할애하던 강남지역 소비자들조차 다양한 브랜드가 밀집한 명동으로 ‘원정 쇼핑’을 나오고, 이 지역 상인들 역시 명동이 국제적인 관광·쇼핑 명소가 될 것을 기대하며 한 달 매출액에 맞먹는 비싼 임대료를 감수하며 버티는 것을 보면 명동의 열기가 어느 때보다 뜨겁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 같은 열기 아래 영세한 중급 이하 매장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전 세계 어디에나 있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대거 포진했다는 유통환경만으로 관광객과 국내 소비자를 오랜 기간 붙잡아둘 수는 없을 것이다. 명동이 진정한 패션과 쇼핑의 메카가 되려면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들과 더불어 명동의 특징적인 중소 규모 매장들이 만들어내는 개성과 다양성을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