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1990년대 초반 서점가를 뜨겁게 달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책 제목이다. 좁은 한국시장을 벗어나 세계와 경쟁하자는 그의 주장은 20년 세월을 건너뛰어서도 여전히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이미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좁은 국내시장의 한계는 늘 우리의 눈을 밖으로 돌리게 만들었다.
98년 외환위기라는 초유의 상황에 처했을 때도 우리 경제의 탈출구는 ‘안’이 아닌 ‘밖’이었다. 그리고 결국 해외시장을 겨냥한 수출은 외환위기를 극복하게 한 일등공신이 됐다. 위기가 왔을 때, 세계라는 넓은 시장에서 해결책을 찾는 것은 우리의 숙명이었다. 그로부터 10년 만에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미국발(發) 경제위기로 제2의 외환위기가 터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 아래 세계경제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그 여파로 최근 2년 새 국내 실업률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지난 6월 기준 실업자는 96만명으로 1년 전보다 20만명 가까이 늘었다. 2005년 2월 실업자가 98만9000명을 기록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로, 3.9%에 이르는 실업률이다. 특히 청년실업자 증가세는 위험수위. 15~29세 청년층 실업자는 37만2000명으로 실업률은 무려 8.4%에 달해 일반 실업률의 2배를 넘는다.
해고의 경직성, 고용 없는 성장 등으로 새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는 가운데, 청년실업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청년실업 문제는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정부는 이런 위기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세계’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은 1월 신년 국정연설에서 청년 일자리 만들기를 올해의 국정목표로 강조한 뒤 7만개의 청년인턴, 글로벌 청년리더 프로그램과 함께 한미대학생연수취업(WEST)을 액션플랜으로 제시했다.
해외 취업과 해외 인턴을 청년실업의 돌파구로 삼은 것. 이는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2008~2012년 해외 취업 5만명, 해외 인턴 3만명, 해외 봉사 2만명 양성을 목표로 삼고 추진하는 ‘글로벌 청년리더 10만명 양성 계획’의 일환이다. 현재 해외 인턴사업은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 지식경제부(이하 지경부), 여성부, 외교통상부(이하 외교부), 농촌진흥청 5개 부처와 청에서 9개의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표 참조).
2009년도 예산은 190억4000만원으로 전년도 33억6400만원 대비 약 5.7배 증가했다. 이 가운데 교과부와 지경부 예산이 전체 사업 예산의 88%를 차지한다. 지원인원도 전년도 882명에서 3695명으로 4.2배 늘었다.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정부가 이처럼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의욕적으로 해외 인턴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계획과 관리 면에서 부실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해당 부서들이 대통령 눈치를 살피며 겉으로 드러나는 실적 보이기에만 급급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은 외교부의 WEST이다. 2008년 8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돼 올 초부터 시작한 WEST 프로그램은 ‘Work’ ‘English Study’ ‘Travel’의 앞글자를 따 이름을 붙였다. ‘미국에서 일하며, 영어를 배운 뒤 여행을 하다 돌아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미 국무부의 ‘교류방문자(Exchange Visitor) 프로그램’ 범주에서 운영되며 어학연수 5개월, 인턴취업 최장 12개월, 여행 1개월로 구성된다(상자기사 참조).
지난 3월 말 제1기 WEST 프로그램 참가자 190명이 출국한 뒤, 4월 말 제2기 참가자 선발을 마쳤다. 정부는 이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어학연수, 실무경험, 여행 기회를 한꺼번에 경험함으로써 참가자들이 청년실업을 극복하고 글로벌 인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아직 초기이긴 해도 여기저기에서 빈틈이 보인다. 상당수 참가 학생은 8000달러가 넘는 적지 않은 참가비를 내면서도 제대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프로그램 중간에 다른 업체를 통해 인턴 자리를 구하는 것이 어렵고, 업체가 구해준 일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인턴을 포기하면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스폰서와 WEST 참가 학생 간에 갈등이 빚어져 학생이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됐을 때도 뾰족한 해결방법이 없다.
WEST 액션플랜 결과는 “글쎄?”
기존의 해외 인턴사업을 이름만 바꿔 재탕해 생색내기 수준에 머문 경우도 발견된다. 지난 4월29일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표한 ‘해외 인턴사업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실행 중인 정부의 해외 인턴사업 중 상당수가 과거에 폐지된 해외 인턴사업의 문제점을 전혀 개선하지 않은 채 유사한 사업으로 신규 추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경부의 ‘글로벌 무역전문가 양성사업’은 옛 산업자원부(현 지경부)의 ‘청년 무역인력 양성사업’과 유사하다. 청년 무역인력 양성사업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평가 결과 ‘해외 인턴 파견 업체가 대기업 중심으로 편중돼 있고 공공지원 및 정부지원의 필요성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 2007년 폐지됐다. 그런데도 지경부는 이런 지적 사항을 반영하지 않은 채 청년 무역인력 양성사업처럼 대기업 중심으로 해외파견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
이에 대해 지경부 무역정책과 최영학 사무관은 “일부러 중소기업에 파견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이 파견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해외지사는 ‘1인 지사’인 경우가 많은데 인턴까지 오면 부담스러워한다”며 “그래도 2기가 출발하는 9월부터는 중소기업도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기존 사업 재탕에 부실한 인력관리
또한 이 보고서는 교과부에서 4년제 대학생 및 최근 졸업생을 대상으로 추진 중인 ‘대학생 글로벌 현장학습 사업’도 노동부가 추진하다 폐지한 ‘해외 인턴사업’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지적한다. 노동부의 ‘해외 인턴사업’은 대졸 미취업자를 대상으로 6개월간 해외 현지 인턴근무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턴 참여자 및 파견 대상자 500명 가운데 회사원, 교육종사자, 공무원 등의 참여율이 40%나 됐다. 심지어 졸업 후 취업률이 100%에 이른다는 한국기술교육대학(KUT) 재학생 34명이 포함되는 등 인턴 파견 대상자 선정이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돼 2007년 사업이 폐지됐다. 그런데도 교과부는 ‘대학생 글로벌 현장학습 사업’ 대상자의 선정 기준으로 참여 학생의 어학능력 및 학업성적만을 평가해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에 대해 교과부 글로벌인재육성과 고계석 사무관은 “노동부 사업은 취업을 하지 못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었고, 지금 교과부의 사업은 재학생을 중심으로 우수학생에게 인턴 기회를 부여해 해외취업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사업으로 차이가 있다”며 “예산을 마련해 저소득층을 배려하려고 준비하고 있으며, 해당 인턴들이 귀국하면 전수조사를 통해 문제점을 개선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회예산처는 “해외파견 인원수라는 양적 지표를 무리하게 목표로 삼기보다는 비록 소수라도 인턴 기간의 합리적 조정, 민간업체 참여 유인책 마련 등을 통해 사업운영의 내실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외 인턴에 대한 사전 수요조사를 제대로 실시하지 않고 사업을 추진하는 점도 문제. 민간기업의 참여를 통해 해외 인턴사업을 수행할 경우 현지 기업들이 실제 얼마만큼 해외 인턴을 필요로 하는지 수요 예측이 선행돼야 하지만, ‘숫자 채우기’에 급급해 이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예컨대 지경부의 ‘플랜트 해외 인턴사업’은 3월20일 기준 해외 플랜트업체가 필요로 하는 인턴은 18명 수준인데 정부가 파견하기로 한 인원은 100명에 달했다. 그러다 보니 목표에 숫자를 거꾸로 끼워 맞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플랜트 해외 인턴사업을 통해 러시아에서 4개월간 해외 인턴으로 일한 대학생 김태연(27) 씨는 “현지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턴 정원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일단 보내고 보자는 식으로 추진하는 바람에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때우다 들어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부실한 인력관리도 도마에 올랐다. 교과부 ‘전문대학 해외 인턴십사업’의 경우 무비자로 파견된 인턴이 조기 귀국하거나 일시 귀국 후 재출국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전문대학 해외 인턴십사업’으로 4개월간 일본에서 해외 인턴으로 일한 김종환(30) 씨는 “막상 일본에 도착하고 보니 현지 생활과 인턴 활동을 안내해주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며 “다행히 학교에서 협력업체를 통해 인턴 자리를 알아봐주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정부로부터는 일부 경비 지원 외에는 전혀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허술한 관리를 틈타 해외 인턴십 참가 학생들이 해외에 나가지 않고 연수비를 받아 챙기는 일도 벌어졌다. 8월10일 감사원의 교과부 기관운영감사 결과에 따르면 ‘전문대학 해외 인턴십사업’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인턴십 미수행자와 중도 포기자에게 지급된 국고보조금 8567만원이 회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과는 무관한 여행 비용, 어학연수 비용에 국고보조금을 사용하거나 인턴십 프로그램을 완료하지 않고 조기 귀국한 사례도 적발됐다.
정부가 의도한 대로 해외 인턴을 마친 뒤 이 경험이 실제 해외 취업으로 연결될지는 미지수다. 이 부분은 2006년 KDI가 정부 의뢰를 받아 실시한 ‘해외 취업지원 사업 심층평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 보고서는 “해외 인턴사업이 성과는 거의 없고 해외여행 및 어학연수 등으로 잘못 이용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인턴 수료 후 실제 해외기업으로 취업한 비율은 20%에도 못 미쳤다.
20% 못 미치는 취업률 그나마 3D업종
현재 상황은 더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경기침체 탓에 밖으로 나간다 해도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노동부 등의 자료에 따르면, 해외 취업 연수 이수자의 취업률은 2006년 67%(취업자 1196명)에서 2008년 19%(취업자 370명)로 급감했다. 10명 중 8명은 1년 연수를 받아도 취업이 불가능하다는 얘기.
지난 5년간 해외 취업이 가장 많았던 일본 연수취업자도 2007년 487명에서 2008년 25명으로 급전직하했다. 지난 5년간 해외 인턴 등을 통한 해외 취업자는 4700여명에 그치고 그 수가 해마다 줄어드는 상황에서 향후 5년간 5만명을 내보내겠다는 정부의 호언장담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그나마 해외 인턴으로 활동한다 해도 업무 분야는 열악한 3D 업종이 대다수다. 청소, 호텔 룸서비스 등 잡일도 부지기수. 전문자격증이 없는 구직자가 단지 해외 인턴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번듯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이럴 경우 해외 인턴에서 단순한 ‘경험’ 이상의 소득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고용정보원 관계자는 “해외 인턴이든 해외 취업이든 상당수 인력은 결국 경쟁력 없는 부분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내국인이 3D 업종에서 일하지 않으려 하니까 외국인이 유입되는데, 다른 나라라고 해서 사정이 크게 다르겠느냐”고 반문했다.
청년실업 해소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시작한 해외 인턴사업. 좋은 의도로 실시한 정책이지만 무작정 해외로 나간다고 글로벌 인재가 양성되고 청년실업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치밀한 준비 없이 무분별하게 해외 인턴을 양성하다가는 그 후유증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청년들에게 ‘해외로 눈을 돌려라’라고 외치기 전에 철저한 계획 수립과 프로그램 내실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
1990년대 초반 서점가를 뜨겁게 달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책 제목이다. 좁은 한국시장을 벗어나 세계와 경쟁하자는 그의 주장은 20년 세월을 건너뛰어서도 여전히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이미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좁은 국내시장의 한계는 늘 우리의 눈을 밖으로 돌리게 만들었다.
98년 외환위기라는 초유의 상황에 처했을 때도 우리 경제의 탈출구는 ‘안’이 아닌 ‘밖’이었다. 그리고 결국 해외시장을 겨냥한 수출은 외환위기를 극복하게 한 일등공신이 됐다. 위기가 왔을 때, 세계라는 넓은 시장에서 해결책을 찾는 것은 우리의 숙명이었다. 그로부터 10년 만에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미국발(發) 경제위기로 제2의 외환위기가 터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 아래 세계경제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그 여파로 최근 2년 새 국내 실업률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지난 6월 기준 실업자는 96만명으로 1년 전보다 20만명 가까이 늘었다. 2005년 2월 실업자가 98만9000명을 기록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로, 3.9%에 이르는 실업률이다. 특히 청년실업자 증가세는 위험수위. 15~29세 청년층 실업자는 37만2000명으로 실업률은 무려 8.4%에 달해 일반 실업률의 2배를 넘는다.
해고의 경직성, 고용 없는 성장 등으로 새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는 가운데, 청년실업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청년실업 문제는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정부는 이런 위기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세계’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은 1월 신년 국정연설에서 청년 일자리 만들기를 올해의 국정목표로 강조한 뒤 7만개의 청년인턴, 글로벌 청년리더 프로그램과 함께 한미대학생연수취업(WEST)을 액션플랜으로 제시했다.
해외 취업과 해외 인턴을 청년실업의 돌파구로 삼은 것. 이는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2008~2012년 해외 취업 5만명, 해외 인턴 3만명, 해외 봉사 2만명 양성을 목표로 삼고 추진하는 ‘글로벌 청년리더 10만명 양성 계획’의 일환이다. 현재 해외 인턴사업은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 지식경제부(이하 지경부), 여성부, 외교통상부(이하 외교부), 농촌진흥청 5개 부처와 청에서 9개의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표 참조).
2009년도 예산은 190억4000만원으로 전년도 33억6400만원 대비 약 5.7배 증가했다. 이 가운데 교과부와 지경부 예산이 전체 사업 예산의 88%를 차지한다. 지원인원도 전년도 882명에서 3695명으로 4.2배 늘었다.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정부가 이처럼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의욕적으로 해외 인턴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계획과 관리 면에서 부실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해당 부서들이 대통령 눈치를 살피며 겉으로 드러나는 실적 보이기에만 급급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은 외교부의 WEST이다. 2008년 8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돼 올 초부터 시작한 WEST 프로그램은 ‘Work’ ‘English Study’ ‘Travel’의 앞글자를 따 이름을 붙였다. ‘미국에서 일하며, 영어를 배운 뒤 여행을 하다 돌아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미 국무부의 ‘교류방문자(Exchange Visitor) 프로그램’ 범주에서 운영되며 어학연수 5개월, 인턴취업 최장 12개월, 여행 1개월로 구성된다(상자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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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말 제1기 WEST 프로그램 참가자 190명이 출국한 뒤, 4월 말 제2기 참가자 선발을 마쳤다. 정부는 이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어학연수, 실무경험, 여행 기회를 한꺼번에 경험함으로써 참가자들이 청년실업을 극복하고 글로벌 인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아직 초기이긴 해도 여기저기에서 빈틈이 보인다. 상당수 참가 학생은 8000달러가 넘는 적지 않은 참가비를 내면서도 제대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프로그램 중간에 다른 업체를 통해 인턴 자리를 구하는 것이 어렵고, 업체가 구해준 일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인턴을 포기하면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스폰서와 WEST 참가 학생 간에 갈등이 빚어져 학생이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됐을 때도 뾰족한 해결방법이 없다.
WEST 액션플랜 결과는 “글쎄?”
기존의 해외 인턴사업을 이름만 바꿔 재탕해 생색내기 수준에 머문 경우도 발견된다. 지난 4월29일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표한 ‘해외 인턴사업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실행 중인 정부의 해외 인턴사업 중 상당수가 과거에 폐지된 해외 인턴사업의 문제점을 전혀 개선하지 않은 채 유사한 사업으로 신규 추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경부의 ‘글로벌 무역전문가 양성사업’은 옛 산업자원부(현 지경부)의 ‘청년 무역인력 양성사업’과 유사하다. 청년 무역인력 양성사업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평가 결과 ‘해외 인턴 파견 업체가 대기업 중심으로 편중돼 있고 공공지원 및 정부지원의 필요성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 2007년 폐지됐다. 그런데도 지경부는 이런 지적 사항을 반영하지 않은 채 청년 무역인력 양성사업처럼 대기업 중심으로 해외파견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
이에 대해 지경부 무역정책과 최영학 사무관은 “일부러 중소기업에 파견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이 파견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해외지사는 ‘1인 지사’인 경우가 많은데 인턴까지 오면 부담스러워한다”며 “그래도 2기가 출발하는 9월부터는 중소기업도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기존 사업 재탕에 부실한 인력관리
또한 이 보고서는 교과부에서 4년제 대학생 및 최근 졸업생을 대상으로 추진 중인 ‘대학생 글로벌 현장학습 사업’도 노동부가 추진하다 폐지한 ‘해외 인턴사업’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지적한다. 노동부의 ‘해외 인턴사업’은 대졸 미취업자를 대상으로 6개월간 해외 현지 인턴근무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턴 참여자 및 파견 대상자 500명 가운데 회사원, 교육종사자, 공무원 등의 참여율이 40%나 됐다. 심지어 졸업 후 취업률이 100%에 이른다는 한국기술교육대학(KUT) 재학생 34명이 포함되는 등 인턴 파견 대상자 선정이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돼 2007년 사업이 폐지됐다. 그런데도 교과부는 ‘대학생 글로벌 현장학습 사업’ 대상자의 선정 기준으로 참여 학생의 어학능력 및 학업성적만을 평가해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에 대해 교과부 글로벌인재육성과 고계석 사무관은 “노동부 사업은 취업을 하지 못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었고, 지금 교과부의 사업은 재학생을 중심으로 우수학생에게 인턴 기회를 부여해 해외취업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사업으로 차이가 있다”며 “예산을 마련해 저소득층을 배려하려고 준비하고 있으며, 해당 인턴들이 귀국하면 전수조사를 통해 문제점을 개선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회예산처는 “해외파견 인원수라는 양적 지표를 무리하게 목표로 삼기보다는 비록 소수라도 인턴 기간의 합리적 조정, 민간업체 참여 유인책 마련 등을 통해 사업운영의 내실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외 인턴에 대한 사전 수요조사를 제대로 실시하지 않고 사업을 추진하는 점도 문제. 민간기업의 참여를 통해 해외 인턴사업을 수행할 경우 현지 기업들이 실제 얼마만큼 해외 인턴을 필요로 하는지 수요 예측이 선행돼야 하지만, ‘숫자 채우기’에 급급해 이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예컨대 지경부의 ‘플랜트 해외 인턴사업’은 3월20일 기준 해외 플랜트업체가 필요로 하는 인턴은 18명 수준인데 정부가 파견하기로 한 인원은 100명에 달했다. 그러다 보니 목표에 숫자를 거꾸로 끼워 맞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플랜트 해외 인턴사업을 통해 러시아에서 4개월간 해외 인턴으로 일한 대학생 김태연(27) 씨는 “현지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턴 정원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일단 보내고 보자는 식으로 추진하는 바람에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때우다 들어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부실한 인력관리도 도마에 올랐다. 교과부 ‘전문대학 해외 인턴십사업’의 경우 무비자로 파견된 인턴이 조기 귀국하거나 일시 귀국 후 재출국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전문대학 해외 인턴십사업’으로 4개월간 일본에서 해외 인턴으로 일한 김종환(30) 씨는 “막상 일본에 도착하고 보니 현지 생활과 인턴 활동을 안내해주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며 “다행히 학교에서 협력업체를 통해 인턴 자리를 알아봐주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정부로부터는 일부 경비 지원 외에는 전혀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허술한 관리를 틈타 해외 인턴십 참가 학생들이 해외에 나가지 않고 연수비를 받아 챙기는 일도 벌어졌다. 8월10일 감사원의 교과부 기관운영감사 결과에 따르면 ‘전문대학 해외 인턴십사업’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인턴십 미수행자와 중도 포기자에게 지급된 국고보조금 8567만원이 회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과는 무관한 여행 비용, 어학연수 비용에 국고보조금을 사용하거나 인턴십 프로그램을 완료하지 않고 조기 귀국한 사례도 적발됐다.
정부가 의도한 대로 해외 인턴을 마친 뒤 이 경험이 실제 해외 취업으로 연결될지는 미지수다. 이 부분은 2006년 KDI가 정부 의뢰를 받아 실시한 ‘해외 취업지원 사업 심층평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 보고서는 “해외 인턴사업이 성과는 거의 없고 해외여행 및 어학연수 등으로 잘못 이용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인턴 수료 후 실제 해외기업으로 취업한 비율은 20%에도 못 미쳤다.
20% 못 미치는 취업률 그나마 3D업종
현재 상황은 더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경기침체 탓에 밖으로 나간다 해도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노동부 등의 자료에 따르면, 해외 취업 연수 이수자의 취업률은 2006년 67%(취업자 1196명)에서 2008년 19%(취업자 370명)로 급감했다. 10명 중 8명은 1년 연수를 받아도 취업이 불가능하다는 얘기.
지난 5년간 해외 취업이 가장 많았던 일본 연수취업자도 2007년 487명에서 2008년 25명으로 급전직하했다. 지난 5년간 해외 인턴 등을 통한 해외 취업자는 4700여명에 그치고 그 수가 해마다 줄어드는 상황에서 향후 5년간 5만명을 내보내겠다는 정부의 호언장담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그나마 해외 인턴으로 활동한다 해도 업무 분야는 열악한 3D 업종이 대다수다. 청소, 호텔 룸서비스 등 잡일도 부지기수. 전문자격증이 없는 구직자가 단지 해외 인턴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번듯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이럴 경우 해외 인턴에서 단순한 ‘경험’ 이상의 소득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고용정보원 관계자는 “해외 인턴이든 해외 취업이든 상당수 인력은 결국 경쟁력 없는 부분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내국인이 3D 업종에서 일하지 않으려 하니까 외국인이 유입되는데, 다른 나라라고 해서 사정이 크게 다르겠느냐”고 반문했다.
청년실업 해소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시작한 해외 인턴사업. 좋은 의도로 실시한 정책이지만 무작정 해외로 나간다고 글로벌 인재가 양성되고 청년실업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치밀한 준비 없이 무분별하게 해외 인턴을 양성하다가는 그 후유증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청년들에게 ‘해외로 눈을 돌려라’라고 외치기 전에 철저한 계획 수립과 프로그램 내실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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