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B>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
솔향에 마음까지 젖어드는 금강송 숲
이렇게 얻기 힘들기에 보물인가. 서울에서 울진까지 오는 길도 만만치 않았는데, 울진읍에서 금강송 군락지까지 가는 길은 더욱 녹록지 않았다. 국도에서 좁은 길로 18km 정도 들어가는데, 흙먼지가 날리는 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이었다. 아슬아슬한 길을 따라 편도 20개가 넘는 작은 다리를 건너야 했다.길은 마치 미로게임을 하듯 굽이굽이 이어져 있었고, 한 굽이 넘을 때마다 깜짝 놀랄 만큼 시원한 소광리 계곡이 나타났다.
소나무 보러 가는 길에 이런 절경이 숨어 있을 줄이야. 덜컹덜컹 엉덩이를 들썩이며 가는 길. 쉽지 않았지만 이 정도 어려움으로는 금강송을 만난다는 설렘을 꺾지 못했다. 한참을 들어가다 보니, 양쪽으로 도열한 잘생긴 금강송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소나무의 붉은 몸통은 더욱 진한 빛을 내고 은은한 숲 향기는 이미 사방으로 퍼져갔다. 소나무는 역시 소나무였다.
아무런 꾸밈 없이 올곧게 서 있는 소나무들. 경주 남산의 소나무와 달리 늘씬하게 뻗은 이곳 소나무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탐방로를 따라 5분쯤 걸어가니 수령이 520년 된 최고령 금강소나무가 등장했다. 520년이라니, 갑자기 머릿속에서 역사책에서 배웠던 500여 년간의 역사가 필름처럼 돌아간다. 그리고 그 뒤에 살짝 걸쳐 있는 나의 역사.
<B>2</B> 불영사 경내. <B>3</B> ‘해피선데이-1박2일’ 촬영지였던 죽변항.
가슴 높이의 지름이 약 40cm가 될 정도로 크다. 탐방로 안쪽으로 들어가면 수령 120년 된 소나무와 80년 된 참나무의 줄기가 서로 붙어서 자라는 공생목을 만날 수 있다. 또 수령 350년, 높이 35m, 가슴 높이 지름이 88cm나 되는 금강소나무를 볼 수 있다. 이 소나무는 금강소나무의 전형적인 아름다움과 가치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해서 미인송이라는 그럴듯한 이름도 가지고 있다.
소광리 소나무 숲은 걷는 것만으로도 숲 속의 맑은 공기와 음이온, 피톤치드를 마시며 삼림욕을 할 수 있는 최적지다. 삼림욕을 하는 데는 나무의 성장이 왕성한 여름에서 가을 사이, 바람이 적은 날 오전 10시에서 오후 2시가 가장 좋다. 일반인이 갈 수 있게 허용된 탐방로를 돌아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시간 30분 정도다. 500년 할아버지 소나무와 인사하고 오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왕복 30분.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올 때 즈음이 되니 싱그러운 솔향이 마음에까지 배어들어, 이런저런 고민으로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혹시 뭔가 숲 안에 묘약이 있는 것은 아닌지, 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말도 안 되는 상상력을 부풀려보며 다시 한 번 돌아봤다.
인적 드문 불영계곡 속의 보물, 불영사
울진에서 금강소나무를 볼 수 있는 곳이 금강송 군락지만은 아니었다. 불영계곡의 원류인 대광천을 따라 들어가는 길도 소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계곡 안으로 들어갈수록 계곡이 깊어지면서 금강송의 놀라운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불영계곡에 들어서면,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 신라시대의 사찰인 불영사다. 불영사는 원래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큰 연못에 있는 아홉 마리의 용을 쫓아낸 후 지어 구룡사라고 불렸다. 불영사라는 이름은 부처의 형상을 한 바위가 절 앞 연못에 비쳐 얻게 된 것이라고 한다. 불영사까지 가는 길이 일품이다. 온통 금강송과 굴참나무다. 유난히 곧게 서 있는 금강송들. 길에 취해 한참 걷다 보니 올망졸망 고추가 매달린 자그마한 밭이 나왔다.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니 한 폭의 수채와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잠시 숨이 멎었다. 넓은 연못 위 활짝 핀 노랑어리연꽃이 만들어내는 장관이라니. 거기에 물 위로 부끄러운 듯 불영사의 반영이 살짝 덮여 있는 모습까지 어우러지니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모네의 그림을 닮은 잔잔한 풍경. 단박에 이 사찰에 반해버렸다. 한참을 떠나지 못하고 연못의 사방을 돌아다니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전국 팔도에 훌륭한 사찰이 많기도 많지만, 이렇게 아름답고 정갈한 사찰을 본 적 있나 싶었다.
낭만여행은 죽변등대에서, 마무리는 온천에서
금강송을 따라 소나무 숲과 불영사를 돌아봤다면, 이번에는 대나무로 넘어가보자. 울진의 대표적인 항구 죽변항. 항구와 대나무. 잘 연결이 되지 않지만, 가보면 안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죽변항에서 죽변등대를 보고 계속 올라가다 보면 구불구불 터널을 이룬 대나무 숲길이 나타난다. 예부터 이 지역의 대나무 숲이 유명했던 것이다.
이 숲길은 1960년대 지역주민들이 다니던 오솔길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용의 꿈길’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절벽 아래 바다에서 승천을 꿈꾸던 용이 하늘로 올랐다고 해서 붙여졌다.
죽변등대와 함께 이 부근의 또 다른 명물로 꼽히는 것은 드라마 ‘폭풍 속으로’ 세트장이다. 일반적으로 영화나 드라마 세트장은 직접 보면 실망할 확률이 높은데, 이곳은 달랐다. 동해의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생동감이 넘쳤다. 낮에도 좋지만 밤에 찾아보자. 보이지 않는 파도의 철썩거리는 소리와 조명 때문에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또 세트장 아래에는 유명한 TV 프로그램 ‘해피선데이-1박2일’ 촬영지도 있어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울진 여행은 마무리 코스까지 완벽하다. 덕구온천과 백암온천이 있기 때문이다. 좀더 걷고 싶다면, 덕구온천에서 덕구계곡 원탕까지의 왕복 4km를 걸어보자. 이곳은 자연 용출되는 온천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길에 형제폭포와 옥류대, 선녀탕도 있어 즐겁게 걸을 수 있다. 이미 충분히 걸었다고 생각한다면 바로 온천으로 향하면 된다. 피곤한 몸을 맡길 또 다른 천국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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