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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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타는 자금시장, ‘하루하루가 힘들다’

하반기 회사채 31조원 만기 도래…10조원 펀드조성 계획 불구, 은행들 요지부동

  • 입력2006-01-25 14: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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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타는 자금시장, ‘하루하루가 힘들다’
    시장에서 소문으로만 돌던 중견기업의 부도설이 다시 퍼지기 시작한 것은 공교롭게도 김대중대통령이 평양에서 서울로 돌아오던 날이었다. 사흘 동안 온통 꿈만 같던 평양발 뉴스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설핏 깨어 보니 시중 자금시장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던 것이다. 5월 이후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하면서 자금시장에는 이미 비상이 걸려 있던 터였지만 대통령의 방북 일정이 마무리된 뒤 정부가 그동안 자금 위기설 속에서도 어렵게 연명하던 중견기업들에 본격적으로 칼을 대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덧붙여진 것이었다.

    중견기업 부도설이 빠른 속도로 퍼지면서 상황의 다급함을 느낀 정부는 6월16일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 10조원의 펀드 조성 계획을 밝히고 나섰다. 10조원 규모의 펀드가 어떻게 만들어질 것인지는 좀더 지켜보아야겠지만 시장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한국투신 이윤규 채권운용부장은 “우량 금융기관 위주로 출자하게 되면 출자 여력이라는 측면에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정작 출자에 참여해야 할 금융기관들의 입장에서는 영 탐탁지 않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우량은행으로 꼽히는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뭘 알겠느냐. 금감원에나 물어보라”고 시큰둥한 반응을 전하면서도 은행들이 정부 요청에 의해 22조원이 넘는 돈을 인위적으로 출연할 수밖에 없었던 채권안정기금의 재판이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최근 시장을 덮치고 있는 자금 위기의 가장 큰 특징은 중소기업보다도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 강호병박사는 “외환 위기 당시에는 은행이나 종금사 등 간접금융시장의 신용경색으로 인해 은행 대출에 의존하던 중소기업들이 피해를 보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회사채 발행 등 직접금융시장이 위축되면서 직접금융 의존도가 높은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10대 그룹 안에 드는 중견기업의 한 자금 담당자도 “이미 시장에서는 자금 압박을 받고 있는 몇몇 중견기업의 부도설이 실명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자금 시장의 선순환 구조가 깨진 지 이미 오래이기 때문에 거의 자포자기적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에 대해 차환은 전혀 되지 않고 상환 요구만 빗발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 이미 올해 들어 회사채 상환 물량이 발행 물량을 크게 웃돌기 시작했다. 신용등급이 좋은 삼성 LG SK 계열사와 롯데 등 자금 사정이 그나마 괜찮은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는 회사채 발행 자체에 애를 먹고 있는 것이다.



    특히 문제는, 여름을 거치면서 올해 하반기까지도 회사채 시장의 자금 순환이 결코 순탄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하반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물량은 총 31조원. 이는 지난해 하반기에 비해 무려 69%나 증가한 규모다. 6월과 7월에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 물량만도 각각 3조2000억원과 5조6000억원대에 이른다. 특히 7월말에 평상시의 두배가 넘는 5조6000억원이 몰림에 따라 자금시장에는 여름대란이 예고되고 있다. 또 오는 12월에는 이보다도 훨씬 많은 9조9000억원대의 회사채 만기가 집중되어 있다. 이렇게 한꺼번에 회사채 만기가 집중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오는 2001년부터 보증보험에서 보증한 회사채가 예금보호 대상에서 제외됨에 따라 기업들이 그 이전에 회사채 만기를 맞추기 위해 2년만기 채권을 너도나도 발행했기 때문이다. 이미 예고된 ‘대란’이었다는 말이다.

    여기에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하반기 만기 도래 회사채 중 상당 규모가 신용등급 BB+ 이하의 투기 등급 채권이라는 점이다.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확보하지 못한 기업들이 몰릴 수밖에 없는 단기 자금 시장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수익기반 악화로 인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종금업계에서는 D종금 등 한두 개를 제외하고는 자체 생존이 가능한 종금사가 별로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미 정부가 공적자금 편법 지원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부실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종금의 후순위채를 대량 인수해줄 만큼 종금업계의 위기설은 이미 시장에 만연해 있다. 한 종금사 관계자는 “시장에서 1, 2위로 꼽히는 종금사조차도 자체적인 부실을 계열사에 떠넘겼기 때문에 그나마 순항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6월 들어 단기 자금 시장을 대표하는 기업어음(CP) 시장에서는 10일짜리 초단기 CP도 등장하고 있다. CP시장에서 15일 미만의 초단기성 어음이 차지하는 비중은 1월의 40%대에서 최근 들어 60%대까지 높아졌다. 게다가 단기 금리 인상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는 형편이라 단기 자금 시장에서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게다가 7월1일부터 채권시가평가제가 실시되면 투신사의 펀드에서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이 빠져나갈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그동안 장부가로만 평가되던 채권가격에 시가 평가제가 도입되면 불안을 느낀 투자자들이 공사채형 펀드에 투자하는 규모가 아무래도 줄어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투신권의 회사채 인수 여력이 전무한 상황에서 시가 평가제 변수는 이러한 상황을 더욱 부채질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행 김성민 채권시장팀장은 “98년에도 비슷한 신용경색 현상이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그나마 투신권이 상황을 지탱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은행 쪽으로 눈을 돌리더라도 사정은 결코 좋지 않다. 6월말까지 BIS 자기자본 비율을 다시 맞춰야 하는 은행들은, 투신권에서 이탈한 자금이 몰려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출을 통해 돈을 풀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금융기관들은 위험가중치 100%를 적용해야 하는 회사채 투자를 아예 포기한 채 신용 리스크가 ‘제로’인 국공채나 일부 우량기업의 회사채만을 극히 선별적으로 사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5월말 현재 은행의 저축성 예금 잔액은 무려 321조원. 이는 지난해 말보다 45조원이나 늘어난 금액이다. 그러나 이중 60% 정도는 만기 1년 미만의 단기성 예금에 불과한 형편이다. 시중은행에 주택 청약 예금 취급이 허용되면서 1년 이상 정기예금이 최근 들어 다소 늘고는 있지만 전반적인 자금의 단기부동화 현상은 여전한 형편이다. 또 내년부터 예금보호 한도가 원금과 이자를 합쳐 2000만원 이하로 축소되기 때문에 하반기에는 우량은행에 선별적으로 예금이 몰리는 현상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의 보증 여력이 떨어진 보증 기관들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도 중요한 변수. 정부는 이미 5월말, 회사채 발행을 돕기 위해 보증기관에 5000억원을 출자해 기업 신용도에 따른 부분 보증제도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채권 운용을 담당하는 시장 관계자들은 ‘25% 정도의 보증만으로 발행 여건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라는 반응이다. 미래애셋 김남익 채권운용팀장은 “7월 만기 도래 회사채 가운데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에 들어간 특수상황채권 중 보증채는 금융기관들이 차환 발행할 때 보증을 기피할 가능성도 크다”고 내다봤다. 서울보증보험은 이미 지난해 7조원 이상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보험금 대지급 부담으로 인해 더 이상의 보증 여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게 상황이 꼬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금융 당국이 금융 구조조정을 늦추면서 예측 가능한 시장 상황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 종금사 관계자의 탄식을 들어보자.

    “안 그래도 정부 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최근 대우가 발행했던 담보 CP를 장부가의 80%밖에 쳐주지 않는다는 정부 방침에 다시 한번 시장이 배신감을 느꼈다. 이제 정부와 금융기관은 물론이고 금융기관간에도 서로 믿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투자 주체들간의 신뢰를 회복시키지 않고서는 금융시장을 진정시키기 어려울 것 같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정부가 빨리 추가 공적 자금 조성 계획을 투명하게 밝히고 최근 2년 내내 ‘64조원이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던 경제 각료들을 개편해 새 출발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추가 자금 투입에 대한 야당과 국민의 동의를 얻으려면 공적 자금 문제에 ‘원죄’가 있는 현 경제팀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현재로서 가장 불길한 시나리오는 금융시장 불안이 기업 자금 경색으로 이어지고 규모가 큰 중견기업의 잇따른 도산으로 이어져 다시 금융기관이 부실 채권을 떠안는 악순환 구조가 지속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2차 금융구조조정은 시작하지도 못한 채 좌초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우량은행에 한해 합병 일정을 최대한 늦춰서라도 우량은행에나마 돈이 몰리게 유도함으로써 여신의 숨통을 틔워주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단기적으로 돈만 쏟아붓는 방식의 처방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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