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정상이 평양의 하늘 아래서 두 손을 맞잡았다. 우리는 두 정상의 활짝 갠 웃음을 보았고, 그리고 잠시 뒤 그 웃음 속에서 지난 역사의 시간만큼이나 느리게 슬로 모션으로 오버랩되는 수많은 절망과 슬픔의 얼굴들도 함께 보았다.
시간과 역사의 두께만큼이나 중첩되는 미소와 눈물의 이름 없는 얼굴들은, 잔잔하지만 깊은 파문을 일으키며 우리 마음속에 아로새겨졌다. 그것은 여느 예술작품이 줄 수 없는 감동이었다. 남북 정상의 만남 그 순간은 바로 온 민족이 지난 반세기 동안 만들어낸 거대한 행위예술이 아니고 무엇이랴.
얼굴의 작가 권순철은 지난 40여 년 동안 전쟁과 분단의 고통과 아픔 속에서 도깨비 넋처럼 떠도는 인간 군상의 얼굴을 기록해 왔다. 그러나 그들의 넋은 가볍고 투명한 것들이 아니었다. 자유로운 해방의 공간으로 단숨에 달려들지 못하는, 그런 비극적 덩어리로서의 거칠고 무거운 넋이었다.
얼굴이란 말이 ‘얼의 꼴’, 다시 말해 정신의 모습에서 유래되었다는 말이 있다. 처음 얼굴 작업을 시작하면서 작가는 전쟁으로 잃은 자신의 부친과 삼촌, 그리고 일본과의 투쟁에서 피 흘린 조상의 넋의 꼴에 다가서려 했다. 그러나 자신의 아픔을 잊으려고 그랬을까. 그것은 그리려고 그린 얼굴이 아니라, 애써 지우려고 했지만 더 강하고 두껍게 살아남는 얼굴의 흔적이며 기억이었다. 아무리 덧칠해도 지울 수 없는 상처, 오히려 두껍게 딱정이로 남는 넋의 고통, 넋의 두꺼움이었다.
‘넋’과 ‘얼굴’, 그리고 산과 같은 ‘자연’을 소재로 일관된 작업을 펴온 작가 권순철의 이번 전시에는 ‘38선’이라는 개념 아래 제작된 최근작들이 소개되고 있다.
마치 가시관을 쓴 예수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일그러진 형체, 긴 철조망을 따라 그것을 넘지 못한 고통에 울부짖는 거대한 짐승의 형상을 구현한 작품 등 한국전쟁을 비롯한 온갖 비극적 역사의 희생자들과 그 넋들이 철조망 아래 신음하고 있다.
“분단을 상징하는 철조망을 오브제로 사용한 이 주제에는 지난 70년대 초부터 시작한 얼굴-산-넋 연작이 모두 녹아 있습니다. 작품 속의 얼굴은 이산가족들이고, 분단 민족의 아픈 역사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권순철의 캔버스 위에 새겨진 넋의 모습은 마치 화석 같은 모습으로 두껍게 각인되어 있다. 피와 고름, 타액, 슬픔과 고통, 본능을 은유하는 액체의 흐름이 간혹 보이지만 넋, 다시 말해 인간의 실존은 기체와 고체의 형태만을 간직하는 승화의 운명을 짊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가 그린 인간의 진실은 가벼운 공기와 두꺼운 덩어리의 사이만을 오고가는 그런 아픔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최근의 그의 ‘얼굴’을 보면 그것은 꿈틀대는 거대한 산맥처럼 보이기도 하고, 밤하늘을 부유하고 있는 운석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생의 무게를 짊어지고 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얼굴 속에 산이 있고 별이 있다. 이제 인간의 얼굴은 자연의 얼굴로, 우주의 얼굴로 바뀐다. 그리고 그 얼굴 속에는 고통의 틈새로 빛나는 고요한 평화의 약속이 담겨 있다. 권순철의 캔버스는 이제 투쟁과 어둠의 공간에서 화해와 빛의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6월25일까지. 문의 인사아트센터02-736-1020.
시간과 역사의 두께만큼이나 중첩되는 미소와 눈물의 이름 없는 얼굴들은, 잔잔하지만 깊은 파문을 일으키며 우리 마음속에 아로새겨졌다. 그것은 여느 예술작품이 줄 수 없는 감동이었다. 남북 정상의 만남 그 순간은 바로 온 민족이 지난 반세기 동안 만들어낸 거대한 행위예술이 아니고 무엇이랴.
얼굴의 작가 권순철은 지난 40여 년 동안 전쟁과 분단의 고통과 아픔 속에서 도깨비 넋처럼 떠도는 인간 군상의 얼굴을 기록해 왔다. 그러나 그들의 넋은 가볍고 투명한 것들이 아니었다. 자유로운 해방의 공간으로 단숨에 달려들지 못하는, 그런 비극적 덩어리로서의 거칠고 무거운 넋이었다.
얼굴이란 말이 ‘얼의 꼴’, 다시 말해 정신의 모습에서 유래되었다는 말이 있다. 처음 얼굴 작업을 시작하면서 작가는 전쟁으로 잃은 자신의 부친과 삼촌, 그리고 일본과의 투쟁에서 피 흘린 조상의 넋의 꼴에 다가서려 했다. 그러나 자신의 아픔을 잊으려고 그랬을까. 그것은 그리려고 그린 얼굴이 아니라, 애써 지우려고 했지만 더 강하고 두껍게 살아남는 얼굴의 흔적이며 기억이었다. 아무리 덧칠해도 지울 수 없는 상처, 오히려 두껍게 딱정이로 남는 넋의 고통, 넋의 두꺼움이었다.
‘넋’과 ‘얼굴’, 그리고 산과 같은 ‘자연’을 소재로 일관된 작업을 펴온 작가 권순철의 이번 전시에는 ‘38선’이라는 개념 아래 제작된 최근작들이 소개되고 있다.
마치 가시관을 쓴 예수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일그러진 형체, 긴 철조망을 따라 그것을 넘지 못한 고통에 울부짖는 거대한 짐승의 형상을 구현한 작품 등 한국전쟁을 비롯한 온갖 비극적 역사의 희생자들과 그 넋들이 철조망 아래 신음하고 있다.
“분단을 상징하는 철조망을 오브제로 사용한 이 주제에는 지난 70년대 초부터 시작한 얼굴-산-넋 연작이 모두 녹아 있습니다. 작품 속의 얼굴은 이산가족들이고, 분단 민족의 아픈 역사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권순철의 캔버스 위에 새겨진 넋의 모습은 마치 화석 같은 모습으로 두껍게 각인되어 있다. 피와 고름, 타액, 슬픔과 고통, 본능을 은유하는 액체의 흐름이 간혹 보이지만 넋, 다시 말해 인간의 실존은 기체와 고체의 형태만을 간직하는 승화의 운명을 짊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가 그린 인간의 진실은 가벼운 공기와 두꺼운 덩어리의 사이만을 오고가는 그런 아픔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최근의 그의 ‘얼굴’을 보면 그것은 꿈틀대는 거대한 산맥처럼 보이기도 하고, 밤하늘을 부유하고 있는 운석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생의 무게를 짊어지고 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얼굴 속에 산이 있고 별이 있다. 이제 인간의 얼굴은 자연의 얼굴로, 우주의 얼굴로 바뀐다. 그리고 그 얼굴 속에는 고통의 틈새로 빛나는 고요한 평화의 약속이 담겨 있다. 권순철의 캔버스는 이제 투쟁과 어둠의 공간에서 화해와 빛의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6월25일까지. 문의 인사아트센터02-73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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