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정상이 명분과 실리를 서로 균형 있게 주고받은 것으로 평가받은 이번 정상회담의 성공 요인은 김위원장의 ‘빈틈 없는 설계’와 그의 ‘속셈’을 읽고 그를 은둔에서 해방시킨 김대통령의 통찰력이 끌어낸 결과였다.
김정일의 승리?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한 일부의 평가다. 실제로 그동안 서방세계에 ‘은둔자’로 알려졌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전세계가 주시한 가운데 파격적인 언행과 실리적인 외교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함으로써 오히려 DJ(김대중 대통령)보다 더 주목받았다.
우선 김위원장의 언행은 외국 언론뿐만 아니라 남한의 내로라하는 북한 전문가들에게도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들의 공통된 언술은 ‘달라진 김정일’이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김정일이 달라진 게 아니라 김정일이 달라진 시대상황에 적응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또 김위원장은 한번의 상봉으로, 남한 사회가 ‘불가침의 성역’으로 간주해온 국가보안법 개폐 및 주한미군 지위변경 문제, 그리고 주적(主敵) 개념의 변경까지를 스스로 검토하게 만드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 교육현장에서는 통일교육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김위원장의 서울 답방시 환영하겠다는 답변이 무려 97%까지 나오고 있다. 이쯤 되면 가히 ‘김정일 신드롬’이라고 부를 만하다.
북한 언론은 이를 김위원장의 ‘빈틈없는 설계’의 결과라고 미화하고 있다. 그러나 국정원 관계자들은 북측에서도 주도면밀하게 계산했겠지만, 물밑 비밀회담에서 우리측이 적절한 타이밍에 제안한 정상회담을 김정일이 받아들인 의중과 정상회담에 임하는 자세를 우리측이 정확하게 읽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곧 국정원이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확보해 왔음을 의미한다.
최고 통치권자의 정확한 판단을 보좌하는 국가 정보기관 본연의 역할은 정확한 정보를 생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이 생산한 정보는 그 기능상 최종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 실제로 정권 교체 이후 IMF 위기상황에서 김대통령의 주문에 따라 국정원은 경제산업정보 생산에 주력해 왔다. 또 국정원의 대북 정보도 질적인 면에서 큰 변화를 겪었다.
과거 남북한이 ‘적대적 의존관계’를 유지했던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김정일의 위험하고 호전적인 면을 부각한 정보가 더 많았다. 그러나 김대중정부 들어서는 국정원도 김대통령의 햇볕정책과 ‘평화적 공존관계’에 부응하는 정보의 생산과 분석에 주력하게 마련이었다. 정보의 왜곡은 아닐지라도 최종 사용자의 의지에 따른 일종의 자기검열이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일본 TBS 방송과의 회견에서 김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두고 두뇌 회전이 빠르고, 스케일이 크고, 50대의 패기가 있다는 식의 평가를 한 적이 있다. 독서광인 DJ의 이런 평가는 단순한 ‘립 서비스’ 차원이 아니라 전기(傳記)나 저서를 통해 상대방을 철저히 연구한 결과다. 이에 대해 일부 보수 언론과 극우세력은 ‘색안경’을 쓰고 보았지만, DJ의 통찰력은 이미 김정일 위원장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과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언행에서 거의 ‘100점’에 가까운 것으로 확인되었다.
더 중요한 점은 ‘식견 있는 지도자’라는 김대통령의 평가가 적절한 시점에 나왔다는 점이다. 바로 그 무렵에 북측은 남측에 당국간 경제협력 회담을 하자는 메시지를 건넸고, 그 직후 국정원은 아태측과의 싱가포르-베이징 물밑 접촉에서 정상회담을 갖자고 역제안함으로써 주제를 정상회담 국면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서방 언론을 통해 공개한 김위원장에 대한 김대통령의 긍정적인 평가는 김위원장이 김대통령을 대화할 만한 상대로 인정하는 한 계기가 된 것으로 국정원은 분석하고 있다.
김위원장이 어느 정도 책을 읽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현장지도를 중시하는 사회주의 국가 지도자의 스타일과 정상회담에서 보인 그의 언행으로 보건대 책 읽기를 통한 통찰력보다는 남한을 비롯한 서방 언론의 보도에 근거한 직관에 더 의존하는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러나 베이징의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김위원장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아시아의 리더 김대중대통령’을 독파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 일본 소학관(小學館)에서 출판해 지난 4월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이 책은 일본인 저널리스트가 쓴 것이다. 이 책에는 DJ가 ‘해방 공간’에서 좌파에서 우파로 전환하게 된 과정 등 김위원장이 흥미를 느낄 만한 대목이 기술되어 있다.
이 책의 인터뷰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존경하는 지도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흥미롭게도 DJ는 진시황이라고 답하고 있다. ‘목적’은 좋았지만 ‘수단’을 잘못 사용하며 ‘압제자’로 변모해버린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천하통일과 지방분권제도, 그리고 도량형의 통일은 지금까지 인류를 위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는 DJ의 실사구시적인 평가였다. DJ의 이런 지도자관도 ‘친애하는 지도자’와 ‘압제자’의 양면성을 띠고 있는 김위원장의 마음을 움직였을 만하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달라진 김정일의 면모는 사회주의 지도자의 독특한 관행인 ‘현지지도’ 횟수에서 드러난다. 99년 69회의 현지지도 횟수 가운데 군부대 방문은 27회였고 경제지도는 23회였다. 올해 들어서도 군부대 방문과 경제지도 횟수가 비슷할 만큼 경제문제를 틀어쥐고 있다. 몇 년 전 한 월간지가 입수한 김정일의 연설문에서 그는 경제는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며 당 간부들을 질타했다. 98년까지만 해도 현지지도 가운데 군부대 방문이 태반이었다. 그러나 김정일은 지금 북한이 지향하는 ‘강성대국’은 자력갱생의 강성대국이라며 현 시기 강성대국 건설에서 제기되는 중요한 요구는 경제사업에서 실리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정일의 실용주의 노선과 DJ의 실사구시 대북 정책은 두 지도자의 공통점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대외-대북 노선의 접점에는 정경분리 원칙이 있다. 전자는 기나 긴 ‘고난의 행군’을 이제 막 끝냈고, 후자는 어두운 ‘IMF 터널’을 막 빠져나오고 있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자력갱생의 한계를 실감한 북은 전방위 외교와 수출 드라이브를 통한 박정희 경제모델을 모색중이고, 남은 북(한반도)이 안정되어야 외국 자본의 투자를 통한 경제발전을 지속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김정일 자신도 과거와 달라졌지만 그보다는 달라진 상황 자체가 남북한의 경제협력을 통한 ‘윈-윈 게임’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98년 9월 헌법 개정 및 김정일 체제의 공식 출범과 함께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강성대국이라는 국가상을 제시했다. 북한은 강성대국이 되려면 군사-정치-사상-경제강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중에서 군사-정치-사상 면에서는 이미 강국을 이루었으나, 경제가 문제라는 것이 강성대국 구호가 던지는 메시지다. 세종연구소 이종석 북한연구실장에 따르면 “이는 ‘75%의 성공 위에서 남은 25%(경제)의 과제만 달성하면 된다’는 식의 교묘한 ‘빈곤 속의 낙관적 모토’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김대통령이 이산가족 문제에 대해 김위원장에게 “먼저 통 크게 한번 하시오”라고 권유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책임 아래 경제를 틀어쥔 김위원장에게 강성대국 건설에서 제기되는 중요한 요구인 경제사업의 실리를 보장하는 것은 남한의 전력과 경제지원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두 정상이 명분과 실리를 균형 있게 주고받은 것으로 평가받은 이번 정상회담의 성공 요인은 김위원장의 ‘빈틈 없는 설계’와 그의 이런 ‘속셈’을 읽고 그를 은둔에서 해방시킨 김대통령의 통찰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일의 승리?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한 일부의 평가다. 실제로 그동안 서방세계에 ‘은둔자’로 알려졌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전세계가 주시한 가운데 파격적인 언행과 실리적인 외교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함으로써 오히려 DJ(김대중 대통령)보다 더 주목받았다.
우선 김위원장의 언행은 외국 언론뿐만 아니라 남한의 내로라하는 북한 전문가들에게도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들의 공통된 언술은 ‘달라진 김정일’이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김정일이 달라진 게 아니라 김정일이 달라진 시대상황에 적응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또 김위원장은 한번의 상봉으로, 남한 사회가 ‘불가침의 성역’으로 간주해온 국가보안법 개폐 및 주한미군 지위변경 문제, 그리고 주적(主敵) 개념의 변경까지를 스스로 검토하게 만드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 교육현장에서는 통일교육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김위원장의 서울 답방시 환영하겠다는 답변이 무려 97%까지 나오고 있다. 이쯤 되면 가히 ‘김정일 신드롬’이라고 부를 만하다.
북한 언론은 이를 김위원장의 ‘빈틈없는 설계’의 결과라고 미화하고 있다. 그러나 국정원 관계자들은 북측에서도 주도면밀하게 계산했겠지만, 물밑 비밀회담에서 우리측이 적절한 타이밍에 제안한 정상회담을 김정일이 받아들인 의중과 정상회담에 임하는 자세를 우리측이 정확하게 읽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곧 국정원이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확보해 왔음을 의미한다.
최고 통치권자의 정확한 판단을 보좌하는 국가 정보기관 본연의 역할은 정확한 정보를 생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이 생산한 정보는 그 기능상 최종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 실제로 정권 교체 이후 IMF 위기상황에서 김대통령의 주문에 따라 국정원은 경제산업정보 생산에 주력해 왔다. 또 국정원의 대북 정보도 질적인 면에서 큰 변화를 겪었다.
과거 남북한이 ‘적대적 의존관계’를 유지했던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김정일의 위험하고 호전적인 면을 부각한 정보가 더 많았다. 그러나 김대중정부 들어서는 국정원도 김대통령의 햇볕정책과 ‘평화적 공존관계’에 부응하는 정보의 생산과 분석에 주력하게 마련이었다. 정보의 왜곡은 아닐지라도 최종 사용자의 의지에 따른 일종의 자기검열이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일본 TBS 방송과의 회견에서 김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두고 두뇌 회전이 빠르고, 스케일이 크고, 50대의 패기가 있다는 식의 평가를 한 적이 있다. 독서광인 DJ의 이런 평가는 단순한 ‘립 서비스’ 차원이 아니라 전기(傳記)나 저서를 통해 상대방을 철저히 연구한 결과다. 이에 대해 일부 보수 언론과 극우세력은 ‘색안경’을 쓰고 보았지만, DJ의 통찰력은 이미 김정일 위원장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과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언행에서 거의 ‘100점’에 가까운 것으로 확인되었다.
더 중요한 점은 ‘식견 있는 지도자’라는 김대통령의 평가가 적절한 시점에 나왔다는 점이다. 바로 그 무렵에 북측은 남측에 당국간 경제협력 회담을 하자는 메시지를 건넸고, 그 직후 국정원은 아태측과의 싱가포르-베이징 물밑 접촉에서 정상회담을 갖자고 역제안함으로써 주제를 정상회담 국면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서방 언론을 통해 공개한 김위원장에 대한 김대통령의 긍정적인 평가는 김위원장이 김대통령을 대화할 만한 상대로 인정하는 한 계기가 된 것으로 국정원은 분석하고 있다.
김위원장이 어느 정도 책을 읽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현장지도를 중시하는 사회주의 국가 지도자의 스타일과 정상회담에서 보인 그의 언행으로 보건대 책 읽기를 통한 통찰력보다는 남한을 비롯한 서방 언론의 보도에 근거한 직관에 더 의존하는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러나 베이징의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김위원장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아시아의 리더 김대중대통령’을 독파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 일본 소학관(小學館)에서 출판해 지난 4월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이 책은 일본인 저널리스트가 쓴 것이다. 이 책에는 DJ가 ‘해방 공간’에서 좌파에서 우파로 전환하게 된 과정 등 김위원장이 흥미를 느낄 만한 대목이 기술되어 있다.
이 책의 인터뷰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존경하는 지도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흥미롭게도 DJ는 진시황이라고 답하고 있다. ‘목적’은 좋았지만 ‘수단’을 잘못 사용하며 ‘압제자’로 변모해버린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천하통일과 지방분권제도, 그리고 도량형의 통일은 지금까지 인류를 위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는 DJ의 실사구시적인 평가였다. DJ의 이런 지도자관도 ‘친애하는 지도자’와 ‘압제자’의 양면성을 띠고 있는 김위원장의 마음을 움직였을 만하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달라진 김정일의 면모는 사회주의 지도자의 독특한 관행인 ‘현지지도’ 횟수에서 드러난다. 99년 69회의 현지지도 횟수 가운데 군부대 방문은 27회였고 경제지도는 23회였다. 올해 들어서도 군부대 방문과 경제지도 횟수가 비슷할 만큼 경제문제를 틀어쥐고 있다. 몇 년 전 한 월간지가 입수한 김정일의 연설문에서 그는 경제는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며 당 간부들을 질타했다. 98년까지만 해도 현지지도 가운데 군부대 방문이 태반이었다. 그러나 김정일은 지금 북한이 지향하는 ‘강성대국’은 자력갱생의 강성대국이라며 현 시기 강성대국 건설에서 제기되는 중요한 요구는 경제사업에서 실리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정일의 실용주의 노선과 DJ의 실사구시 대북 정책은 두 지도자의 공통점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대외-대북 노선의 접점에는 정경분리 원칙이 있다. 전자는 기나 긴 ‘고난의 행군’을 이제 막 끝냈고, 후자는 어두운 ‘IMF 터널’을 막 빠져나오고 있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자력갱생의 한계를 실감한 북은 전방위 외교와 수출 드라이브를 통한 박정희 경제모델을 모색중이고, 남은 북(한반도)이 안정되어야 외국 자본의 투자를 통한 경제발전을 지속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김정일 자신도 과거와 달라졌지만 그보다는 달라진 상황 자체가 남북한의 경제협력을 통한 ‘윈-윈 게임’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98년 9월 헌법 개정 및 김정일 체제의 공식 출범과 함께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강성대국이라는 국가상을 제시했다. 북한은 강성대국이 되려면 군사-정치-사상-경제강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중에서 군사-정치-사상 면에서는 이미 강국을 이루었으나, 경제가 문제라는 것이 강성대국 구호가 던지는 메시지다. 세종연구소 이종석 북한연구실장에 따르면 “이는 ‘75%의 성공 위에서 남은 25%(경제)의 과제만 달성하면 된다’는 식의 교묘한 ‘빈곤 속의 낙관적 모토’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김대통령이 이산가족 문제에 대해 김위원장에게 “먼저 통 크게 한번 하시오”라고 권유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책임 아래 경제를 틀어쥔 김위원장에게 강성대국 건설에서 제기되는 중요한 요구인 경제사업의 실리를 보장하는 것은 남한의 전력과 경제지원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두 정상이 명분과 실리를 균형 있게 주고받은 것으로 평가받은 이번 정상회담의 성공 요인은 김위원장의 ‘빈틈 없는 설계’와 그의 이런 ‘속셈’을 읽고 그를 은둔에서 해방시킨 김대통령의 통찰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